글로 혼내줄테다!

조선시대 강항의 포로기

by 가쇼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30대 관직 생활을 하던 '강항'은 급히 격문을 띄워 의병을 모집했으나 이미 왜적이 깊숙이 쳐들어와 모두 흩어져 피신하기로 결정한다. 자신의 가족들을 불러모았다. 처가집의 장인, 장모, 처형, 부모, 형제, 노비, 노비의 가족, 첩까지 40여명이 넘었다.


배를 급히 빌려 바다로 나아가니 너무 많은 인원이 타서 빨리 가지 못했다. 결국 왜적이 쫒아오자 옷을 벗고 바다에 뛰어 들었다. 수심이 얕아 모두 잡히는데 노쇠한 부모님은 물살에 떠밀려 사라졌다.


강항이 30세가 되어 얻은 아이 용(龍)과 첩의 딸 애생(愛生)은 모래 밭에 버려졌다. 조수에 밀려 떠내려 가면서 우는 소리가 귀에 들리더니 한참만에 끊어졌다. 태몽으로 새끼 용이 물 위에 뜬 것을 보고 용이라 이름 지었는데 그 아이가 물에 빠져 죽으리라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삶과 죽음, 온갖 일이 미리 정해지지 않은 것이 없을텐데, 사람이 저절로 깨닫지 못한다고 한탄했다.


강항은 통역을 시켜 자신을 잡아가는 자가 누구냐고 물었다. 대답하기를 이예주수(伊豫州守) 좌도(佐渡)부곡(部曲) 신칠랑(信七郞)이라고 했다. 밤 2경에 처부(妻父)가 몰래 묶은 줄을 풀고 알몸으로 바다에 뛰어 들어가자, 적들이 떼를 지어 소리쳐 끌어냈다. 이 때문에 집안 식구를 더욱 단단히 얽어매서 오라줄이 살 속을 파고 들어갔다. 손등이 모두 갈라지고 터져서 큰 종기가 됐다. 후에 3년을 지나도록 굽히고 펴지를 못했다. 그리하여 통역에게 묻기를,


“적이 어째서 우리들을 죽이지 아니하느냐?”


하니, 통역이 대답하기를,


“선생이 사립(絲笠)을 쓰고 명주 옷을 입었으므로 관인(官人)이라고 생각했고 일본에 송치하려고 하기 때문에 삼엄하게 경계하고 지키는 것이다.”


했다.


배를 타고 하루 반나절을 가니 대마도에 도착했다. 본국에서 잡혀온 수천명이 떼지어 울음바다가 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이틀을 머물고 다음날 일기도로 떠났다. 7일을 넘게 배를 타고 간 곳에 물도 못 먹고 며칠을 굶었는데 그곳에 살던 왜적의 노비가 불쌍히 여겨 모래가 섞인 죽을 갖다 줘 정신을 차렸다.


그곳에 머물던 강항은 자신처럼 본국에서 포로로 잡혀온 김아무개의 말을 듣자하니 명장 이엽이 잡혀와 스스로 칼을 잡고 등 뒤로 나올때까지 자결한 얘기를 해줬다. 강항은 제기와 형식을 갖춰 제사 지낼 수 없으니 그의 이름 석자를 쓰고 본국을 향해 절을 올리며 글로 제사를 대신했다.


일본은 글을 아는 사람이라곤 승려밖에 없었다. 포로로 지내면서 승려에게 글을 가르쳐 주면서 은전을 조금씩 모아 배를 하나 마련해 탈출을 실행에 옮겼다. 통역을 따라 가는 길에 성 문에 전쟁을 독려하고 승리한 글귀가 있길래 그 옆에 글을 써서 혼을 냈다.


"우리나라가 너희 나라에 지은 죄가 없고 오히려 도움을 줬거늘 하늘 아래 인간의 도리를 모르고 살육을 일삼아 개,돼지보다 못한 짓을 하느냐, 너희는 필시 큰 벌을 받게 될 터이다. 지금이라도 잘못을 뉘우치고 전쟁을 끝낸다면 하늘이 용서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죽임을 면치 못하리라"


강항은 얼마 못가 왜졸들에게 잡혀 고초를 겪었다. 강항이 관직을 지낸 사람이란 것을 안 어떤 왜승의 도움으로 거처를 마련하게 된다. 강항이 왜승과 글을 주고 받으며 대화를 이어갔는데 왜승이 강항의 글씨체를 보고 지난번 성문에 쓴 글이 당신이 쓴 것인지 물었다. 어찌하여 몸을 사리지 않고 그런 글을 써서 스스로를 위태롭게 하냐고 물었다.


강항는 일본에서 4년의 세월을 보낸다. 그동안 왜승에게 글품을 팔아 은전을 모아서 왜적의 부하에게 뇌물을 주고 적장에게 편지 한 통을 보낸다.


"보아라. 너희들이 지금까지 나를 죽이지 않고 잡아둬서 이득이 될 것이 무엇이냐. 어차피 죽이지 않고 데리고 있으면서 신경쓰이고 도움이 되지 않으니 나를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어떠느냐?"


하였다.

Kojong-1907.jpg 강항은 아닙니다. Kojong 입니다. 우리가 아는 고종과 많이 다르죠? 외국 도서관 DB에는 이분이 우리나라 고종으로 소개돼 있습니다

강항은 이 편지 하나로 풀려나게 된다. 자신이 떠날때 우리나라 부녀자가 자신을 꼭 데려가 달라고 사정을 했다. 강항은 그곳에 잡혀온 조선 백성들도 함께 보내줄 것을 요청한다. 본국으로 송환되면서 일본에 있을때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관한 기록을 모아 임금과 조정에 바친다. 강항의 포로기와 일본에 관한 기록은 일본과 외교 관계를 펼칠때 귀한 자료로 쓰인다.


임진왜란으로 조상의 묘(家廟)가 불태워 졌고, 선영(先塋)을 파헤쳤으며, 노인과 아이를 겁략하고, 자제를 묶어 갔다. 칼 아래 허리가 동강 나는 사람들은 우리들의 부모들이었고 곱고 고운 어린아이들은 꽃잎처럼 떨어졌다. 사대부의 어린 자녀들은 원수놈들의 군인으로 길러졌고 여자들은 왜놈의 계집종이 되었다.


30대 강항은 서슬퍼런 칼날 앞에 글로 싸우고 글로 왜적을 설득했다. 글품을 팔아 은전을 모아 본국으로 송환될때 필요한 경비와 식량을 마련해 백성들을 데리고 왔다. 젊은날 강항의 글을 보니 50대가 된 나는 전쟁터에 사는 것도 아니요, 난리를 겪어 도망다니며 추위와 더위를 걱정하는 것도 아닌데 지협적 것에 마음을 두고 허송 세월을 산 게 아닐까 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