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감수성 높여주는 스포츠 종목 #올림픽 #배드민턴대회 #전국체전
며칠전 정읍국민체육센터에서 전국 대학,실업 배드민턴 대회를 참관하게 됐다. 선수들이 라켓 든 팔을 번쩍 들어 올려 셔틀콕을 강하게 내리쳤다. 옆구리 유니폼이 들리면서 허연 피부 밑 갈비뼈가 굵은 선을 그리며 사선으로 날아가 아래로 꽂혔다. 셔틀콕은 공기 저항을 뚫고 심심하게 네트를 넘어갔다. 테니스와 배드민턴은 비슷한데도 테니스는 더 있어 보이고 좀 있는 사람들이 치는 것 같고 배드민턴은 길가다가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하고 마주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특별하지 않고 헐렁해 보였다. 배드민턴 대회 참관도 2층 관중석에서 다리를 꼬고 앉아 가볍게 내려다 봤다.
코로나로 한꺼번에 많은 경기를 치루다보니 정읍국민체육관 바닥은 거대한 7개의 초록 색종이를 이어 붙인 것처럼 밀도 있게 깔려있었다. 실내에서 마스크를 쓰고 셔틀콕이 통통거리며 오가는 소리를 들으니 아이가 어렸을 때 문방구에서 산 싸구려 라켓으로 동네 약수터에서 놀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약수터 옆에는 실내 배드민턴장이 있었다. 사방으로 꽉 막힌 답답해 보이는 그곳을 한번도 들여다 본적이 없지만 운동화 바닥이 코트를 미끄러며 내는 마찰 소리와 사람들 학학, 헉헉거리며 내는 크고 작은 신음 소리가 기억의 전부다.
배드민턴과 흡사한 테니스는 강한 힘과 힘끼리 부딪히며 짐승미가 느껴지는데 배드민턴은 슴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남녀혼복식> 경기를 보기 전까지 말이다. 서로 다른 남녀 대학생이 한 조를 이뤄 공격과 수비를 했다. 점수를 따거나 실수 했을때 서로 손바닥을 부딪히며 응원하고 '괜찮아' 격려하는 모습이 아기자기 했다. 관중석에서 같이 앉아 있던 S 실업팀 남자 감독말이
"혼복식을 하면 남자가 2/3를 치기 때문에 남자가 더 힘들어요"
했다.
내 오른쪽에 앉은 'H 실업팀 여자 감독'을 가르키며 올림픽에서 저 친구하고 같이 혼복식을 했다고 했다. 마스크를 쓴 중년의 여자 감독이 힐끗 나를 봤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80년대 올림픽에 금메달을 딴 분들이셨다. 그렇게 잘하게 된 비결이 뭔지를 물으니 한국 선수들이 '응용력'이 뛰어나다고 했다. 해외 경기가 많아서 1년 365일 중에 360일은 전세계를 돌아다녔다고 했다. 지금은 많이 하향평준화가 돼서 경기가 빨리 끝나지 않는다고 했다.
경기 도중 남자 선수가 갑자기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면서 주저 앉았는데 '아킬레스건'이 끊어진 것이라고 했다. 아킬레스건을 이어 붙이는 수술을 하고 재활을 하면 6개월 이상을 쉬어야 한다고 했다. 배드민턴은 주로 어디를 다치냐고 물었더니 '아킬레스건, 무릎, 십자인대' 등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선수들이 셔틀콕을 받기 위해 몸을 之자로 찢으며 코트안을 누볐다. 배드민턴도 부상을 입는구나 하는 무식한 생각을 했다. 일전에 기계체조 대회를 참관 했을때 선수들이 공중으로 날아올라 돌다가 얼굴을 땅에 박으며 떨어져 코피가 나고 뼈가 부러져 깁스를 하는 걸 보면서 도쿄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이 쨘했었다. 그에 비해 배드민턴은 얌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드민턴 룰도 잘 모르다 보니 흥미를 잃어 갈 때쯤 관중석 모퉁이에서 몸을 풀고 있는 O대학교 여학생에게 말을 걸었다. 언제 시합을 하는지, 어느 학교 선수랑 짝을 이루는지 짝궁은 누가 정하는지 말이다. 오늘 혼복식을 할 남자 선수는 호흡을 맞춰본 적은 없다고 했다. 마음속으로 이 여학생의 시합을 지켜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짧게 대화를 끝냈다.
여학생은 앞머리를 눈썹까지 내리고 머리를 질끈 묶었다. 함께 팀을 이룬 남학생은 덩치 좋은 유도선수 같아서 날렵하고 마른 다른 배드민턴 선수들과 느낌이 달랐다. 두 남녀 선수는 상대 선수들의 셔틀콕을 잘 받아치면서 공격해 점수가 앞서기 시작했다. 팽팽하게 점수가 나지 않다가 1점을 따면 뒤돌아서 주먹을 쥐면서 좋아했다. 상대 선수에 대한 예의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상대 선수 기분까지 배려하는구나. 남자 선수가 땀에 젖어 지쳐갈때쯤 O대학교 여학생이 머리를 써서 상대 남자 선수 방향으로 공격해 점수를 따냈다.
이때부터 테니스보다 배드민턴이 뭔가 있어 보이기 시작했다. 배드민턴=동양감성, 테니스= 서양감성 같은 그럴싸한 공식도 만들어 냈다. 구기 종목의 모든 공들을 무서워하는 나는 셔틀콕이 여자들에게는 꽤 안전해 보였다. 남자 선수가 아무리 강하게 내리쳐도 "나는 너희들 뜻대로 세게 날아가지 않을거야"하는 저항 의지처럼 보였다. 약자가 강자에게 받는 억압과 규제를 거스르는 착각마저 들었다. 이런게 '셔틀콕'의 자유 의지인가? 별별 것들에 다 찬사를 보냈다. 체격 좋은 남자 선수를 상대로 여자 선수의 영특한 플레이가 이어졌다. 팔다리 긴 덩어리 좋은 상대 남자 선수를 무력화 시키는데 도대체 어떤 스포츠에서 이런 장면을 보랴.
여자는 남자와 기본적인 근육량이 다르고 힘 차이가 나는데 여자 선수의 스매싱은 상대 남자 선수 가슴으로 파고 들어 셔틀콕을 받아내지 못하고 떨어뜨렸다. 배드민턴이야 말로 젠더 감수성을 키워주는 교양 과목중에 으뜸, 스포츠 인문학을 대표하는 종목이라는 생각까지 뻗쳤다. 한번 옳다고 느낀 것에 대해서는 나쁜 것은 1도 보이지 않아 제어를 잃었다. 경기 끝내고 관중석으로 올라온 O대학교 여학생에게 '시합 잘 봤다 이긴 것 축하한다'고 했더니 수줍어 했다. 선수들에게 힘나는 것이 관중의 응원, 서포터즈의 박수 소리인데 코로나로 무관중이 아쉬운 대회였다.
경기가 끝나고 복도를 지나가는데 옆자리에 앉았던 'H 실업팀 여자 감독'과 마주쳤다. 서있는 키가 무척 컸고 시원시원한 느낌이었다. 마스크 위로 쌍꺼플 진한 눈동자를 마주하며
"감독님! 제가 대단하신 분인지 모르고..."
말을 흐리며 세계를 제패한 여자운동 선수를 존경의 눈빛으로 대했다. 80년대 세계 1위를 석권했으니 대단한 것 아닌가 싶었다
"아니예요, 아니예요 다 지나간 과거 얘기예요. 다 소용 없어요~"
하며 손사레를 친다. 배드민턴은 경기하는 내내 코치, 감독이 코트 뒤 의자에 앉아서 선수들조언을 해줬다. 공격을 어떻게 하라든지, 수비를 어떻게 하라든지 선수와 시합을 함께 뛰었다. 오전 9시부터 밤 10시가 넘어서 시합이 끝났는데 그만큼 종목도 많고 시합을 치뤄야 할 게임수도 많아 심판이나 운영요원, 코치, 선수들 모두 고생이었다.
실업팀 남자 감독님 왈 '배드민턴은 부부가 둘다 선수인 경우가 50%'라고 했다. 해외 경기를 함께 다니고 같이 지내다 보니 그렇다고 했다. 배드민턴을 하면서 부인 힘이라고 무시 못하고 남편 힘이라고 과시할 수도 없는 소양을 자연스레 쌓지 않았을까 싶다. 배드민턴 선수들 중에는 본인이 좋아서 하는 경우도 있지만 부모들이 열성 팬이어서 운동선수를 시킨 경우도 있다고 했다. 성별을 떠나 상대를 존중하며 음양의 합을 이뤄내는 과정은 여자라고 불리하고 남자라고 유리하지 않는 힘겨루기에서 매력을 느끼지 않았나 싶었다. 인권관련 공직 생활을 하는 지인에게 이런 생각을 쏟아내며 배드민턴에 대한 찬사를 보내다가 급기야 '스포츠 인권'에 가장 부합하는 종목 같다고 했더니 '그렇네' 하며 맞짱구를 쳐줬다. 며칠뒤 추적 추적 비오는 밤에 물을 뜨러 약수터에 갔는데 덩그러니 비를 맞고 있는 배드민턴장이 새로워 보였다. 강한 사람이 다 이길 수 없는 진리의 장이라고 나의 편견은 진행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