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Perspectiv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승훈 Aceit Dec 31. 2017

2017년을 서랍 속에 넣으며...


나는 연말에 혼자 컴퓨터를 키고 앉아 한 해를 돌아보는 것을 좋아한다.

나의 전 직장 HR Director였던 Raghu Krishnamoorthy 는 2014년 주니어급 직원들과 가졌던 작은 라운드 테이블에서 이렇게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Reflection' 이라고 부르며, Reflection이야말로 Learning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Raghu는 주 1회 이런 시간을 가지라고 조언 했었으나, 현실적으로 연 1회도 쉽지 않다)


이렇게 한 해를 돌아보다 보면 스스로 연말 시상식을 갖는 느낌이 든다.

내가 올해 이룬 tangible 한 성과(특정 프로젝트의 완성, 다이어트 목표 달성 등)와 intangible한 성과(작년보다 더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갖게 되었는지 등)를 리스트업 하고, 계획했으나 달성하지 못했던 수 많은 실패들 역시 리스트업 하고 나면 그래도 한 해가 너무 가치없이 지나가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가끔 허무하다는 느낌이 드는 해가 있는데,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았고 따라서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았을 때이다. 차라리 실패의 기록이라도 있는 것이 좋다.

계획이 어마어마한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도 괜찮다. 여행을 다녀왔든, 보고 싶었던 TV시리즈를 정주행 했든, 아니면 매일 화분에 물을 주는 것이 되었든 자신의 의지가 반영된 일을 끝냈을 때 주는 만족감은 상당하다. 가장 허무함을 느끼는 해는 계획한 것이 없었기에 성공과 실패도 구분하지 못하는 해이다.


2017년을 돌아보면 나에게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다.


1. S전자 제품 아이디어 사내 공모전 대상

아이디어만 구상하는 것이 아니라 quantitative research, qualitative research, observation 등 온갖 방법은 다 시도하여 인사이트를 찾으려 했고, 여기서 도출된 인사이트를 기준으로 아이디어를 구상하였다.

다행히 좋은 결과를 얻어 상품으로 예전부터 갖고 싶었던 Curved Monitor를 무료로 받았다(쓸때마다 만족하고 있다)


2. '털어보자 경영사례' 팟캐스트 시작

iTunes: https://itunes.apple.com/us/podcast/%ED%84%B8%EC%96%B4%EB%B3%B4%EC%9E%90-%EA%B2%BD%EC%98%81%EC%82%AC%EB%A1%80/id1211953513?mt=2

팟빵:: http://www.podbbang.com/ch/13463

작년에 출판한 책 '어떻게 경영을 공부할 것인가'  프로젝트의 연장선상으로 팟캐스트를 만들어 보았다. 

사실 팟캐스트를 운영을 위해 들어가는 시간이 적지는 않다. 만약 나 혼자서 하는 프로젝트였다면 이미 중간에 그만두었을 가능성이 높다.  다행히 함께 하는 팀원들이 있다보니 서로 책임감도 생기게 되고, 의지도 하게 되면서 바빴던 시기에도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었던 것 같다. 

한창 격주로 업로드를 했을 때에는 아이튠즈 기준 '경제 분야' 2위까지 올라갔으나, 지금은 바빠지며 3주에 1회씩 업로드 하는 방향으로 변경하여 에피소드 업데이트 여부에 따라서 순위가 오르락내리락 한다. 그러나 에피소드당 청취횟수가 평균 1000은 넘는 것을 보니, 그래도 들어주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 만족스럽다.

'팟캐스트를 왜 하는가?' - 사실 책을 쓴 이유와 비슷하다. 책도 그렇고 팟캐스트도 그렇고 내가 타겟으로 삼는 층은 대학생들과 사회초년생들이다.  나는 젊은 친구들이 트렌드 따라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대신 기업으로 들어갔으면 좋겠다. 그래야만 다가올 인구감소 추세에도 우리나라 경제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남아있다.  이런 내 메시지가 통한 것인지 팟캐스트에 응원도 꾸준히 들어왔고, 현재 군 복무 중이라는 한 학생은 군대에서 내 책을 읽고 질문 리스트를 만들어 나를 찾아왔다. (20대 초반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울만큼 많은 이미 상당한 고민을 거친 것이 보여 놀랍고 대견했던 기억이 난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무한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털어보자 경영사례' 팟캐스트는 딱 현재의 시점에서만 가능한 프로젝트이다. 몇 년전에는 내가 너무 경험이 없어서 어려웠을 것이고, 조금 더 나이가 든 후에는 쑥쓰러워서 못했을 것이다(원래 아는게 많아지면 말 하는게 더 조심스러워 진다고 하지 않는가...? 팟캐스트에서 썰을 풀 수 있는 이유도 사실 내가 아직 충분히 많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쁜 주말 시간을 다소 잡아먹기는 했지만 '지금'만 할 수 있는 일을 했다는 점에서 '어떻게 경영을 공부할 것인가' 출판 프로젝트와 '털어보자 경영사례' 팟캐스트 프로젝트에 대해서 후회는 하지 않는다.    


3. 데이터 주물럭거리기

GE에 있었을 때 나는 PREDIX라는 산업인터넷 플랫폼의 한국 론칭 프로젝트를 위한 Task Force Team에 참여했었다. 당시 워낙 Hot해보였던 빅데이터 기반 플랫폼을 이용해 테스트 비지니스를 만드는 일이었기 때문에 재미있기는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어려운 요구사항을 던지는 고객과  그것을 실제로 기술을 이용해 풀어낼 수 있는 데이터 엔지니어 사이에서 '미팅 약속'이나 잡아주는 보조 역할을 하게 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여기서 생기는 불만족을 해결하고자 엔지지어가 되지는 않더라도 도대체 이 플랫폼이 실제로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 싶어 '데이터 과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어설프게나마 만들었던 몇 가지 프로젝트 결과물은 다음과 같다.(최근에는 업무량으로 프로젝트를 시도도 못 해보고 있지만......)

'미세먼지 예측' Github

'Normalized Loss 예측' Github

현 시점에 데이터 과학 공부를 더 어렵게 만드는 큰 요인은 '프로그래밍'과 '이론의 이해' 두 가지를 한꺼번에 배워야 한다는 점이다.  프로그래밍은 언어이다. 자유자재로 사용하려면 이 언어를 계속 써야한다. 만들어져 있는 라이브러리를 사용하면 직접 써야 하는 코드의 양이 줄어들기는 하지만 여전히 데이터 전처리를 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줄의 코드를 써야 한다. 하지만 분명 가까운 미래에 이 부분은 GUI(Graphic user interface)를 탑재한 소트프웨어를 통해 장벽이 많이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데이터과학 공부의 또 다른 축은 '이론의 이해'다. 특정 알고리즘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면, 내가 다루려고 하는 데이터가 해당 알고리즘으로 풀기 좋은 데이터인지 아닌지를 알기 쉬워진다. 그런데...... 이것 역시 '이론적'으로만 그렇고, 실제로는 여러 알고리즘을 돌려보고 결과를 비교해야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특히 고수들에게 물어보면 그들은 더욱 분명하게, 이론적으로 접근하기 보다도 테스트를 해 볼 것을 권했다)

그렇지만 이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모든 알고리즘을 돌려보는 것과, 몇 개의 가설을 세워놓고 이 가설에 맞춰 데이터 전처리를 한 후 알고리즘을 돌려보는 것은 생산성에서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꾸역꾸역 공부를 하기는 했으나, 역시 회사에서 진행하는 대부분의 실무에서 이를 사용할 일이 없다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공부했던 것도 까먹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그래도 데이터를 탐색하는 자체가 내게는 재미있는 일이기에 주말에 짬을 내서 몇 줄의 코드를 써 보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더 중요하고 바쁜 일들이 많다보니 우선순위에서는 미루게 된다.  역시 무엇을 공부하든, 자신이 일에서 '자주 활용할 것'을 공부해야 한다.


요즘 젊은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전공과 관계 없이 데이터 과학 공부가 꽤 유행인듯 하다.  그러나 나는 토익이나 HSK 스펙 쌓듯이 데이터 과학을 공부하는 것은 반대한다(그렇게 단기간 공부할 정도로 만만한 분야도 아니다).  이론적으로는 자신의 도메인에 이런 데이터과학 지식이 합쳐지면 좋을 것이라고 하지만, 모든 분야에서 그런 것은 아니다.  

데이터과학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tool)다. 도구는 자주 사용할 수록 스킬이 좋아지기 때문에 기업에서는 한 부서에서 이런 도구를 사용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담당할 수 있도록 COE(Center of excellence)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

물론 엑셀처럼 데이터 분석을 쉽게 할 수 있는 범용적인 소프트웨어가 곧 나올 수도 있다. 그러면 분명 데이터과학에 대한 접근성은 좋아질 수 있으나 높은 정확도와 완성도가 필요하다면 결국 '뛰어난 전문성을 갖고 익숙함으로 효율성을 낼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게 될 것이다.

따라서 막상 공부를 해도 취업 후에 이 기술을 사용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면, 차라리 자신이 가고자 하는 '도메인' 공부를 더 열심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내가 생각하기에 데이터 과학이라는 분야에서 범용성을 가진 여러 사람 보다는 전문성을 가진 소수에게 일이 몰리게 될 것이고, 결국 다른 부서에게 중요한 것은 이 소수(혹은 팀)와 협업하여 자신의 도메인에서 성과를 내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도구나 기술을 경시 하라는 뜻이 아니다.

다만 자신이 전문성을 가지고자 하는 도메인을 첫째로 삼고, 그 외의 기술들은 이를 서포트 하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점 을 강조하고 싶다.



4. 이직

몇 년간의 외국계와 대기업을 거친 후 '17년 하반기 부터는 '케이엠 헬스케어'라는 작은 중소기업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일의 A부터 Z까지 내 손끝으로 직접 다듬으며 일을 진행했던 '실무자' 역할을 벗어나 팀원드에게 방향과 가이드를 주고 일을 완수해야 하는 '관리자'의 역할로 넘어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대기업'은 안정적이고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서 선호하고, '스타트업'은 자유롭고 도전적이어서 선호하면서 중간지점에 있는 '중소기업'은 무시한다.

사실 확률만 놓고 보면 '스타트업'의 성공적 매각 가능성과 IPO 가능성은 중소기업의 IPO 가능성보다 훨씬 낮다. 그리고 연봉이나 복리후생 적인 부분에서도 결코 중소기업이 스타트업보다 낮지 않다.


이런 사실은 만약 중소기업이 문화를 개선하고 충분히 '도전적인' 비전을 가질 수 있다면 젊은 청년들이 들어가고 싶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만약 내가 다니는 회사가 이런 중소기업의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다면 매우 기쁠 것 같다.



돌이켜보면,

또 한 번의 만만하지 않은 한 해였다.

2017년을 서랍 속에 넣으며, 나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소중한 사람들도 한 번씩 떠올려본다.


2017-12-31




  




매거진의 이전글 시야가 좁아지면 치졸해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