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그랬다. 아니 꽤 여러 명이 그랬다. 자기는 말이 많다면서 계속 쫑알 댈 거라고. 그렇게 혼자 막 얘기를 하다가 나한텐 왜 이렇게 말이 없냐고 했다. 물론 그 사람이 혼자 말을 하게 내버려 두진 않았다. 공감되는 부분이 있으면 맞장구를 치면서 얘기를 하기도 하고 그분이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이야기를 끄집어내기도 하고. 가끔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내가 대화를 선도할 타이밍을 놓치게 되어서 말을 덜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에 상대방은 내가 말을 안 해서 자기가 더 말을 많이 한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을 말수가 적은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주변에선 나를 말수가 적다고 얘기를 한다. 사실 말 수가 적은 것보다는 그 상대방들과 할 얘기가 없었던 것인데 말이다. 친하지 않은 사람과 걸으면서 무슨 얘기를 해야 집을 가는 내내 어색하지 않고 대화가 끊기지 않을까 고민하는 건 참 피곤한 일이다. 그래서 난 애매하게 친한 사람들과는 약속을 잡지 않으며 퇴근 후에도 굳이 같이 가려고 하지 않는다. 시간이 겹치면 같이 나가는 거지만 일부러 같이 가려고 기다리는 일은 하지 않는다. 이런 것 보면 내가 사회생활에 안 맞는 유형인가 생각도 들지만 '굳이 모든 사람들과 친해져야 할 이유가 있나?'라는 생각을 가져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불필요한 관계의 사람에게 에너지를 쏟는 것만큼 정신이 고달픈 일도 없다. 만나면 만날수록 사람 지치게 만드는 무례한 말들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불필요한 관계이다. 이 사람들과 하루를 같이 보내게 되면 집에 돌아왔을 때의 내 정신상태는 분노와 자존감이 떨어진 상태로 하루, 또는 며칠을 보내게 된다. 이런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는 피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롭다.
말수가 적은 사람은 말을 많이 하는 사람에게
"말이 정말 많으시네요."
라고 얘기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반대로 말 수가 많은 사람은 적은 사람에게
"말이 정말 적네요."
라고 종종 얘기하는 것들을 목격한다. 사실 난 이런 얘기를 들었을 때 뭔가 모르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말 수가 적은 것은 나쁜 말도 아닌데 왜 기분이 나쁜 걸까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는데, 아마 말수가 적다고 얘기하는 상대방의 말에서 '말수가 없어서 답답하다, 말을 좀 더 해라.'라는 의미를 읽어낸 것인 것 같다.
대화를 할 때 그날의 기분과 그 사람과 나의 공감대, 물 흐르듯 편한 대화,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적당한 리액션은 하루 종일을 웃으면서 대화하고 싶을 정도로 대화 욕구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사실 그런 사람은 주변에서도 몇 안되는데 그 사람들과는 카페에서 하루 종일 수다를 떨고 싶을 정도로 함께 하는 게 정말 즐겁다. 애인도 그렇다. 나와 정말 잘 맞았던 사람은 별다른 위로를 해주지 않아도 대화 코드가 잘 맞다는 자체 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충전이 되었다. 하지만 반대 성향의 대화코드를 가지고 있던 사람과는 서로가 서로를 이해 못하고 대화 자체에 큰 흥미와 재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관계에 있어서도 큰 발전이 없었다.
말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얼마나 조리 있게 말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짧은 대화를 하더라도 상대방의 기분을 해치지 않는 대화 방식과 밝고 기분 좋게 해주는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상대방과 나의 대화코드가 적절하게 맞아떨어지면 그것이 정말 좋은 대화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