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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준호 Feb 27. 2022

'방 선생 , 쉬엄쉬엄 일해'라는 말이 불편한 이유

현재의 시스템을 바꾼다면 어떨까? 에 대해 고민하는 사회복지사 이야기

0. 들어가기


매년 3월이 되면 우리 협회는 총회를 개최한다. 총회를 개최하기 위해서는 여러 과정이 필요하고 그 과정 안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있다. 전국 각지에 있는 자료를 취합하고, 보고 하고, 수정하고, 편집하는 과정이 내 일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2021년도 하반기 장애인 고용장려금 신청 서류를 검토한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협회 내에 상시 업무를 진행한다. 이렇게 일이 많고 급하게 쏠리는 현상에서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물리적 시간을 투여하는 것 밖에는 없다. 


1.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이전 영국은 마차를 타고 다녔다. 당연히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전기기관차, 가솔린 차량 등이 생겨나면서 마차는 사양산업으로 접어들 수밖에 없었다. 산업혁명으로 일어난 눈부신 과학과 기술의 발전 앞에서 그저 마차 산업을 이끌었던 주역들은 변화하는 시대에 흐름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 시대나 각자가 느끼는 바는 다르지만 분명히 변화해 가고 있다. 그것이 기술, 사람, 문화, 여러 가지 요인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 자리에 어느 순간 갇혀 버린 사람들이 있다. 그저 자신이 아는 것이 다 인 것처럼만 생각하는 그럼 사람들 말이다. 난 그런 사람들에게 롤에 패시브마냥 저항하는 못된 습관이나 저항의식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결국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권위에 도전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 데이터마저도 자신들에게 유리하지 않다면, 그저 흰 종이에 쌓인 검은 먼지처럼 보일 것이다. 


왜 제도와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주창하는 사람들이 욕을 먹는지 이해가 간다. 개인의 편익을 위해서일 수도 있고, 정말 조직과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애정과 사랑으로 얘기하는 것일 수 도 있다. 어느 쪽에 서든 사람들은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나의 변화로 파생되는 여러 변수를 생각했을 때, 현재의 체계가 아닌 상황에서 해결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다 나은 사회를,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한 사람의 영향만으로 움직이는 조직이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 개인이 조직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듯이, 조직 또한 개인을 지켜줘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2. 그냥 하던 거나 제대로 하지 뭐하러 시스템을 바꿔야 하나?


나는 자타가 인정하는 일 중독자다. '사람은 배신해도 일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어디서 어떻게 들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제법 그럴싸한 말이다. 내가 일을 열심히 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현재 이 시스템을 제대로 파악해서 문제를 발견하고, 공유하고, 현재의 시스템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다. 


앞서 말한 대로 연초가 되면 많은 기관들이 바쁘다. 회계연도가 바뀌면서 사업 결과보고를 해야 하기도 하고, 지자체에 보조금을 교부받아야 하기도 하고, 새롭게 운영위원회나 조직의 편재를 바꿔야 하는 업무와 같이 새로운 마음과 함께 익숙한 일들이 새롭게 느껴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 익숙한 일을 익숙하게 한다면 어렵지 않다. 그리고 익숙한 보고와 익숙한 피드백을 받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런 익숙함을 좀 더 새로운 시스템을 적용했을 때는 어떨까? 하는 문제를 설정하고 고민해 본다면 일이 달라진다. 전국에 있는 자료를 취합하는 과정에서 내가 느낀 것은, '왜 이들은 아무것도 모른 체 나만 알고 있어야 되는 정보로 내 일만 많아지는 것일까?' 하는 것이다. 


정보라는 것은 그렇다. 아예 공유할 수 없으면 물어볼 수 조차 없다. 대통령의 전화 번호를 알려 달라고 해도 알려 주지 않는 이유가 그럿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청와대에 대통령의 전화를 알려달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전화를 해서 알려줄 수 있는 정보라면, 전화라는 매체 말고 다른 매체를 통해서도 그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다. 즉, 정보를 제대로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낸다면, 나는 하루에 수십 통의 전화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즉, 나만이 갖고 있는 정보가 사실은 누구나 물어만 보면 알 수 있는 정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에게 굳이 전화를 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 수 있는 게시판을 만들어 본다면 어떨까? 필요한 부분은 암호를 걸어 놓고 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방지한 시스템 안에서 정보를 공유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 말이다. 

https://youtu.be/YncF6dsSiZk

말을 잘 듣는것이 후회하지 않을려면 원칙과 기준을 지키야 한다.

3. '방 선생 쉬엄쉬엄 해'라는 말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


군인 시절, 상병이 되어 분대장 파견을 갔다. 104명 중 목소리가 가장 크다는 이유로 중대장 훈련병이 되었다. 교회 청년부 때는 주여를 목 놓아 외치며 기도하면서 본당을 쩌렁쩌렁 울리게 한 나였다. 어딜 가나 선동(?)과 투지를 타오르면 얘기하다 보니, 일을 대하거나 뭔가를 설명할 때도 열정적으로 목소리에 힘을 주어 한음 한음 또박또박 힘차게 얘기한다. 


그렇다 보면 본의 아니게 조용한 우리 협회 사무실에 유독 내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릴 때가 많다. 남들의 일을 방해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저 내일에 열정을 다해 얘기하다 보면 목소리가 커질 뿐이다. 누가 밖에서 목소리만 들으면 나만 일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다 보니 사무실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에 연류(?)되어 다양한 일들을 하다 보면 동해 번쩍 서해 번쩍 하면서 다닐 수밖에 없다. 나 스스로 홍반장처럼 이것저것 정말 다양한 걸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문제는 이런 내 모습들이 누군가에게는 힘들어 보이고 지쳐 보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쉬엄쉬엄 해라, 적당히 해라 라는 말을 듣곤 한다.


하지만 난 이런 조언에 사실 크게 와닿거나 받아들이지 않는다. 진심 어린 걱정은 감사하나, 정말 그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은 조언과 걱정이 아닌,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시스템과 환경을 바꿀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와서 열심히 하고 있는 자네가 매우 안쓰럽지만, 난 아무것도 바꿀 수 없으니, 그저 열심히 묵묵히 하던 일을 마저 잘해줘라고 밖에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일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난 다양한 것들을 바꾸기 위한 작업과 노력을 할 것이다. 그동안 해왔던 것들을 하면서 하지 않았던 것들을 하는 것이 내가 앞으로 직장인이 아닌, 직업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나만의 태도와 자세이기 때문이다. 

걱정과 조언 보단 함께 해보자 라는 말이 더 필요하다.

4. 때가 차오르길 기다리는 것 또한 실력이다.


나이가 들어가고,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이 좋은 게 하나 있다. 바로 시간은 내 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준 선물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기다림'이다. 어릴 때는 이 기다림이 내가 갖고 있는 능력 안에서 해결하거나 앞당길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뛰어난 몇몇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일이거나 정말 운이 좋아서 벌어지는 특수한 경우만 있을 뿐이다. 


이렇듯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기본적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그 기다림 속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이 진짜 내 일이라는 것 또한 알았다.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시간이 필요하다면, 어떻게 바꿀 것인가? 왜 바꿀 것인가? 기존의 것과의 차별성은 무엇인가? 에 대한 질문과 답을 끊임없이 하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주변에 이런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조력자를 찾는 것 또한 중요하다. 두 세 사람이 모일 때 예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성경 말씀이 있다. 많은 사람이 모이면 일은 더뎌지거나 오히려 혼선이 일어날 수 있다. 정말 마음 맞는 사람 1,2명만 있으면 가능하다. 사실 내가 하려는 일이 세상을 구하는 일도, 세계를 바꾸는 일도 아니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사람 몇 명만 있으면 된다. 물론, 그 몇 명의 사람을 찾고 설득하고 구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에 이 역시도 기다림이 필요하다.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시간도 그 기다림이란 선물을 잘 간직하고 있으면 한 번쯤 우리에게 기회를 준다. 그 기회를 민감하게 캐치하고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지금의 열심과 노력이 당연히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을 하고 최선을 다하면서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0. 나가기


어느 인터넷 기사 중에 일하기 꺼려하는 MBTI유형에 대한 기사를 본 적 있다. 그중 압도적으로 내 유형이 가장 불편한 MBTI유형으로 나왔다. 예전부터 너랑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힘들 것 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그때는 인성조차 미흡하고 미성숙했기 때문에 사람보다 일을 우선시하던 경우도 있었다. 대의라는 명분으로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했다. 물론 지금은 많이 유해지고 나름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하고 이러한 반성문 같은 독백의 글을 쓰기도 한다. 


나라는 사람이 조직에 한두 명 정도는 있어야지 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다 나처럼 일을 할 수는 없다. 그리고 나처럼 일하는 것이, 내가 말하는 것이 무조건 옳은 일도 아니다. 하지만, 각자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도 이런 내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머금고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고 고민하고 힘들어하던 시기가 있었다. 혼자 남아서 당장 찾아올 여러 일들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밤을 지세고 했던 그런 날들 말이다. 


그럼에도 쉬엄쉬엄 일 할 순 없다. 내가 고민하고 바꾸고 싶은 시스템이 있다면 끝까지 고민하고 바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들 때까지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 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해야 될 일이란 걸 난 잘 알고 있다. 이 어려운 도전에 함께 할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영영 혼자 외로이 이 힘든 싸움을 이어나갈 수도 있다.


언젠가는 나역시 내가 세운 시스템을 또 한 번 무너뜨릴 새로운 사람을 맞이할 준비를 할 것이다.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세운 가설을 깬 과학자에게 대한 존경을 표한다고 한다. 그렇게 과학이 진일보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현재 세운 제도와 문화를 깨야 된다는 사명감이 내 위에 관리자들과, 함께 일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것에 대한 자기반성은 늘 있다. 하지만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그 변화를 맞이하기 위해 얼마나 깨어 있는지를 고민하는 시기와 사람들이 함께 하길 바란다. 그리고 나를 뛰어 넘을 다음세대에 대한 기대 또한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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