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적 특징과 인프라를 살린 고유한 사회복지현장을 기대한다.
6월 1일 제8회 지방선거를 통해서 앞으로 4년간 지방자치를 실현할 지도자들이 뽑혔다. 장애인복지의 경우 2005년 이후로 지방이양사업으로 중앙단위보다 지자체의 특징을 살린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장애인 단체의 사회복지사로서 더욱이 이번 지방선거를 바라보는 태도가 나에겐 남 다르다.
사회복지사가 되고 난 다음 처음 맞이한 지방선거를 토대로 앞으로 4년간 어떤 지역이 장애인 복지를 어떻게 실현할지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 그렇다면 17개 시도광역단체와 230개 기초단체를 토대로 도시를 나눈다면 그 도시마다 특징에 따른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할까?라는 고민으로부터 이 글을 시작하고 싶다.
예전부터 뭐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서울은 어떤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어느덧 나도 서울에 산지 33년째다. 4개월이란 짧은 기간 일본 오사카에서 워홀을 통해 살았던 것을 제외하면 서울에서 태어나고 계속 자랐다. 나만이 생각하는 서울만이 주는 분명한 특징이 있다. 화려함, 복잡함, 분주함과 같은 그런 느낌 말이다.
이렇듯 전 세계의 여러 도시들은 각자 고유한 분위기가 있다. 오랜 기간 다져진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곳의 사람들로 말이다. 17개국을 여행 다니면서 20곳이 넘는 도시를 다녀왔다. 스쳐 지난 간 도시도 있었고 너무 좋아서 며칠 머물렀던 도시도 있었다.
도시가 주는 각자의 특징을 토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또한 제각각 다르다. 더운 곳, 추운 곳, 인구가 많은 곳, 인구가 적은 곳, 산세가 험한 곳, 광활한 평지인 곳 등 그 고유한 특징에 따라 우린 살아간다.
그러면서 문득 든 생각은 이거였다. '도시의 특징대로 지역 내 사회복지시설도 운영되고 있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예를 들면, 강원도의 경우 겨울철만 되면 한파와 폭설로 인해서 다른 지역보다 방한을 잘 대비해야 한다.
그렇다면 강원도에 있는 사회복지시설의 예산안에 겨울철 난방비가 다른 지역에 비해 더 많이 편성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사회복지는 1년 단위로 회계연도를 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1년간 예산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계획이 담긴 예산안과 그렇게 예산안대로 잘 집행했는가에 대한 실제 집행 내역을 보고하는 결산안이 있다.
이럴 때, 예산안에 겨울철 난방비에 대한 부분을 강원도와 같은 추운 지역의 사회복지시설들은 더 많이 편성받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이 서울에서 33년째 살고 있는 나로서는 너무 궁금한 부분이었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나라에 있는 17개 광역단체와 230개 기초단체를 기반으로 한 위수탁 시설들이 각자 고유한 특징에 맞게 시설을 운영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이어져 갔다.
예전 협회 내 조직지원부에 있을 당시 전국에 있는 산하 조직의 고유한 프로그램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바닷가에서 가까운 지회의 경우 휠체어 장애인이 가족이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해변을 걷는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또 다른 곳은 지역 내 파크골프장이 있는 경우에는 파크골프대회를 개최하여 장애인의 스포츠와 여가생활 참여를 증진시키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렇듯 각 도시마다 본연의 특징과 인프라를 토대로 특색 있는 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지역신문을 보게 되면 그 지역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해냈는가를 뽐내는 기사들을 많이 접한다. 세계 최초, 세계 최다, 세계 최고라는 수식어를 토대로 말이다. 하지만 그 기사들 속에서 세계 최초로, 최고로, 최다로 사회복지를 실현시키고 있는 곳은 발견한 적이 없다.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작은 바람이 하나 있다면, 지역 내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 속에서 그곳에 가지 못해서, 혹은 말하지 못해서, 듣지 못해서, 전달할 수 없는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찾아가서 들어줬으면 한다.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가 들리는, 전달되는, 알려지는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는 많은 분들의 수고 또한 함께 하길 바란다. 요즘 들어 너무 비판적이고 화만 내는 내 모습을 다시 반성하며 좀 더 아름다운 세상을 그리는 내 모습 또한 기대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