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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준호 Feb 07. 2022

한국지체장애인협회에서 일하다.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경험이 생긴 사회복지사 이야기

0. 들어가기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라는 말이 있다. 서당에서 삼 년 동안 살면서 매일 글 읽는 소리를 듣다 보면 개조차도 글 읽는 소리를 내게 된다는 뜻으로, 어떤 분야에 대하여 지식과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도 그 부문에 오래 있으면 얼마간의 지식과 경험을 갖게 된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장애인 당사자 단체에서 일한 지 어느덧 3년 차가 되었다. 난 과연 풍월을 읊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회복지와는 전혀 관계도, 상관도 없는 사람이 사회복지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참으로 신기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한번 내 나름의 풍월을 읊어보려 한다.

수처작주 입처개진 : 머무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 서 있는 그곳이 참된 진리이다.

1. 한국지체장애인협회란?


대한민국의 인구는 대략 5,000만 명이다. 이 중 263만 명이 장애인이다. 그리고 이중 절반인 120만 명 정도가 지체장애인이다. 이러한 지체장애인들이 모여서 만든 협회가 바로 '한국지체장애인협회'이다. 마음 같아서는 협회 30년 사의 내용을 토대로 우리 협회의 역사와 연혁을 작성하고 싶지만, 내가 듣고, 보고, 경험하고, 느낀 것을 토대로만 풍월을 읊고 싶다.


우리 협회는 장애인 단체 중 회원수가 가장 많고, 전국적으로 17개 시도협회와 230개 시군구지회의 산하 조직이 있으며, 60여 개의 장애인 수탁 시설을 보유하고 있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대 장애인 단체다. 물론 이렇게 얘기할 수 있기까지는 전국에 있는 수많은 산하 조직과 시설을 다녀보기 전까지는 와닿지 않았다.


아직 많이 가보진 않았지만, 여전히 이곳저곳을 가보면서 경험해 보고 싶은 것들이 많다.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라는 우문현답처럼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아직도 많다고 생각한다. 우리 협회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조금 더 장애에 대한 나 스스로에 대한 인식과 관점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2019년 11월 장애인 생존권 확보를 위한 투쟁 결의대회 현장

2. 조직지원부에서의 2년 6개월간의 시간들


처음 협회에 입사하고 일하게 된 곳은 조직지원부였다. 코로나-19가 오기 전인 2019년에 조직지원부에서의 일은 정말 나에게 늘 즐거움이 가득했다. 내가 생각했던 사회복지 현장이랑 조직지원부의 일은 사뭇 다르다. 이곳은 '사회복지' 보다는 '사단법인' 혹은 '협회'에 더 포커스를 맞춘 부서다. 협회의 회원을 관리하고, 인사에 관한 업무를 하고, 협회 안팎으로 일어나는 문제들에 대해서 대응해야 하는 부서다. 가장 어려운 일이 사람을 관리하는 일인데, 그 일에 가장 잘 어울리는 부서가 조직지원부다.


어려운 일을 하는 만큼 공부를 해야 하는 부분도 정말 많았다. 때로는 누군가에게 답을 내려 줘야 하고, 정리를 해줘야 하는 입장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1년도 안 된 신입직원인 나로서는 정말 매일매일 열심히 배우고 공부하고 담당자들과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전국에서 하는 다양한 장애인 복지 관련 사업들을 A부터 Z까지 다 볼 수 있고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사회복지에 대해서도 알아 갈 수 있었다.

4박 5일간 진행했던 제13기 지회장 직무교육

3. 기획행정부로 부서 이동을 하다.


2년 6개월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조직지원부 업무를 잠시 내려놓고, 기획행정부로 난 부서 이동을 했다. 사실 기획행정부로 부서 이동을 하고 싶은 이유는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조직지원부에서 법인 감사를 가거나, 업무 매뉴얼을 만들거나, 산하 조직의 담당자들과 통화를 하다 보면 운영팀 입장에서 생각해봐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 인사, 총무, 노무, 회계 등 기획행정부에서 하고 있는 업무들이다. 이런 업무를 내가 배우고 다시 관리부서에 가게 된다면 좀 더 자신 있게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운이 좋게도 나는 부서 이동의 기회가 생겼고, 기획행정부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직장 생활을 하게 되었다.


멀리서 바라본 기획행정부에서 이제는 내가 직접 몸 담은 기획행정부는 생각한 것보다 느낌이 많이 달랐다. 정말 물리적인 일의 양이 차원이 달랐다. 기획행정부에 간지 처음 2달은 매일 야근을 했던 것 같다. 물론 그 당시 장애인고용장려금 시즌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매일매일 처리해야 할 것들이 항상 많았고, 매주, 매달 계속해서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다. 덕분에 원했던 다양한 경험과 배움이란 부분에서는 꽤나 만족스러웠다.


확실히 운영팀에서 일을 하는 것이 실무적인 능력 향상에는 분명 도움이 된다. 부서마다 각자의 전문성이 다르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기획행정부에서 일을 배우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후회는 없다. 오히려 이곳에서 꾸준히 일을 잘 배워서 다시 관리 부서로 가게 된다면 훨씬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운영팀에서 행정업무만 매몰되는 것도 난 바람직하다고 생각 들지 않는다. 계속해서 순환하면서 서로 보완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알아가는 과정에서 깨닫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좋은 답이란 생각이다.  

산하 조직에 배포되는 업무매뉴얼을 만들기 위해선 다양한 전문성이 필요하다.

4.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관점의 시작


조직지원부와 기획행정부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결국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은 한국지체장애인협회란 장애인 당사자 단체이다. 즉, 사회복지를 실현하는 곳이란 뜻이다. 그중에서도 장애인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서 내가 이전에 있었던 다양한 경험들을 쌓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이 내 삶에 있어서 가장 큰 변화로 다가와야 한다고 난 생각한다. 내가 장애인 단체에서 일하고 있다는 뜻이 단순히 그 흔한 어쩌다 보니 사회복지를 하고 있는 사람으로 비치고 싶지 않다.


장애에 대한 인식개선도 필요하고, 교통약자가 편히 이동할 수 있는 편의시설에 대한 확충도 고민하고, 장애인들의 고용과 자립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하는 것이 나에게 있어서는 그 어떤 고민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일하는 곳에 대한 정체성을 잃어버린다면, 그냥 일반 회사 경영지원팀에 들어가거나 우리 협회보다 더 큰 사단법인인 대한노인회에 들어가서 조직관리를 하는 것이 맞다.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인가? 어디서 일을 하고 있나? 에 대한 정체성을 스스로 끊임없이 되새겨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하는 일이 결국 일로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난 일을 하고 싶지 않다. 가치를 찾고 싶을 뿐이지.

장애에 대한 관심과 생각을 조금 더 가져 볼 수 있었던 '수다 떠는 장애'

0. 나오기


지난 시절 누군가에게 월 1,000만 원을 벌겠다고 호언장담했던 내 모습이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 걸 보니, 그 허무한 욕심이 내 마음속 어딘가에 아직까지 자리 잡고 있나 보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은 당연히 좋다. 여전히 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다. 그런데 그 돈을 많이 벌어서 어떻게 쓰고 싶다는 생각은 깊게 해 본 적 없는 것 같다.


일을 배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 일을 배워서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시기가 그 동안은 많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있는 이곳에서 배운 일들을 토대로 조금 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게 된다.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처럼, 장애인 단체 삼 년이면 편의시설 정도는 보일 수 있게 된 것 같다. 누군가의 발끝을 바라본다는 것, 낮은 곳을 바라본다는 것은 앞으로의 내 삶에 있어서 소중한 관점 중 하나가 된 것에 대해서 늘 내가 하는 일에 대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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