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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준호 Apr 16. 2023

크리스천은 취미가 없다.

취미가 뭐예요?라고 할 때 취미를 대답한 적이 없다.

청년시절 대 놓고 어딜가나 나는 크리스천이라 말하던 시절도 있었다

오래된 모교회를 떠나 탈주 교인(?)처럼 1년에 몇 번 보는 옛 동지들을 만나는 일이 있다. 나처럼 교회를 잠시 떠나 어떤 교회를 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사람, 새로운 교회에서 정착한 사람, 잠시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고민하고 있는 사람. 이 정도의 상황에서 옛이야기들과 지금의 이야기를 함께 나눈다. 


서로 떠나간 시기와 이유는 각자 다르지만, 그럼에도 함께 사역했던 시간들과 순간들을 말하면 그렇게 즐거우면서도 화가(?) 난다. 이런 걸 다들 애증의 관계라고 하지 않나 싶다. 아무튼 이들과 종종 술잔을 기울이면서 만나는 사이가 되었고, 탈교회형동생 사이를 토대로 각자의 삶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와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마음들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정말 셋을 가만히 보자면 참으로 하나님께서 얼마나 골치가 아팠을지 스스로 실소가 나온다. 하지만 그분의 쓰임대로, 그분의 계획대로, 그분의 뜻대로 우린 그 당시 우리가 해야 할 일들과 해내야 하는 일들을 위해서 함께 고군분투한 것은 사실이다. 실제 전쟁 속에서의 끈끈한 전우애 정도까진 아니지만, 영적 전쟁에서의 전우애는 분명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서 서로 각자의 취미가 뭐냐는 질문을 누군가 했다. 사실 나 스스로도 내 취미가 뭐냐고 대답할 때 그냥 책 읽고 이렇게 글 쓰고 산책정도라 대답한다. 참으로 쓸쓸한 대답 같아 보였다. 현대 사회에 이 얼마나 재밌고 신나는 일들이 많은데, 몇천 년 전부터 있었던 취미를 지금 살아가는 시대에 갖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현대사회에서 이런 재밌는 취미를 가지려면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이미 정보는 많기 때문에 시간과 돈만 있다면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그럼에도 왜 나 같이 저런 고리타분한 취미가 아닌 좀 더 현대인에 맞는 취미를 갖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안 가진 것일까? 하는 질문을 해보았다.


답은 간단했다. 난 크리스천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생뚱맞는 소린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아니, 크리스천이 왜 취미가 없냐?라는 말을 할 수 있다. 일주일에 일요일 1번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 예배 드리는 게 전부인데 그 외 다른 여유시간은 도대체 뭐 하는데 쓰는지 그리고 교회 사역자도 아니고 그냥 한낱 교인일 뿐이데 말이다. 


맞는 말이다. 한낱 교인일 뿐이고, 남들보다 조금 더 열심을 다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시절엔 그렇지 않은 청년들이 있다. 시간으로 보면, 상황으로 보면 보이지 않는, 보지 못하는 '마음'으로 봐야 하는 것들이 있다. '영적'으로 봐야 되는 것들이 있다. 그시절 이러한 마음과 영적 상태인 상황에서는 자신이 취미를 갖는다는 것이 굉장히 사치로 생각하거나 사역을 집중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나 같은 경우에도 청년부 찬양팀 인도자, 회장, 중고등부 교사, 금요예배 찬양팀을 하게 되면 내 일주일 중에 금,토,일은 없다고 보면 된다. 월-목은 학교를 다니면서 알바를 했기 때문에 실제로 그때 내가 취미를 가질 물리적 시간조차 없었다. 물론 돈은 더더욱이 없었기 때문에 현대 사회에 즐거운 취미를 갖기란 쉽지 않았다. 


보이는 상황과 시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마음'의 상황이다. 사실 취미라는 인간의 삶의 영역과 예배라는 종교적 영역을 저울을 놓고 비교해 본다면, 애초에 비교 자체가 안된다. 왜냐면 그 행위 자체로 오는 결과물이 확연히 다른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교에 빠지거나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극단적으로 생각과 마음이 달라지는 이유다. 요즘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사이비와 같은 문제들이 이러한 차이를 느끼는 사람들에게 나타난 결과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이것이 광적인 신도들이나 사이비와 같은 교주를 믿는 사람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평범하지만 다소 기질적으로 어떤 사안에 대해서 열정을 다해 뭔가를 쟁취하고, 해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히 많이 발생한다. 아니면 다른 사회적 관계보다 편하고 익숙한 교회 공동체와 문화에서 내 시간과 열정을 쏟아서 생긴 결과일 수도 있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마음' 혹은 '영적'으로 봐야 되는 것들이다. 


난 보이는 것도 보이지 않는 것도 온전히 교회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청년의 때를 보냈다. 그래서 지나고 나서 보면 취미가 없다. 이렇게 책을 읽고 글을 쓰게 된 것도 그 시절 묵상을 하고 글을 쓰고 나누기 위한 사역의 연장선이다. 


우리 셋은 이 대화 이후에 다시 만났을 때에는 조금의 변화가 생겼다. 셋 중 2명은 결혼이란 인생에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고 있고 1명은 운동과 등산을 취미로 만들어보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취미라고 할 만한 것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예배보다 더 큰 즐거움과 기쁨을 줄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지금 이런 글은 자기고백적 반성과 회개의 순간들을 함께 한다 생각한다. 그걸 앎에도 불구하고 아직 마음으로 영적으로 상황을 만들지 못하고 있는 내 모습들을 보면 여전히 나약하고 무너지기 쉬운 인간이자 피조물일 뿐이란 생각이 든다. 


크리스천은 취미가 없다. 취미를 가진 크리스천으로 살아갈 생각을 못해봐서 그렇지 않나?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취미를 좀 가져볼까 싶다. 함께 살아갈 내 옆의 동반자와 오랫동안 꾸준히 할 수 있는 그런 취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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