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하리 Nov 02. 2024

주짓수양록

지는 것을 배우는 어른이

 내향적인 나는 사람들 앞에 서면 늘 긴장하지만, 하고 싶은 일 앞에서는 이상하게도 두려움을 무릅쓰고 도전하게 된다.     


 ‘한 번만 더 하면 후회하지 않을 것 같고, 한 번만 더 하면 이길 것 같은’ 시합들.

언제나 아쉬움만 남는 그 시합들이 계속 나를 자극하고, 다시 도전하게 만든다.   

  

 최근 시합에 참가하기 전부터 고민이 많았다. 연말이라 무리하게 잡아둔 일정과 미뤄둔 일들이 발목을 잡고, 그런 상황 속에서 잠을 줄이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고 있었다. 체력도, 에너지도 이미 바닥이었지만, ‘조금만 더 하면 될 거야’라는 욕심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바쁜 일상 속에서 하던 일을 멈추고 체육관으로 향하는 나를 보며, 가족들은 장난스레 묻는다.

 "주짓수 선수 할 거야?"

어쩌면 이 질문이 진지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남시장기주짓수대회 / 출처 : 그린트리 작가님

 '진 사람은 말이 많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경기에서 졌고 후회만 남았다. 시합 내내 내가 했던 선택들은 모두 아쉬움으로 돌아왔다.

     

bxg존프랭클마석관장님&정승원 선수 ( 우리팀 세컨) / 출처 : 그린트리 작가님

 이기고 싶었다. 그런데도 배웠던 기술들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힘으로 상대를 묶고, 소극적인 플레이로 경기를 이어갔다. 세컨의 조언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고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 경기는 내 욕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순간이었다. 부끄럽고 허탈했다.   

  

 시합이 끝난 후, 몸살이 크게 와 체육관에 나가지 못했다.

오히려 잘된 일이라 여기면서도, 체육관 사람들이 연습하는 영상이 SNS에 올라올 때면 나만 뒤처지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이 밀려왔다.  

   

 머리로는 패배가 당연하고 많이 져야 더 많이 배울 수 있다는 걸 알지만, 마음 한구석은 이런 상황에 익숙하지 않아 불안과 초조함을 떨치지 못했다.     

 마치 지는 법을 배우지 못한 어린아이가 어른이 되어, 패배를 실패로 여기는 것처럼, 이번 기회를 통해 내향적인 성격보다 이런 마인드가 진짜 문제라는 걸 깨달았다.     

 

금요일, 다시 체육관에 출석했다. 그곳은 여전히 생기가 넘쳤다.


 “많이 아프셨어요? 아참, 시합 정말 잘하셨는데 아쉬워요.”

띠 동갑이 훨씬 넘는 어린 친구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토닥여 주었다. 그 따뜻한 위로가 나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고작 4일을 쉬었는데 몸이 무겁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움은 즐거웠고, 스파링은 정말 재미있었다. 


 체육관 사람들 덕분에 주짓수를 처음 배웠을 때의 매력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고, 지는 것을 유연하게 웃으며 넘기는 법도 배우게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