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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초 Sep 22. 2024

내 마음의 산티아고 1

꽃 중년, 산티아고 카미노 300Km 14일간의 일기

                       (D-3) 예쁘고 선량한 어린 학생 덕분에 안전하게 마드리드에 도착하다.


   가족의 환송을 받으며 인천공항에서 에어차이나 탑승을 기다린다. 짧지 않은 50여 년의 인생, 30년 이상의 결혼생활에서 이렇게 긴 시간 나 홀로 여행은 처음이다.

  혹시나 사고를 당하여 다시 나의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할 때를 대비하여 이것저것 정리를 하고 또 유언을 해서일까? 회한의 눈물이 그치지 않는다. 남편과 내 딸들에게 미안하고 고맙고. 지인들의 따뜻한 말들에 고마운 마음이 끝없는 눈물로 흘러내린다. 기온은 그리 낮지 않으나 그칠 기미가 없는 눈발로 기상 여건이 좋지 않다. 모쪼록 안전한 여행이 되도록 기도한다. 북경까지, 이어서 마드리드까지, 그리고 다시 서울까지의 안전을 위해 기도한다.  

  비행기 날개에 앉은 눈 때문에 비행기 안에서 두 시간 기다린 후 출발. 두 시간여 비행 후 북경 공항 도착, 환승라운지에서 1시간 휴식 후 다시 CA207 편에 몸을 싣는다. 환승라운지에는 발마사지 서비스도 있다는 안내가 있는데, 너무 늦은 시간이라 받을 수 없단다. 아쉽다. 

  마드리드행 비행기 2인 좌석에 착석. 옆 자리에는 북경에 살다가 스페인어 박사과정을 밟으며 강의 등으로 생활비도 벌고 있다는 예쁜 여학생이 앉는다. 내 큰 딸이 생각난다, 부모 울타리를 떠나 혼자 일본으로 공부하러 가던. 눈에 총기가 있는 이 학생은 나에게 이러저러한 사소한 서비스를 해 준다. 이렇게 예쁘고 선량한 어린 학생에게 무슨 큰일이 일어나랴? 더불어 나도 안전하게 마드리드까지 갈 것이다.

  식사시간. 중국 음식의 향신료 냄새가 역겹다. 우리 음식의 마늘도 외국인들에게는 이렇게 역겹게 느껴진다니 참아야지. 글로벌은 역시 힘든 것이여! 여기저기서 어린아이 울음소리가 들리는데 이상하다. 하나도 시끄럽게 들리지 않는다. 새소리 정도로 들린다. 바로 앞줄의 다섯 살가량의 어린애가 엄마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신이 주신 인간의 언어능력에 감탄이 나온다. 언어로 인해 우리 인간이 얼마나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는가?

  옆의 아가씨는 월급은 중국에서 5,000위안 정도를 받고 스페인의 대학에서 공부도 하고 강의도 하고 있다고 한다. 부모로부터는 경제적으로 독립을 했고, 남자친구는 미국인으로  현재 미국에 있다고. 한국의 드라마를 좋아하는 중국인이 많고 (기내에는 자신의 컴퓨터로 ‘별에서 온 그대’를 시청하는 중국인도 있다.) 자신도 어머니도 제주도를 방문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러면서 나의 스페인 여행에 도움을 준다. 스페인은 현재 경제가 어렵고 가방 등의 도난이 우려되니 조심하란다. 특히 버스나 기차 탈 때 가방을 조심하란다. 우리나라도 이런 인상의 나라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내 안내 방송은 중국어와 스페인어와 영어로 진행된다. 너무 뻔한 내용이긴 하지만 좀 천천히 방송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현지 시각  새벽 5시 30분. 예정 시각에 마드리드 공항에 안전하게 도착. 예약한 장소에 픽업 나와 준 ‘순례자’님 덕분에 숙소까지 무사히 도착한다.

  (에피소드 하나. 카미노를 준비할 때 네이버카페에서 ‘순례자’라는 아이디를 가진 카페지기를 만난 후,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고, 카미노에 실질적인 도움을 많이 받았다. 새벽 시간 픽업 서비스를 신청하면서 나는 당연히 ‘순례자’님이 여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약속 장소에서 내 이름을 대면서 기다리는 사람은 덩치 좋은 남자였다. 순간 무서운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너무 긴장한 탓인가? 나는 침착하게 아이디가 뭐냐고 물었다. ‘순례자’란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그의 차에 탑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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