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보다 친절함과 단정함
내 영어실력 x (매장관리 + a)
내가 가진 영어실력 x (매장관리 + a)라는 공식에서
‘그래. +a 말이야! 분명히 매장 관리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있을 텐데. 과연 그게 뭘까?’
친절함
1) 수리해 드려요
가끔 매장에 들어섬과 동시에 가방에서 물건을 찾는 고객들이 있다. 바로 교환이나 환불을 원해서 가져온 제품을 꺼내는 일종의 수신호다.
그나마 교환은 괜찮은데 환불을 원하면 조금 난처해진다. 매장 입장에서는 매출이 마이너스(-) 되는 것이니 안 받는 것이 좋고, 고객 입장에서는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으니 환불을 원한다. 그래서 ‘정책(Policy)’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매출이 마이너스되지 않는 선에서 고객의 불만족스러운 부분을 긁어준다면?! (물론, 정책 내에서 말이다.)
먼저 미소 한 스푼을 얼굴에 띄우고, 고객이 환불을 원하는 이유를 들어본다.
가장 많은 사례로는 구매한 지 얼마 안 된 링 귀걸이 뒷장식이 안 잠긴다고 가져오는 경우다. 자세히 살펴보면 뒷침이 눌려 반대쪽 장식과 각도가 안 맞은 것이다.
‘귀금속세공기능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으로서 간단한 수작업은 가능하기에 뒷침을 살짝 들어 올려 반대쪽 장식에 끼워주었다.
‘탈칵'
"이제 됐어요. 한번 해보실래요?"
분명히 안 돼서 불량이라고 생각하고 가져왔는데 몇 초만에 정상적으로 작동하니 고객 표정에도 당황한 기색이 비친다.
"가끔 사용하다 보면 뒷침이 눌릴 수 있어요. 그럴 때 이렇게 살짝 들어 올려주면 괜찮아져요."
미소를 띠면서 “Thank you”를 외치는 고객들을 볼 때면 나도 마음이 놓인다. 그 외에 사례들 역시 문제에 따라 환불 또는 수리로 진행한다.
친절함
2) 안내해 드릴게요
샵 위치가 몰의 문 앞에 위치해 있는 만큼 사람들의 다양한 문의를 받는다. 특히나 길을 묻는 질문이 많은데, 보통영어레벨을 가진 나에게 스피킹을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기에 반갑기도 하다.
'그 샵은 길 건너편에 있어.', '저 홀로 가서 오른쪽으로 가면 보일 거야.'
사실 어떻게 생각하면 그렇게 얼굴을 마주하고, 웃어 보이는 게 잠재고객을 위한 하나의 서비스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그들이 주얼리가 필요하거나 선물을 고를 때, 문득 내가 서있던 그곳이 기억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아저씨, 할아버지, 뒤뚱거리며 뛰어다니는 아기들도 만나면 반갑게 웃어준다.
그리고 그렇게 미소 띠고 웃다 보면 나도 기분이 좋다.
단정함
매장에서 고객을 응대하는 직원이 깔끔하고 단정한 이미지를 유지하면 조금 더 신뢰감이 든다.
경력단절 10년 동안 아이들 키우느라 관리하지 못했던 외모를 오랜만에 살피고 정리했다.
헤어: 일을 시작하기 전 길고 지저분하던 머리카락을 단정한 단발펌으로 다듬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어색하기도 했지만 10년 전 직장 다닐 때의 나로 돌아간 것 같아 기분이 살짝 좋아졌다.
메이크업: 인터넷의 메이크업 영상을 살펴보고 아이라이너와 쉐도우를 샀다. 오랜만에 그리는 아이라이너는 삐뚤빼뚤 위아래로 파도쳤다. 내 얼굴도 얼룩으로 파도칠까 봐 쉐도우는 연한 컬러로 골랐다.
옷 쇼핑: 상의는 유니폼을 입기에 유니폼과 잘 어울리는 바지를 구매했다. 제대로 된 내 옷에 돈을 쓰는 일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다행히 손님들의 눈에도 보기 좋았는지 칭찬이 오고 가는 훈훈한 분위기와 스몰토크를 이어갈 수 있었다. 아마 여성고객들을 상대하는 일이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것 같다.
내가 영어 이외에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면서 얻은 것이 있다면 바로 자신감이다.
이 나라에서 근로자로 일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내가 이루지 못하는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 조금만 신경 쓰면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정도의 센스와 노력은 누구나 할 수 있기에 해외취업에 자신 없는 학생들이나 경력단절을 끊어내기 두려운 주부들에게 당신도 할 수 있다고 얘기해주고 싶다. 그게 내가 [나는 보통영어의 외국인 노동자입니다.]를 연재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