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I’ 성격에 보통영어 레벨인데요.
내가 세일즈 어시스턴트(판매직)가 됐다.
그것도 ‘I’ (Introversion) 성격에 ‘보통’ 영어 레벨인데 말이다.
여러 번의 CV 제출과 면접, 짧은 파트타임 경력을 가지고 또 한 번의 인터뷰를 봤다.
10:00 AM
주얼리 샵 사장님과 인터뷰를 했다. 한국 주얼리회사에서 했던 업무들, 세일즈의 유, 무, 세일즈 어시스턴트 및 고객 서비스에 관한 생각을 물어보셨다. 그리고 한국에 오게 된 이유를 비롯한 내 소개를 했다.
면접을 본 사장님께서 실습 요청을 하시면서 계획에 없던 오후 스케줄이 생겼다. 실습은 고객이 많은 1시부터 2시까지 매장에서 직접 일을 해보는 것이다. 판매는 처음이라, 그것도 영어로는 더 처음이라 바로 몇 시간 뒤인 실습준비에 온 집중을 쏟아내야 했다. 주얼리 판매에서는 어떤 영어를 많이 쓰는지 몰라 서치를 하고, 어려운 문장은 나의 보통 영어레벨에 맞춰 달달 외워갔다.
1:00 PM
정말 그 시간대에는 많은 고객들이 매장을 방문했다. 내가 처음으로 응대한 고객은 할머니 손님이셨다. 가지고 계시던 귀걸이 침이 부러져 새로운 제품을 찾고 계셨다. 역시나 외워갔던 문장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습득하지 않은 언어는 활용하기 쉽지 않다.) 할 수 없이 보통 레벨에 맞는 짧고, 쉬운 문장으로 응대했다. 대신 '미소'를 한 국자 추가했다. 한 스푼만 추가하기에는 내 영어실력의 맛을 바꾸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1시간 사이에 내가 응대한 3~4명 정도의 고객이 제품을 구매하셨다. 사실 그 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영어로 제품을 처음 팔아본 것에 비해 결과가 좋아서 흠칫 놀랐다. 어딘가에 몰래카메라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잘하시는데요? 계약서 보내드릴까요? “
2:15 PM
"네."
그렇게 나는 얼떨떨하게 취업이 됐다. 흥분되고, 떨렸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카페에 들어가 커피 한잔을 시키고 앉았다. 생각해 보니 실습 준비하느라 점심도 거의 못 먹은 상태였다. 하지만 배고픔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내 머릿속은
어?! 내가 했네?!
생각보다 잘했네?
나도… 할 수 있네!!!
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무엇인가를 해냈을 때의 성취감, 안도감, 행복감 같은 게 느껴졌다. 이런 기분이 얼마만인지 모른다. 경력단절 기간이 10년이니 아마 10년 만일수도.
그동안 내가 알고, 느꼈던 나의 모습 아니었다. 그 이상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마음 한편에 훅 자라 있었다.
그동안 내 머릿속에 있는 취업의 벽은 높고, 두꺼웠다. 문이나 창문은 찾아볼 수 없었다. 높은 벽으로 인해 드리워진 그림자가 언제나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나는 그 벽 바로 밑, 그림자 속에 웅크리고 앉아 내 뒤의 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너무 높고 크잖아… 아마 나는 안될 거야.' 스스로를 낮춰가며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용기를 내어 CV를 제출하면서 그 벽의 그림자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아주 천천히 걸어 나왔다. 면접을 보면서 그 벽에서 조금 더 멀어져 갔다.
그렇게 서서히 벽에서 멀어졌고, 어느 순간 뒤돌아보니 전체적인 벽의 모습이 보였다. 그 벽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리 높지 않았다. 어쩌면 내 키보다 조금 클 뿐이었다. 두껍지도 않았고, 문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보였다.
희망을 안고 계단을 하나씩 밟으며 문으로 올라가려는데, 그 벽 밑으로 그림자 안에서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바로 나의 예전처럼. '이 벽 생각보다 높지 않아요. 제가 멀리서 봤는데 진짜 높지 않아요. 용기 내서 딱 한 발자국만 내디뎌보세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첫 출근을 했다. 벽에 있던 계단을 뛰어올라가 기뻐하며 문을 열었는데,
아뿔싸.
벽이 하나 더 있네...?!
또 하나의 벽을 넘는 보통 영어의 세일즈 이야기, 다음 주에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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