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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십사 메가헤르츠 Jul 20. 2024

세일즈 어시스턴트가 되다

저… ’I’ 성격에 보통영어 레벨인데요.


내가 세일즈 어시스턴트(판매직)가 됐다.

그것도 ‘I’ (Introversion) 성격에 ‘보통’ 영어 레벨인데 말이다.




여러 번의 CV 제출과 면접, 짧은 파트타임 경력을 가지고 또 한 번의 인터뷰를 봤다.


10:00 AM

주얼리 샵 사장님과 인터뷰를 했다. 한국 주얼리회사에서 했던 업무들,  세일즈의 유, 무, 세일즈 어시스턴트 및 고객 서비스에 관한 생각을 물어보셨다. 그리고 한국에 오게 된 이유를 비롯한 내 소개를 했다.


면접을 본 사장님께서 실습 요청을 하시면서 계획에 없던 오후 스케줄이 생겼다. 실습은 고객이 많은 1시부터 2시까지 매장에서 직접 일을 해보는 것이다. 판매는 처음이라, 그것도 영어로는 더 처음이라 바로 몇 시간 뒤인 실습준비에 온 집중을 쏟아내야 했다. 주얼리 판매에서는 어떤 영어를 많이 쓰는지 몰라 서치를 하고, 어려운 문장은 나의 보통 영어레벨에 맞춰 달달 외워갔다.


1:00 PM


정말 그 시간대에는 많은 고객들이 매장을 방문했다. 내가 처음으로 응대한 고객은 할머니 손님이셨다. 가지고 계시던 귀걸이 침이 부러져 새로운 제품을 찾고 계셨다. 역시나 외워갔던 문장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습득하지 않은 언어는 활용하기 쉽지 않다.) 할 수 없이 보통 레벨에 맞는 짧고, 쉬운 문장으로 응대했다. 대신 '미소'를 한 국자 추가했다. 한 스푼만 추가하기에는 내 영어실력의 맛을 바꾸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1시간 사이에 내가 응대한 3~4명 정도의 고객이 제품을 구매하셨다. 사실 그 한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영어로 제품을 처음 팔아본 것에 비해 결과가 좋아서 흠칫 놀랐다. 어딘가에 몰래카메라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잘하시는데요? 계약서 보내드릴까요? “


2:15 PM


"네."


그렇게 나는 얼떨떨하게 취업이 됐다. 흥분되고, 떨렸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카페에 들어가 커피 한잔을 시키고 앉았다. 생각해 보니 실습 준비하느라 점심도 거의 못 먹은 상태였다. 하지만 배고픔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내 머릿속은


어?! 내가 했네?!
생각보다 잘했네?
나도… 할 수 있네!!!


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무엇인가를 해냈을 때의 성취감, 안도감, 행복감 같은 게 느껴졌다. 이런 기분이 얼마만인지 모른다. 경력단절 기간이 10년이니 아마 10년 만일수도.


그동안 내가 알고, 느꼈던 나의 모습 아니었다. 그 이상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마음 한편에 훅 자라 있었다.





그동안 내 머릿속에 있는 취업의 벽은 높고, 두꺼웠다. 문이나 창문은 찾아볼 수 없었다. 높은 벽으로 인해 드리워진 그림자가 언제나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나는 그 벽 바로 밑, 그림자 속에 웅크리고 앉아 내 뒤의 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너무 높고 크잖아… 아마 나는 안될 거야.' 스스로를 낮춰가며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용기를 내어 CV를 제출하면서 그 벽의 그림자에서 한 걸음, 한 걸음 아주 천천히 걸어 나왔다. 면접을 보면서 그 벽에서 조금 더 멀어져 갔다.


그렇게 서서히 벽에서 멀어졌고, 어느 순간 뒤돌아보니 전체적인 벽의 모습이 보였다. 그 벽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리 높지 않았다. 어쩌면 내 키보다 조금 클 뿐이었다. 두껍지도 않았고, 문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보였다.


희망을 안고 계단을 하나씩 밟으며 문으로 올라가려는데, 그 벽 밑으로 그림자 안에서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바로 나의 예전처럼. '이 벽 생각보다 높지 않아요. 제가 멀리서 봤는데 진짜 높지 않아요. 용기 내서 딱 한 발자국만 내디뎌보세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첫 출근을 했다. 벽에 있던 계단을 뛰어올라가 기뻐하며 문을 열었는데,



아뿔싸.
벽이 하나 더 있네...?!



또 하나의 벽을 넘는 보통 영어의 세일즈 이야기, 다음 주에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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