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사이에서 고개 내민 기쁨이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한 뒤 오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매장 분위기가 평소와 다르게 느껴졌다. 판매된 제품이 추가 진열되지 않았고, 청소 상태도 달랐다.
'뭐지... 이 느낌은?
뭔가 이상한데...
아니겠지,
내가 예민한 걸 거야.
윙... 윙윙... 윙
다시 일을 시작하려는 순간 전화 진동벨이 울렸다. 사장님의 전화였다.
네?
여기 매장을
저… 정리한다고요…?
내가 그렇게 노력하고, 애써왔던 매장 문이 곧 닫힌다고?!!
'내가 예민한 게 아니었어! 이상한 그 느낌이 맞았어.' 등줄기에 소름이 끼쳤다. 그리고 그동안 열심히 일했던 매장이 정리된다는 사실에 허탈한 기분이 연이어 휘몰아쳤다.
이곳은 타 매장대비 오클랜드의 가장자리, 그중에서도 주거지역에 위치해 경기가 안 좋아지면 지갑이 가장 먼저 닫히던 곳이었다.
7월부터는 뉴질랜드가 겨울로 접어들며 경기 정체기 구간에 들어선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작년대비 올해는 경기가 더 좋지 않았다. 누군가는 9월까지를 ‘(경기가) 죽은 달’이라고도 표현할 정도니 이 정도면 비즈니스를 하는 사업자들에게 힘든 시기임이 분명했다.
평소보다 판매가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매일 개선점을 생각하고 시행 착오해 가며 노력했는데 안 됐다니! 결국 정리된다니!
경기침체가 내 잘못은 아니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올 것이라는 내 이론과 상당히 다른 결과였다. 책을 보면 보통 노력과 고난 끝에 행복한 결말이 오던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그 믿음이 달라서, 세상은 책과 다르다고 알려주 듯 지극히 현실적인 결말이라 기운이 빠지고, 아쉬웠다.
인사이드아웃에 나오는 것처럼 이 날의 전화 한 통은 나에게 파란색(슬픔) 핵심기억을 하나 만들어줬다. 노란색(기쁨) 핵심기억만 가득하길 바라던 나의 생각에 비상 불이 켜졌다.
'열심히 해도 어차피 안 되는 건가?' 곧 정리될 매장에 서있는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깊은 한숨이 길게 품어져 나올 때쯤 내 머릿속에 노란색 기쁨이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생각해 보니 나는 그동안 판매, 진열, 매장관리, 고객 응대 등등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일을 경험해 봤다.
내가 직접 해보고, 느끼면서 배운 이 경험들을 또 다른 경험들과 함께 본부 바닥에 잘 펼쳤다. 그 경험들을 잘 다져서 다양한 경험 구슬을 만들어내고, 또 다른 씨를 뿌려 경험의 자아 나무를 더 크게 키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나는 다시 시작해도 이 경험을 토대로
또, 잘 해낼 수 있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도 할 수 있다는 용기,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 뒤로 밀려나도 다시 걸어 나갈 수 있는 용기. 용기와 자신감을 배운 시기였다.
이곳 제품들이 새로운 매장으로 이동하는 기간 약 3주.
그 후 나는 다른 지점으로 출근을 한다. 그 3주라는 시간 동안 충전을 위해 한국행 티켓을 끊었다.
그리고 퇴근하는 길에 나 자신에게 속삭였다.
‘새로운 경험’의 순간을 잘 지나왔어.
잠깐 쉬면서 심호흡 한 번 하고,
다시 ‘익숙’의 길로 걸어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