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찰나, 인간의 성숙함
따뜻함을 넘어서 살짝 뜨거운 온도의 샤워를 좋아한다. 그 물이 몸에 닿으면서 느껴지는 행복한 찰나가 있다. 그 찰나가 끝날 때쯤 시작되는 김서림에 뿌옇게 변해버린 구름 속. 그곳에서 나는 많은 것들을 떠올린다. 그러다 보면 가끔 '나'를 발견하는 순간이 있다. 목욕 중 아이디어가 떠올라 '유레카'를 외친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이나 발명가 아르키메데스처럼 말이다.
문장을 반추(反芻, rumination)하다.
40세가 넘으면 모르는 것이 없을 줄 알았다. 이 정도 살았으면 내 생각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양한 매체를 통해 사람들의 생각을 들여다보면 상상도 못 했던 생각들이 용암처럼 뿜어져 나온다. 그러면 그 생각을, 문장을 구름 속에서 반추해 본다.
최근에 깊이 그리고 반복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문구가 있었다.
인간 본성의 가장 깊은 원칙은
인정받고 싶은 갈망이다
나는 모든 것을 잘하고 싶었다.
달리기는 1등 하고 싶었고, 미술상을 받고 싶었다. 대학에서는 장학금을 받고 싶었고, 회사에서는 승진하고 싶었다. 욕심인지 열정인지 모를 에너지를 바닥까지 긁어 써대며 하루하루를 살았다. 덕분에 가끔은 상도, 장학금도 받으며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았다. 지금에서야 '그게 인생인걸.'하고 이해되지만 보통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결과가 이렇다고? 하지 말까?'의 경우가 많았다.
여기요! 저 여기 있어요! 저 좀 봐주세요!
오프라인 세상에서도 조용하고, 평범한 내가 온라인에서는 달라졌을까? 아니! 전혀.
영상은 부끄러워 찍지 못하고, 목소리는 너무 간지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로드하는 것들의 ‘좋아요, 조회수, 팔로워 수’ 등의 숫자에 집착이 생겼다. 릴스를 한번 업로드하면 시시때때로 들어가 조회수를 확인했다. 특별한 재능도, 소개할 상품도, 눈에 띌만한 서비스도 없었지만 그 숫자가 나를 인정해 주는 척도라 믿었다.
인정받고 싶은 갈망
몰랐다. 내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이렇게 컸는지. 이게 인간 본성에 가장 깊은 원칙이었는지.
그동안 ‘인정받아야만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 머릿속에서는 그것이 너무나 당연했기에 안 되는 상황 속에서도 계속 발버둥 쳐왔다. 힘을 빼야 수면 위로 떠오르는 몸을 그저 세게, 쉬지 않고 발버둥 쳐왔다. 그래야 열심히 사는 줄 알았고, 인정받는 줄 알았다.
그런 나를 뒤 흔든 것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인정받으려 하지 말라
라는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의 문장이었다. 인정받으려 하지… 말라고?! 이것이야말로 역설적이게도 내 40년의 인생이 인정받지 못하는 기분이었다.
온전한 나로 사는 자유
'인정, 어떻게 받으려 하지 말라는 거야?' 한 번도 인정과 상관없이 살아본 적이 없다. 샤워기 헤드 중간까지 머리를 집어넣고 입으로 숨을 쉬어가며 생각했다.
인정욕구에서의 자유?
인정은 나 자신에게서 오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타인에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주변 신경 쓰지 않고 온전한 나로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인정욕구에서의 자유일까?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예민하게 주변 상황을 눈치 보는 나는 의식을 좀 줄일 필요가 있다. 많은 길로 퍼져있는 시선과 의식을 점점 좁혀 나에게 집중하면 타인에게서 전해지는 인정의 욕구는 확실히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생물학적 신호인 본능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니 차선책으로 인정의 본능을 조절하거나 다른 가치를 위해 억제하는 것이다. 화가 난다고 무작정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닌 스스로를 차분히 다스릴 줄 아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쉽지 않다. 스스로 나 자신을 알고, 그것을 깊숙이 생각하고, 고쳐나가는 것.
하지만 그것을 통해 나 자신이 더 나아지고 성숙된 것을 느낄 때, 그때 또 느껴지는 행복의 찰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