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

행복의 찰나,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한 잔


그날 만나!


집안일을 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대부분 조용한 일상을 보낸다.

그러다 어느 날 쯔음엔 그 조용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하는 경우가 있다. 특별한 이벤트가 있거나 긴 연휴가 시작되거나, 때로는 아무런 이유 없이 약속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준비

손님을 맞이하는 날은 부엌에서 요리를 하느라 청소할 시간이 없다. 청소는 보통 전 날 해둔다. 완벽주의성향을 내려놓고 싶은 마음에 청소 중에도 '뭐, 어때' 주문(이전 글, 제9화)을 여러 번 외쳐보지만 이상하게도 자꾸 지저분한 구석까지 눈길이 끌린다.

'집이 항상 깨끗하려면 손님을 자주 초대하면 돼…'

혼자 중얼거려 본다.


메뉴는 일상에서 자주 접하지 않는 특별한 음식으로 준비한다. 한국에서 서양식 요리를 준비했다면 뉴질랜드에서는 한식이 특별한 메뉴가 됐다.

마트로 가 평소 담는 양보다 두, 세 배 많은 양의 음식을 카트에 담는다. 집으로 돌아와 쉴 틈도 없이 야채를 씻고, 그날 메인이 될 요리 재료를 손질한다.


파티

손님들이 도착하면 웰컴 드링크로 와인과 가벼운 애피타이저를 곁들인다. 보통은 바질, 토마토, 치즈, 견과류 등을 넣은 샐러드로 준비하는 편이다. 서로의 안부와 근황을 확인하면서 조용하던 집 안이 시끌시끌해진다. 거실에 틀어둔 음악도 분위기를 한층 더 밝게 만들어준다.


요리가 완성되거나 숯불에서 완벽히 구워지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식사가 시작된다.

"만나서 반가워", "초대해 줘서 고마워" 등의 인사와 함께 잔을 부딪친다.



짠!,
Cheers!



따뜻하게 준비된 음식의 냄새, 술잔이 부딪칠 때의 맑은 소리, 잔의 기울임에 맞춰 흔들리는 술의 움직임. 다양하게 느껴지는 감각들은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연대감과 교감의 표현

술을 함께 마신다는 것은 같은 순간을 공유하고 연결되는 느낌을 준다. 일종의 '우리 함께한다'는 선언이자,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장치인 것이다. 거기에 눈을 마주치며 같이 외치는 말이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있어도 다 같이 연대감을 느낄 수 있다.


술잔을 함께 부딪치며 외치는 말에는 다양한 표현과 뜻이 담겨있다. 영어권에서 가장 흔한 표현은 "Cheers!", 프랑스는 "Santé!" (상떼/건강을 위하여), 독일 "Prost!", 스페인 “¡Salud!”, 일본 "乾杯!" (Kanpai) 등이다. 우리나라 역시 '건배!', '짠!'을 비롯해 세대별로 새로운 표현들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술잔 구호는 단순한 말이 아니라 우정을 다지고, 기쁨을 공유하며, 함께 하는 순간을 기념하는 상징적인 행위인 것이다.


하지만 술잔을 마주대는 것이 행복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내가 사회생활을 막 시작할 때까지도 회사 회식에서 술을 권유하는 문화가 남아있었다. 내 직급보다 높은 직급을 가진 사람이 술잔을 부딪치면 사양하지 말고 마셔야 하는 그 분위기는 언제나 별로였다. 반만 마시고 내려놓는 일에도 항상 잔소리가 따라붙었으니 회식이 즐거웠을 리 없다. 그렇게 마신 끝에 주량이 늘어난 장점(?)도 있었으나 타율적인 분위기에서는 아무리 건배를 외쳐도 연대감이나 교감은 느낄 수 없었다.



행복의 찰나

손님들과 헤어지고 난 후 테이블 위에는 언제나 화려한 여운이 남아있다. 늦은 시간이지만 정리하는 일이 힘들거나 스트레스받지는 않는다. 아마도 술잔을 부딪치며 서로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감정을 나누며 많이 웃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과의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시간은 행복감을 가져다준다.

그중에서도 처음 잔을 부딪치는 "짠!"은 나에게 행복의 찰나를 가져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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