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너는 푸른 바다야

행복의 찰나, 바다

by 육십사 메가헤르츠



바다

여름휴가 때 가는 곳


나에게 바다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1993년 7월 말


무더운 여름 한가운데에 들어서자 아빠, 엄마는 회사로부터 여름휴가를 받았다. 아니, 그쯤이면 거의 모든 국민들이 무더위를 피해 여름 방학과 휴가를 맞았다.


우리 가족은 소나타|| 를 타고 바다로 여행을 갔다. 몇 시간이 걸렸는지는 기억에 없다. 다만 멀고 멀어 쉬었다 갔고, 밀리고 밀려 도로 위 뻥튀기를 사 먹고도 한참을 갔다.


바다 한 번 보는 것이 그렇게나 어려운 일이었다. 나 어릴 적엔.

그래서 바다에 대한 특별한 감정 뭐, 그런 거 없었다.



2025년 6월



'아, 바다네.'


아직 성능이 발달하지 못한 AI로봇처럼 별다른 감정 없이 뉴질랜드 바닷가 앞에 살고 있다.

일부러 바닷가 근처 집을 찾은 것은 아니다. 섬나라여서 바다가 근접해 있고, 그 앞에 있는 많은 집들 중 하나라고나 할까. 오늘도 라이딩 중 무심하게 바다를 지나치다 문득 이 생각이 들었다.



바다,
이민 첫날부터 내 옆에 있었네...


여행자 모드 버튼을 켰던 첫날의 바다

먼저 뉴질랜드에 도착해 살고 있던 남편이 가족들 오면 꼭 같이 가고 싶었다며 우리를 가까운 바다로 데려갔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선을 찾기 힘든 하늘빛의 맑은 바다. 이렇게 파란 바다와 자연이 드넓게 펼쳐진 이곳에 왜 이제 왔냐고 묻는 것 같았다. 시원한 바람에 숨도 덩달아 시원하게 쉬어졌다.



딱 3개월이 지나자 여행자 모드는 자연스럽게 꺼졌다.

가족과 지인 없이, 어린아이 둘을 주말 내내 끼고 있을 때도 나는 바다에 있었다. 우리 셋은 모래사장에 성을 만들었고, 나뭇가지와 조개를 모아 성 주변을 꾸몄다. 아이들 생일이면 모래로 케이크를 만들고 축하 노래를 불렀다. 바위틈에서 게를 발견한 날은 며칠을 이야기하고, 책을 찾으며 놀았다.



주변 지인들이 차례로 영주권을 받을 때쯤, 서로 축하하기도, 위로하기도 했던 그곳도 바다였다.

"너도 곧 영주권 나올 거야. 조금만 기다려봐."

지인의 고마운 위로가 위로가 되기에 부족했던 그날. 강한 바람에 흩어지는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수평선을 한참 바라봤다.

'그 두 장짜리 종이가 뭐라고...'



코로나 시기로 3년간 뉴질랜드에 발이 묶였을 때, 그나마 가능했던 산책을 핑계로 바다에 나갔다.

신나게 뛰놀던 아이들 뒤에서 한국이 그리워 뚝뚝 떨어지던 눈물을 몰래 훔쳤다. 어느 날의 바다는 공감해 주듯 짙은 회색 잿빛으로 가득 차 있었고, 어느 날의 바다는 위로해 주듯 눈이 부시게 반짝였다.



가족 중 유일하게 수영 못하던 내가 스노클링에 도전했던 곳은 물고기를 관찰할 수 있는 해양보호구역(Marine Reserve) 바다였다."엄마, 여기 큰 물고기 있어! 들어와 봐!" 발이 안 닿으면 빠질 것 같던 트라우마를 이겨내고 구명조끼를 꽉 조인채 들어갔던 바다가 기억에 있다.


감정이 목까지 거슬러 올라와 나를 마구 흔들어 놓을 때도 바다는 항상 내 옆에 있었다.

행복의 찰나에는 밝은 하늘빛으로, 슬픔의 찰나에는 어두운 회색 빛으로 그렇게 옆에 있었다.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다.



환한 미소와 함께 서 있는
그래 너는 푸른 바다야

너는 푸른 바다야

- 듀스, 여름 안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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