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찰나, 무지개
햇빛이 어둠을 조금씩 밀어내기 시작하면 나의 아침도 시작된다. 주방으로 나와 불을 켜고 식사를 준비한다. 난방이 없는 나라라 발이 시리다. 카펫이 깔려있는 방과 거실은 그나마 괜찮지만, 부엌에서는 나도 모르게 까치발을 들어 바닥에 닿는 면적을 줄여본다. 자주 신지 않는 슬리퍼를 부엌 전용 실내화처럼 밟고 서서 발 밑의 작은 히터를 켠다. 커다란 히터도 있지만 온기를 바로 느끼기에 이만한 녀석이 없다.
7시가 넘어 세상이 밝아지면 줄을 당겨 블라인드를 끝까지 올린다. 역시나 김이 서려 창문이 뿌옇게 덮여있다.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킬까, 아니야, 추우니까 좀 있다가 하자'
매일 아침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선택을 한다. 창문 너머 세상이 선명하게 보일 때쯤 하늘에 무지개를 발견한다. '무지개네...'
선명한 무지개를 처음 만난 것은 하와이 여행에서였다. 바닷가에 반쯤 앉고, 반쯤 누운 자세로 여유로움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을 때 해변에 무지개가 떴다.
우와!
무지개야!
저것 봐!
혹시나 금방이라도 사라질까 호들갑을 떨며 주위의 시선을 한 군데로 모으려 애쎴다. 마치 마술쇼를 처음 본 것 마냥 무지개가 사라지는 순간까지 감탄사를 외치고, 연신 촬영을 해댔다. '와, 신기해!' 잠깐이었지만 그때 느꼈던 신비로움과 '좋은 일이 일어날 것'같은 행복한 느낌은 아직 기억에 남아있다.
못 보던 무지개를 다시 보게 된 곳은 뉴질랜드이다.
비와 빛이 동시에 존재하는 이곳 겨울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무지개가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한다. 쌍 무지개, 흐려서 한참을 집중해서 봐야 하는 무지개, 구름에 가려진 짧은 무지개, 선명한 무지개 등이 길어야 몇 분 떠있다 사라진다.
사람들은 무지개를 희망이라 부르고, 기대로 여기고, 꿈이라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무지개는 하늘에 떠 있어 손으로 만질 수 없고, 자연 스스로가 일곱 빛깔의 색을 부드럽게 이어 만든 작품이기 때문이다. 또한 무지개는 언제나 잠깐이다. 빗줄기가 엷어지면 말도 없이 조용히 사라진다.
보고 싶을 때마다 볼 수 없고, 보고 있을 때조차도 오래도록 붙잡을 수 없기에 우리는 기대하고 바란다. 늘 그 찰나에 마음이 머무는 것이다.
내가 꿈꾸던 무지개는 화려한 것이었다. 높고, 선명하고, 예뻐서 누구나 오래도록 바라보길 바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세상을 마주하면서 나의 무지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대신 높진 않지만 완만히 길고, 선명하진 않지만 은은하고, 모두가 생각하는 예쁨은 아니지만 어느 누군가는 예쁘게 바라봐 줬다. 어쩌면 화려한 무지개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이것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누군가는 자신의 무지개를 바라보며 온전히 행복을 느끼는 반면, 햇빛이 잠깐 가리거나, 빗방울이 멈추거나, 보는 사람이 움직이거나, 태양 고도가 달라지면 누군가는 행복을 찾지 못하기도 한다. 찾지 못했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계속 존재하고 있지만 우리가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할 뿐이다. 어느 순간 비와 빛이 만나면 다시 내 앞에 나타날 것이다.
나는 오늘도 행복의 찰나를 느끼며 무지개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