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밥,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행복의 찰나, 베이킹

by 육십사 메가헤르츠


여기, 당신 앞에 밥과 빵이 놓여있습니다.

당신은 어느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밥 VS 빵


과거 나의 선택:

하얀 쌀밥에 찌개를 한, 두 스푼 넣은 다음 쓰윽 쓰윽 비벼 한 숟갈 가득 입에 넣는다. 한 자리에 앉아 말도 없이 두 그릇 뚝딱이다. 어렸던 그때도 나는 무조건 밥이었다. 엄마가 국에 밥 말아주면 뚝딱뚝딱 잘도 먹었다. 성인이 되어 친구들과 만날 때도 스파게티나 햄버거보다 감자탕, 순댓국, 찜닭을 선택했다. 그래야 속이 든든하고, 포만감에 행복했다. 그런 밥순이가 뉴질랜드로 이사하고 변하기 시작했다.


주식이 빵?!

이곳에 정착해서도 참 열심히 밥 해 먹었다. 대형 마트, 한국마트와 중국마트 3군데를 부지런히 오가며 장을 봤고, 반찬을 만들었다. 이유식도 쌀로만 만들어먹였다. 어느 순간 주위를 돌아보니 내가 있는 환경은 밥보다 빵을 선택하기에 더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빵을 배워볼까…?


기본적인 강력분, 중력분, 통밀가루부터 시작해 글루텐프리의 아몬드 가루, 코코넛 가루. 빵에 넣는 견과류와 건과일류, 아이싱 종류와 데코레이션에 필요한 캔디들까지 마트의 한 레일을 다 채우고도 부족할 정도이다. 크로와상, 머핀, 케이크, 바게트, 햄버거빵, 치즈빵, 롤 종류 등 이미 다 구워진 빵도 한 자리를 차지한다. 빵은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주변에 성큼 다가와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빵은 밥 사이 간식 아니었나?

빵은 전문 기술을 가진 사람들만 만드는 것이라 생각했다. 생일이면 알록달록 예쁘게 장식된 치즈 케이크를 사 먹었고, 평소에는 스테이크 치즈파이, 소세지롤 등을 간식으로 사 먹었다. 사실, ‘밥도 힘들다. 빵을 어떻게 만드냐.’하는 일종의 시위와 핑계를 돈을 주고 지불함으로써 대신하곤 했다.


어느 날, 그러니까 한국에서 즐겨 먹던 호두 파이를 이곳에서 샀던 그날. ‘이상하다. 분명히 맛있는데, 왜 맛이 없지?' 의구심이 들었다. 여러 베이커리를 찾아봐도 한국에서 먹던 호두파이의 맛을 찾기 힘들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먹겠다는 신념 하나로 직접 만들어 보기로 마음먹는다. 행여나 아쉬운 마음 들지 않도록 호두를 잔뜩 사서 볶는다. 잠시 후 고소한 향이 집 안을 가득 채운다. 그 향에서 행복이 조금씩 채워지는 게 느껴진다. 내가 좋아하는 바닐라 에센스와 시나몬도 추가한다. 한 맺힌 사람처럼 호두파이에 진심을 담는다. 필링을 채우고 오븐에 넣자 침이 꿀떡 넘어간다. 20분쯤 지났을까. 오븐 앞에 서서 초조하게 익어가는 파이를 바라본다. 머뭇거리던 손을 오븐 속으로 쑥 넣어 젓가락으로 찔러본다. ‘다 됐다!‘ 설레는 마음에 우왕좌왕거리다 커피 한잔을 내린다. 누가 봐도 한 조각을 잘라 커피와 함께 먹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먹기 좋게 식은 호두파이와 아메리카노를 입에 넣는다. 나도 모르게 눈이 저절로 감긴다.

‘하아… 그래. 이 맛이지.’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현재 나의 선택:

호두파이를 시작으로 베이킹에 재미가 생긴다. 빵이란 자고로 사 먹는 것, 이라 생각했던 내가 이제는 먹고 싶은 빵을 직접 만든다. 바스크 치즈케이크, 애플파이, 블루베리 머핀, 초코머핀을 만든다. 건강을 위해 통밀가루를 섞자 아이들이 싫다며 반대를 외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필링 가득한 건강한 빵을 만든다





한국 빵이 생각난다는 것

가끔 한국에서 먹던 빵이 생각난다. 슬리퍼를 끌고 시장으로 걸어가 꽈배기와 단팥방, 크로켓등을 산 뒤 검은 비닐봉지에 달랑달랑 들고 오던 그때. 그리고 내 손에 들려진 빵 봉지 하나.

지금보다 젊었고, 지금보다 더 많이 먹던 그때의 나. 그때의 빵이 생각난다는 것은 그때의 내가 그립고, 그때의 추억이 먹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 만든 것은 이라 불리는 추억이었다. 주방은 엉망이 되고,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괜찮다. 그리웠던 추억을 맛봤으니까.


오븐에 밀어 넣은 추억과 행복. 오랜 시간 구우니 더 맛이 난다. 뜨겁게 익은 행복을 조심히 꺼내어 먹는다.


맛있다. 내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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