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찰나, 운동
까딱까딱.
침대에 누워 엄지 손가락으로 스크롤을 내린다. 어느 순간 정신 차리고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이러고 있으면 안 되지.'
밖은 쌀쌀하지만 한번 일어나 본다. 옷을 챙겨 입는다. 운동화를 신는다. 밖으로 나가 걷기 시작한다. 목적지도 없고, 얼마를 걸어야겠다는 목표도 없다. 그냥 발길 가는 데로 움직인다. 어제는 동쪽, 오늘은 남쪽으로.
운동을 시작했을 때 평균거리는 3km였다. 걸으며 생각한다. '이제 집에 갈까?', '이 정도면 충분히 운동한 것 같은데.', 집에 가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처럼 지름길을 선택해 가며 집 앞 근처만 거닐다 돌아왔다. 그리고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운동했으니 이제 쉬어도 돼.' 마치 나 자신에게 죄책감 느끼지 않기 위해 행동하는 일종의 '쇼'같았다. 그렇게 운동하는 '척'하며 몇 달을 보냈다.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쉬었던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조용한 아침. 여전히 누워있고 싶은 마음은 가득했지만, 밖으로 나간다. 걷기 시작한다. '척'이었지만 3km가 연습이 된 건지, 잠을 잘 자고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지만 걸음의 속도를 높이고 싶어진다. 그리고 갈림길에서 지름길이 아닌 먼 길도 택해본다.
흐린 날씨가 잦아지는 뉴질랜드 가을이지만 나의 주문(이전 글) '뭐, 어때! 비 오면 맞고 샤워하면 되지.' 되뇌며 걸어본다. 걷다 보니 잊었던 계절을 만난다. 새로운 사람들과 마주친다. 기분 나아지는 것이 느껴질 때쯤 애플와치에서 5km를 걸었다는 알람이 울린다. 한 시간쯤 지났나 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맞은편에서 조깅을 하는 사람을 보고 나도 한번 뛰어본다. 얼마나 안 뛰었는지 짧은 거리지만 심장이 터질 듯하다.
그동안 아이들에게만 운동시키고 중요성을 강조했지 사실은 나에게 더 필요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누이트의 깃발 이야기처럼 이누이트 족은 걸으면서 화를 되새기며 그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한다. 한참을 걷다가 분노가 가라앉으면 그 자리에 깃발을 꽂아두고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그들의 걷기는 단순한 분노 해소를 넘어 자아성찰의 한 형태인 것이다.
숲 속을 천천히 걷는 일본의 ‘산림욕'(신 린 요쿠, 森林浴), 북유럽의 ‘프리루프트슬리브(Friluftsliv, 자연 속에서의 삶)'도 화가 나거나 마음이 복잡할 때, 일부러 자연 속으로 나가서 산책이나 트레킹을 즐기는 것이다. 자연 속에서 ‘자유롭고 단순하게’ 자신을 되찾으려는 것이다.
요즘에는 하이킹, 캠핑 등의 야외활동이나 '자연치유' 프로그램, '마음 챙김' 워크숍 등 자연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활동들이 많아졌다. 사실 자연과 함께하는 운동이 좋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전 세계가 다 알고는 있었다. 다만 직접 나가서 움직인 사람들만 진짜 기분을 느끼고 안다.
귀찮은 마음을 접어두고 밖으로 나가면 제일 먼저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따뜻한 집에서 막 나온 터라 옷깃을 여며본다. 조금씩 걷다 보면 나를 따라 비춰오는 햇살이 따뜻함을 전해준다. 풀내음이 스친다. 꽃 향기에 고개를 돌아본다. 때로는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는다. 영 기운이 안나는 날에는 빠른 박자의 음악을 귀에 꽂는다.
손에 닿을듯한 나뭇잎은 손을 번쩍 들어 꼭 한번 만져보고, 놀라울 만큼의 커다란 나무를 손으로 쓸며 걸어간다. 자연의 느낌을 오감으로 느끼느라 바쁘다. 그러다 엔도르핀(Endorphins)과 도파민(Dopamine)으로 가득 차면 집까지 뛰어 들어오기도 한다.
나도 가끔 그렇다.
자연 속에서 활기찬 에너지는 채우고, 우울함은 가라앉히고 싶었다. 체력을 더 키우고 싶었다.
그 사실 하나로 다시 운동화를 신는다. 이곳은 이제 겨울을 앞두고 있다. 춥고, 비 내리는 뉴질랜드의 겨울. 더 나가기 어려워지지만, 자연을 느끼고 체력을 키워나가며 행복의 찰나를 느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