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굴 탓하겠어, 내가 나를 탓하지
가슴에 혹이 보이는데 조직검사를 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4년 만에 찾아간 한국, 건강검진센터에서 들은 말이다.
불규칙한 모양의 혹이 보인다니, 물론 이민하면서 몸 고생, 마음고생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그것 때문일까? 순간적으로 과거로부터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간다.
”조직검사? 해야죠. 그런데 출국날짜가 정해져 있는데 그전에 가능할까요? “
아이들 학교와 남편 회사 때문에 비행 출국일자가 정해져 있었지만, 병원에서는 그다음 주에나 검사가 가능하다고 했다.
’ 그래, 인생이란 것이 한 치 앞도 알 수 없지. 계획대로 될 리가.‘ 결국 3주 정도 출국날짜를 연장해야 했다.
조직검사의 결과는 ‘악성 혹은 아닌 것으로 판명되나 1년마다 추적검사를 통해 여부를 살펴야 한다.’였다. 의사 선생님은 혹시 모양이 바뀌거나, 크기가 커지거나 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찝찝한 검사 결과를 영문으로 받아 챙기고 뉴질랜드로 돌아왔다.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일하고, 육아하며 다시 바쁜 일정을 보냈다. 그렇게 10개월이 지났다. 엄마와 영상통화를 하던 중 나온 한 마디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잊어버리지 말고, 가슴 체크 잘해야 돼~”
생각났다! 나의 가슴이 품고 있는 혹.
한국에서 가져온 의무 기록 사본 증명서(영문)를 들고 GP를 찾아갔다. 이 나라는 모든 검사나 Specialist doctor(전문의)를 만나려면 gp의 추천서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의무 기록 사본 증명서를 보고, 간단한 체크를 한 GP가 추천서를 써주며 물었다.
보험 있으신가요?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불안함. 보험!
한국에서 남편, 아이들것까지 그렇게나 열심히 챙겼었던 그것. 비행기 착륙과 동시에 내 머릿속에서 사라졌던 그것. 집에 돌아와 보험사와 상담해 보았지만 지금은 보험에 들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꼼꼼히 챙기지 못한 나 자신을 탓하며 보험 없이 검사날을 예약했다.
한 달 정도 기다린 끝에 검사날이 다가왔고, 가슴조영술과 초음파 검사를 받았다. 한국에서는 오른쪽 가슴에만 혹이 있다고 했었는데, 초음파 화면에는 왼쪽 가슴에서도 혹처럼 보이는 검은 무엇인가가 보였고, 초음파사는 다양한 각도에서 그것의 길이를 쟀다. 그리고 나에게 조직검사를 했는지, 한국 병원에서 촬영한 영상이 있는지, 등을 물었다. 다행히 한국에서 의무기록사본 증명서(영문), 진료확인서, 초음파영상 CD를 챙겨 온 덕분에 이곳에서 작년의 내 상태와 비교를 할 수 있었다.
보험 없이 NZ$650(한화 약 52만 원)이라는 검사비를 내고 돌아온 지 3일이 지났다. 1년마다 추적 검사를 해야 한다던데 매년 50만 원을 병원에 투척할 생각을 하니 저 깊은 곳 어딘가에서 한숨이 밀려 올라온다. 검사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부디 아무 일 없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