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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분방 Feb 10. 2019

21화 야경기행, 숭례문(남대문)의 밤


조선시대의 흔적을 보여주는 4대문은 현재 모두 온전하지 못한 채로 보존되어 있다. 남대문 역시 성곽이 끊긴 채로 서울 도심 속 우둑허니 서서 우리나라 국보 제1호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남대문은 1962년 12월 20일 국보 1호로 지정이 되었고, 조선시대의 정문이며 '숭례문'이라고도 불린다. 조선시대의 4대 문에는 '인의예지'라는 말이 하나씩 들어가 있는데, 숭례문은 '예'가 들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소실이 되는 등 아픈 상처도 있었고, 우리에게 돌아올 때까지 참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다시금 우리에게로 돌아온 남대문의 밤이다.





야간에는 남대문이 개장을 하지는 않기 때문에 외각에서 촬영을 할 수 있는 포인트들이 나온다. 굳이 내부로 들어가지 않아도 멀리서 이곳을 바라보면서, 조선시대에 남문이 있었던 자리를 기억한다. 기존 현판과 다르게 세로로 현판이 되어 있는 것이 약간은 어색하기도 한데 이는 관악산의 화기를 막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숭례문의 경우 불의 산이라 일컫는 한양 남쪽 관악산의 화기를 막기 위해서 세로로 길게 글을 써서 성문 밑을 막고 누르는 형태로 현판을 만들면, 화기가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한다. 






같은 공간에서 촬영하는 구도의 한계는 있다. 어딘가에 올라가지 않는 이상 비슷한 구도로 모두가 남대문의 밤을 촬영할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나마, 남대문의 아름다운 밤을 남겨보는 것에 만족해본다. 그저 우리 곁에 이 공간이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 





정문 쪽으로 가서, 돌 난간 위에 올려놓고 사진 한 장 더 남겨본다. 정면에서 담는 사진인데, 성곽이 끊겨 있어서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조금은 낯선 빌딩들이 서울성곽길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봐주는 것은 어떨까. 수원화성의 경우 보존이 상당히 잘되어 있어, 항상 서울의 4대 문도 "그랬다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이 모습이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행운일 것이다. 






이렇게 잠시 상공회의소 쪽으로 흘러가는 차량들의 잔상을 남겨보면서, 이번 이야기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남대문의 경우 야경 촬영 장소로 접할 수 있는 아주 쉬운 포인트이기 때문에, 카메라가 있고 삼각대가 있다면 한번쯤 방문해서 촬영해볼 것을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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