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나는 여느 식당에서나 단골손님이 되는 편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우선 좋아하는 메뉴가 있는 식당을 한 주에 세 번쯤 간다. 메뉴가 질리지 않는다면 같은 음식으로 주문한다. 가리는 재료가 있다면 더 좋다. “연어 샐러드로 주시돼, 제가 생양파는 못 먹어서요. 빼고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이 주, 삼 주 가면 나는 양파 안 먹는 단골손님이 된다. 잘 먹고 기분 좋게 나설 때에는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라는 인사도 잊지 않는다.
단골이 되면 좋다. 뜸하다 가면 “요즘 바쁘셨어요?”라는 밥값에는 포함되지 않은 안부 인사가 오가고, 삶은 계란이 터졌다면 그냥 드리는 서비스로 받기도 한다. 무엇보다 두 번 세 번을 가도 아니 매일 가도 불편하지 않는 식당이 생긴다. 그렇게 집 밖의 주방이 곳곳에 생기는 거다.
회사 마치고 급식소처럼 가는 가게가 있었다. 거기엔 매니저 한 분, 시간제 아르바이트생 두 분이 있었다. 아침 7시 30분부터 저녁 9시까지 운영하는 곳이라, 주말에는 점심과 저녁 두 끼를 먹으러 가는 날도 있었다. 아르바이트생 분들은 “주말인데 샐러드만 드세요?”라며 걱정해주기도 했다. 맛이 질려야 끊을 텐데 앞으로 덜 맛있게 만들어주셔야 할 것 같다는 농담으로 함께 웃곤 했다. 선결제를 해 두고 장부에 금액을 제해가며 단골 중에 단골로 거듭났다. 그러다 퇴근 후 일과가 생기면서 주중 3회를 가던 가게를 열흘 만에 들리게 되었다. 그날은 목요일 저녁이었고, 늘 도착하던 시간인 6시 20분이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왔죠?”라고 했더니 아르바이트생과 매니저 세 사람이 반색하며 맞아주었다. 알고 보니 내일이 매니저 분의 마지막 출근날이라고 했다. 다른 일로 급하게 그만두게 되었다며 그러면서 오늘 견과류 손님이 올지 이야기한 참이라고 했다. 어떤 메뉴에도 매번 견과류 토핑을 추가하던 나는 견과류 손님으로 불렸는데, 그만두기 전에 나를 기다렸다는 거다. 고정 토핑이 견과류였지 매번 다채롭게 주문하던 나는 직원 입장에서 꽤나 귀찮은 손님이었을 텐데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은 손님으로 생각해 준 게 고마웠다.
그날은 밥 먹는데 기분이 묘했다. 이대로 마지막이라기엔 받은 호의가 컸다. 매번 야채와 밥의 비율을 6:4로 맞춰주고 식기를 사이에 두고 서로 고맙습니다와 잘 가세요를 주고받던 사이였는데 여느 날과 똑같은 인사로 마무리할 수 없었다. 다음날 매장 오픈 당번이 매니저 님인 걸 확인하고 동네 베이커리 가게에서 파운드케이크를 한 조각 샀다. 출근 전 가게에 들러 포장한 케이크를 건넸다. 그동안 맛있는 저녁을 만들어줘서 감사했다고, 갑작스럽게 관두는 거면 분명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며 응원과 축하를 아낌없이 했다. 양껏 했다. 그러자 그녀는 “감사해요.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런 걸 다 …”라며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 뒤로 단골 가게를 못 간 지 삼 주가 넘었다. 문득, 아르바이트생 분들도 나를 기다릴까 궁금하다. 직원과 손님일 뿐이었지만 매니저 분과 쌓은 친밀감이 왠지 아르바이트생 분들과도 형성되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누군가와 마음을 나눈 순간을 생각한다. 그런 날은 내 하루에 대한 평점부터 다르다. 인사를 나누고, 응원을 주고받고, 서로에게 유쾌한 시간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소확행이다. 그 시간이 길 필요도 없다. 고맙습니다며 눈인사하는 이십 초면 족하다.
어차피 한 번 보고 안 볼 사이라는 표현에 기대어 냉소적이고 싶지 않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표현도 있는데 두 표현이 싸우면 어느 쪽이 이길지 모른다. 사바사는 진리라는 말로 따져 봐도 그렇다. 밑져봐야 본전 아닐까. 처음엔 어색해서 괜히 했나 눈치 게임하는 나도 수고스럽고, 말 많은 손님에 직원도 당황스럽다. 그런데 그 불편함은 대체로 무해하다. 조금 더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에 건넨 인사란 걸 느낄 수 있다. 그러니 여러 번 중에 한 번 해봐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