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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케이 Nov 21. 2023

그녀의 슬픔

대화의 단서


오늘 이야기의 그녀는 나의 언니다. 두 살 터울인 언니와 나는 닮았다는 이야기보다는 다르다가 익숙했다. 외양도 언니는 키가 컸지만 난 작은 편이었고, 언니가 뭐든 잘 먹는 편이었다면 난 뭐든 적게 먹는 편이었다. 집안일을 나누더라도 엄마 곁에 붙어있는 쪽이 나라면 언니는 집안일도 엄마 곁도 원하지 않는 편이었다. 성향이 정말 달랐는지 생존전략이었는지 다르다에 익숙해진 우리는 함께 보내는 시간도 굳이 늘리지 않게 되었다.  필요할 때 서로를 찾되 일상에서 적당히 무관심했다. 그래서 내가 아는 언니는 일면에 불과하다. 내가 아는 언니의 모습에는 무표정, 서운함, 정당한 화 이런 장면들이 우선한다. 이번 주말 가족모임에서도 늘 보던 모습을 봐버렸다.


일요일 아침에 모이기로 했는데 아빠가 형부에게 ‘갑자기’ 저녁을 먹자며 호출했다. 거절하지 못한 형부가 언니와 함께 왔다. 예상대로 언니의 표정에는 마뜩잖음이 잔뜩 묻어 있었다. 언니의 주변으로 어색해서 나쁜 공기가 돌았다. 곧장 식탁으로 앉아버린 언니에게 인사도 안 하냐는 잔소리가 떨어졌다. 언니는 지지 않는다는 듯이 식탁에 앉은 상대를 가리지 않고 불평 섞인 말을 뱉었다. 언니의 공격을 동생은 ‘난사’라 했고, 그래도 자신은 큰누나한테 뭐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 말에 분위기가 전환되었다. 나는 언니가 누군가에게 화를 내고 있는 게 아니라 그냥 날카로운 말에 싸우고 있단 걸 알았다.     


언니에겐 가족이 둘이다. 나고 자란 원가족과 형부와 이룬 가족. 나는 언니랑 형부와 잠시 동거인으로 지낸 적이 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언니가 누군가에게 뭔가 해달라고 떼쓰는 모습을 보았다. 함께 있는 나마저 편안해지는 행복한 느낌이었다. 언니는 K-장녀로 컸다. 그리고 대신 사과하고 싶을 만큼 무미건조하게 자랐다. 언니는 고등학교 3년 동안 같은 운동화를 신고 다녔다. 언니는 대학을 가자마자 스스로에게 색을 입히기 시작했다. 여러 종류의 여러 브랜드의 물건을 샀다. 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하지 못해서 눌렀던 것들을 일순간에 폭발시키는 것 같았다. 가족들은 언니가 많이 사는 사람이란 걸 안다. 그리고 덧붙인다. 물건을 아낄지 모른다고, 매번 저렇게 뭔가를 산다고.


언니는 그런 가족 사이에서는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지 않았다. 언니가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대해서 알게 된 건 난 불과 1년 전이다. 엄마 아빠는 알고 있을지, 궁금할지 모르겠다. 언젠가 다른 친구에게서 k장녀의 억울함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별다른 이유 없이 오로지 장녀여서 주어지는 의무가 많았다. 내 기억에도 그랬다. 언니는 회초리를 맞을 때도 두 손 드는 벌을 받을 때에도 늘 “언니인 네가 동생들에게 솔선수범해야지”라는 말로 먼저 맞았다. (아 물론, 나는 “동생인 네가 언니한테 까불지 말아야지”가 붙었다.) k-장녀라는 말마저도 해진 위안일 만큼 언니의 슬픔은 아주 오래 지속되고 있는 감정일 것 같았다.


으레 당연하게 솔선수범과 부탁이 오가는 상황에서 언니는 자주 서운해지고 자주 화가 났을 것 같다. 형부와 있을 때 언니는 많이 달랐다. 생각보다 귀엽고, 장난기도 호기심도 많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언니는 꽤 용감한 사람이었다. 언니는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사람을 잘 지켰다. 부모님이 형부에게 무리한 요구를 할 때 참지 않았다. 이번에 언니에게 배운 단어는 ‘식(食)폭행’이었다. 형부에게 계속 더 많이, 더 먹어란 말로 부담 주지 말라는 언니의 용어였다. 식탁에서의 불평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주말에야 겨우 같이 있을 수 있는 두 사람만의 시간을 뺏긴 게 싫었던 거다. 그래서 엄마의 생일이었고, 다 차려진 식탁에 밥만 먹으러 오란 아빠의 의도는 알지만 화가 났던 걸 거다.


나는 언니의 슬픔이 슬프다. 언니 슬픔이 너무 외롭게 느껴진다. 가족들로부터 많은 말들이 원망스러웠을 것 같다. 안타까운 건 언니의 말 역시 흩어져버리지 않고 누군가들의 마음에 박혀 그녀의 슬픔은 또 누군가의 슬픔으로 나의 슬픔으로 왔다. 되도록 자주 만나지 말자, 자주 보지 말자가 끝인사가 되었다. 서로 찌르는 말을 덜 할 수 없을까와 같은 방법론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다. 나는 그저 봤다. 오랜 말 습관에 서로 찌르고 찔려 날카롭게 슬퍼하는 나의 언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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