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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케이 Nov 20. 2023

사랑 방구

대화의 단서

주말, 엄마 생신을 앞두고 가족 모임이 예정되었다. 이번 모임의 참석자는 아버지, 어머니, 언니, 동생, 형부, 그리고 나. 그러니깐 내가 나고 자란 다섯 식구와 새 식구 형부 이렇게 여섯 명이었다. 생일 모임은 일요일이었고, 십만 원이 우스운 KTX 비용에 이틀간 가족과 가득 채운 시간을 보낼 계획으로 토요일 이른 아침 기차를 탔다. 오늘의 이야기는 이틀 중 첫째 날, 가족들과 보낸 오후의 일이다. 그리고 방귀와 있던 일이다.


토요일 점심, 아빠와 동생 셋이서 점심을 먹었다. 난 전날밤 11시까지 했다는 엄마표 새 반찬들을 냉장고에서 꺼냈다. 고기를 좋아하는 동생은 고기를 굽고, 저염식을 하는 아빠는 아빠표 국을 끓였다. 서로가 좋아하는 반찬을 밥그릇 가장 가까이에 놓아주면서 함께 밥상을 차렸다. 맛있다는 말과 부지런히 오가는 젓가락질 소리. 그렇게 한 입, 두 입 배부르게 먹었다. 좋은 게 많은 나머지 과식했다. 꾸르륵꾸르륵하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방귀가 시작됐다. 지난 한 주, 한 달간 먹던 종류와 양이 달랐던 탓인지 소리와 냄새, 빈도 모두가 평소 같지 않았다.


아빠의 생리현상을 목격할 때마다 입을 댔던 나였다. 아빠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너도 뀌네”라고 했다. 아빠의 놀림에 나는 쳇하는 표정을 하고 아무도 없는 안방으로 건너갔다. 쉽게 멈추지 않을 것 같은 방귀에 혼자 있고 싶었다. 간간히 말을 거는 동생에게 냄새를 들킬까 자는 척했다. 저녁을 먹으러 온 언니와 형부도 어서 가길 바랐다. 샤워를 마치고 다시 입은 옷에서 방귀냄새가 덜 빠진 듯했다. 잘 준비를 하면서 엄마와 드라마를 보는 데 방귀가 나왔다. 여러 번 모른척하다 엄마는 “아이고, 냄새야”라 했다. 


“그러네, 자꾸 방귀가 나오네.”라고 답했다. 그러나 아까와의 다른 마음이었다. 형부랑 같이 있는 언니 앞에서는 힘 꼭 주고 절대 들키지 않으려 했지만, 엄마 앞에서는 그러려니 할 수 있었다. 아빠의 놀림에는 마음이 상하지만 엄마는 놀림에는 아무렇지 않았다. 내게 방귀는 아주 정확한 척도였다. 들키고 싶지 않은 사람과 들켜도 괜찮을 사람으로 내 마음에 안전거리가 가장 가까운 사람이 누군지 알게 했다.


나는 가족을 사랑하는가. 그렇다. 나는 친구를 사랑하는가. 그렇다. 나는 떨어진 낙엽, 가을 아침 공기를 사랑하는가. 그렇다. 나를 엄마로 착각하고 내 손을 잡아버리는 아기를 사랑하는가. 그렇다. 사랑이 어렵지 않은 난 가끔 헷갈린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때 방귀는 알려준다. 누군가에게는 들킬 수조차 없고, 들키기 싫어서 숨어버리고 언젠가 방귀가 주는 당혹감과 굴욕감을 감당하느니 결혼해도 각방을 쓰고 싶은 나에게 들켜도 수치심이 느껴지지 않는 대상. 어쩌면 나와 한 몸 같은 사람. 맞다. 나는 그 사람을 가장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방귀는 사랑의 환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나의 취약점이었다. 그래서 이 도구는 내가 각별히 사랑하는 사람을 알게했다. 내가 엄마를 특별히 사랑하는 이유는 모르지만 그 사람 앞에서는 많은 걸 꺼내보여도 괜찮다. 안정적이다. 좋은 게 혹은 싫은 게 많아서 뭘 좋아하는지 헷갈릴 때 자신의 아킬레스건을 활용해 보면 생각보다 정확한 답을 알 수 있다. 가장 약한 모습마저 보일 수 있는 상대는 본인이 가장 가깝게 느끼는 사람이 맞을테니깐. 더 좋은 점은 사랑방귀를 잘 쓰면 누굴 가장 좋아하고 있는지 매일매일 쉽게 알 수 있다.  언젠가는 도구가 바뀔 수 있을 것 같다. 상대가 바뀔 때도 있을 거다. 수가 늘 수도 있겠다. 평생에 한 번 혹은 여러 번 바뀔 수 있겠다. 어쩌다 바뀌게 되는지 관찰하는 재미도 있겠다. 다른 누군가도 이 재미를 느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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