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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케이 Dec 05. 2023

권위자의 말

대화의 단서

“죄송하지만”같은 머쓱해지는 말부터 “아오, 짜증 나.”라는 솔직 그 자체인 말까지 다 한다. 말을 하고 난 다음의 내 표정은 할 말 다 해서 속 편한 표정이다. 그럴 수 있다니 너무나 다행이다.


다행이란 말에서 짐작했듯이 처음에 나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회사가 어렵기만 했던 시작은 어디서부터였을까를 생각하면 입사 첫날로 이어진다. 너무 힘든 일은 기억에서 잊는다는 말대로 입사 첫날은 한 장면 말고는 모두 지워버린 듯하다. 기간제 근로자로 일하던 곳에서 채용이 있어 지원했고 최종합격했다. 회사 신입직원 중에 기간제 경력이 있는 사람은 내가 처음이라 했다. 그걸 두고 누군가는 중고신입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선례가 되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모두 부담으로 받아서 자주 미숙했다. ‘신입이니깐 실수할 수 있지’란 말에서 어떤 안도감도 느낄 수 없었지만 변명의 여지는 있었다. 신입은 실수가 잦았고 자주 죄송하다 했다.


‘누구 잘못이냐’는 말이 하나도 멋있지 않아서, 내가 잘못한 날이 너무 많아서 어느 순간부터는 다 내 잘못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필요해서 묻는 말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나는 누구도 탓하지 않는 것으로 나의 존엄을 유지한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서 우울증을 겪는 인물들이 문제가 생기면 모두 자기 잘못 같다는 말을 하는데 회사 문을 열고 나가면서 그날의 실수가 떠올라 울던 나도 같은 증상이었던 것 같다. 스스로 뭐 잘한 게 있어 병원까지 가냐는 자조와 무기력이 있을 만큼 그때의 내 사고는 비논리적이었다.


그랬던 내가, 더 이상 못하겠다고 이야기할 수 있었던 건 팀장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에서 끝나면 다행이고, 잘잘못을 따지면 업무분장의 담당자 책임인 게 당연하고, 모든 게 다 내 잘못이라는 역할극 중이던 나에게, 새로 온 신임팀장은 하루는 나의 보고를 듣더니 “그거 oo 씨 잘못 아니잖아요.”라며 잘잘못을 따졌다.


“그거 oo 씨 잘못 아니잖아요.”, “그거 oo 씨 잘못 아니잖아요.”, “그거 oo 씨 잘못 아니잖아요.”


그날 나는 처음으로 권위자의 말과 그 말이 가진 힘을 알았다. 그리고 내게 정말 필요했던 말이 ‘제가 책임질게요’라며 남탓하는 사람과 다르다는 잘난 척이 아니라, 너의 잘못이 아니란 말임을 알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회사를 오는 게 얼마나 힘든지 솔직해질 수 있었다. 사내 메신저 알림만 와도 혹시나 또 실수했을까 봐 전전긍긍하고, 아무 일이 없어도 하루종일 불안해서 퇴근이면 기진맥진했다. 한시라도 빨리 직장을 벗어나고 싶어서 지하도를 뛰어갔다. 종국에 물리적인 공간분리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을 때 내 잘못이 아니라고 해준 팀장에게 휴직을 말할 수 있었다. 


이후에 회사로 돌아온 나는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나도 다 해봤다’는 유행어처럼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늘고, 관철되지 않더라도 물어보는 의견에 대해 내 생각을 말하는 게 조금은 편해졌다. 일에 대한 부담감이 처음에는 10만큼이다가 이제는 7, 6, 5 조금씩 낮춰지는 것 같다. 이렇게 되기까지 무려 4년 반이 걸렸다는 사실은 너무나 아깝다. 후배들은 그런 일을 겪지 않았으면 해서 그들의 행동과 말에 불신의 그림자가 어른거리지 못하게 나는 자주 그들의 일에 엄지손가락 이모티콘을 보내게 되었다. 후배가 부서장과 같은 질문을 할 때면 촉은 이미 부서장급이라며 적극 칭찬했다. 내 권위가 잘못을 판단할 수 있는 급은 아니지만 칭찬으로써는 아주 힘이 있어서다.


책임질 권한도, 보상도 받지 않는 내가 왜 그렇게 잘못을 끌어안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위축되면 모두가 가장 하기 싫어하는 말을 떠넘겨 받아야 할 것만 같아서, 아집을 부리고 싶어서였을 수도 있겠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사람들 보는 앞에서 스스로를 낮추는 자아비판은 굉장히 위험한 것이었다. 운이 좋아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누군가가 있었고, 이제는 같은 상황도 달리 볼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근데 꼬박 4년 반이 필요했다. 결코 이 경험이 필요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피할 수 있다면 모두가 피하기를 바라기에 대리님 정도인 나는 동료와 후배를 칭찬한다. 오늘도 그럴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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