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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케이 Jan 30. 2024

엄마에게

대화의 단서

엄마에게 난 무례해. 속상해서 울었다는 말을 하고 이튿날 저녁, 그다음 날 아침에 온 전활 모두 받지 않았어. 부재중표시를 보면서 다음번 엄마와의 통화를 상상했어. 엄마는 받자마자 왜 이렇게 통화가 힘드냐고 서운함과 짜증 섞인 말투였고, 나 역시 바빴다며 낮게 깔린 목소리로 대답해. 그런 못된 상상을 해놓고, 그래놓고 어느 행간에서 엄마로부터 연락이 없는 날은 아쉽다는 말을 보고 크게 공감을 해. 엄마를 생각하는 많은 순간들이 이처럼 내 맘대로 내 멋대로야. 엄마 번호는 외워서, 엄마는 전화를 잘 받아서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나는 엄마를 놓지 않으면서 엄마가 나를 불러 세울 땐 쉬이 사라져. 그렇지, 나는 엄마에게 자주 무례해.


나는 종종 엄마를 대신해. 매년해도 매번 어렵단 연말정산부터 엄마는 상상도 못 해봤다는 미국 여행과 대학원 진학,  요즘은 다르다며 신기해하는 소개팅, 데이트, 애정 표현 등이 버무려진 연애담. 엄마께 아닌 이야기의 끝에 그래도 이런 이야기가 통한다며 엄마한텐 조금도 보내지 않는 용돈을 잘 모르는 아이들에게 보내고, 그들을 만나러 갔다 온 나의 다음을 물어. 어땠는지 물어. 그런 날이면 엄마는 서울에서 서른 살에 직장생활을 하며 미혼이고 아이도 없는 내가 되지. 아빠랑 밸런타인데이에 처음 만나, CC였던 엄마가 결혼퇴직제라는 정확한 용어도 모른 채 그때의 분위기가 그래서 결혼과 함께 회사를 그만둔 이야기, 아들인 동생을 임신했을 때에는 작은 체구에 조금만 먹어도 숨쉬기가 어려웠던 이야기, 그래서 열 달 내도록 5kg밖에 체중이 늘지 않았던 이야기를 들으며 두 딸을 출산하고 셋째를 출산하는 김여사가 되기도 해.


나는 그렇게 엄마를 내 세계로 초대하고, 엄마는 나를 엄마의 세계로 데려가. 어느 작가의 말처럼 그렇게 나는 서른에 불과하지만 벌써 오십 년을 넘게 살아내게 된 거지. 엄마는 오십 년의 생을 칠십 년 넘게 살아낸 게 된 거야. 나는 엄마를 연민하고 두려워해. 외갓집을 다녀온 날이면 할머니의 허리가 다 꼬부라져서, 눈이 침침하대서, 아픈 와중에 할아버지 밥상을 차리고 있어서 속상하다는 엄마의 말을 들으면서 엄마가 연민하는 모습이 엄마의 모습에도 드문드문 보인다는 말을 하게 될까 봐, 혹은 내 생에도 그 모습이 들어설까 봐. 나 무서운 지?


속상했다 말하고 전활 안 받던 요 며칠, 난 꽃밭이라는 단어에 머물렀어. 꽃길보다 넓은 꽃밭이라는 단어 정중앙에 앉아 있었어. 엄마에게 나는 영어 문장을 유창하게 말하는 딸, 대학원을 다니는 딸, 혼자 미국을 가는 딸. 그렇게 꿈꿔보지도 못한 걸 하는 신기한 딸이고, 그게 엄마의 취향이라는 걸 알아. 나는 엄마에게 신기한 세상을 보여주려고 더 많은 것들을 하려 할지 모르지. 그런데 어제처럼 슬펐다가 기분이 나아졌다고 한 날, 그렇게 기분 나쁜 일이 생길 수도 있지만 다시 괜찮아지기도 하더란 말에 엄마는 그랬냐란 말 대신 자꾸만 왜 그랬는지 걱정했다만을  되풀이하더라. 엄마의 딸에겐 좋은 일만 있었으면 하는 마음, 나쁜 일도 잘 이겨내는 일보다 나쁜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무모한 마음이었을까?   


그런 엄마에게 나는 내가 머물렀던 그 꽃밭에서의 시간들을 나누고 싶다. 쌍기역, 오, 치읃, 꽃. 비읍, 아, 티읃. 밭. 이렇게 두 글자를 쓰면서 누런 흙밭에 유채꽃 만발한 밭고랑 사이에 앉은 내 옆에 엄마를 초대해 여기 참 좋다며 말하고 싶은 거지.


그리고나서 우리 둘 다 가보지 못한 세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으니 이제 못 가볼 곳은 없겠다며 하하 호호 떠들게 될까. 엄마는 그래도 잘 모르겠다며, 해변따라 기차 여행을 할 수 있다던 그곳은 알아봤냐는 말을 하게 될까.


못됐고, 말 많고, 신기한 딸로 내가 이토록 다채로운 건 서른 해를 넘겼지만 앞선 이십 년, 사십 년을 들려주는 엄마가 있어줘서였겠다. 지난 며칠 괜히 애끓게 해서 많이 미안해. 내 몫의 슬픔을 다한 줄 알고 제일 먼저 엄마한테 전화를 했는데, 괜찮으니 걱정 말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하면서 괜찮지 않단 걸 알았어. 말과 다른 마음에 나도 속상했어.


엄마,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해. 다 다른 말인데 엄마한테는 이 말들이 다 같은 말이 돼.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해. 고맙고, 고맙고, 고마워. 미안하고, 미안하고, 미안해. 열흘 뒤에 만날  깨끗한 종이에 큰 글씨로 써서 갈게. 그땐 내 마음도 진짜 괜찮길. 그래서 꽃밭도 해변 보이는 기찻길도 같이 보자. 그날은 서로의 연장선이 아닌 같은 지점에서 같이 기억하는 날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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