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쨍-하지도 비가 마구 쏟아지지도 않는, 미친 듯이 덥지도 춥지도 않은 칙칙하고 무거운 공기가 주변을 감싸는 날씨다. 그렇게 애매한 공기를 크게 들여 마시며 아침 운동 차 밖으로 나왔다. 한 장의 엽서를 보는 듯한 이질적인 풍경은 1년이 지난 지금도 익숙치 않다.
테트도르(Parc de la tête d'or) 파크를 걸으며 프랑스의 하늘을 보고 있으면 수많은 생각이 사라지며 그나마 답답한 기운이 가신다. 녹빛 물이 원래 그 색이었는지 주변 나무들이 호수에 비춰 그런 빛을 띄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여기 이곳의 물은 늘 묘하다. 햇빛이라도 비추는 날이면 이곳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유럽의 울적한 공기를 조금이라도 벗어나고자 빛이 드는 날엔 늘 찾을 수밖에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가끔 테트도르파크에서 위고(hugo)와 끌로에(chloe) 그리고 은설과 피크닉을 즐긴다. 각종 음식을 싸오기도 하고 그냥 누워서 책을 읽기도 한다. 이 공원에서 음주는 금지되어 있지만 당연히 프랑스이니 몰래 먹는 와인 또한 즐겁다. 낮잠을 자기도 하고, 때로는 '스크램블'이라는 단어 맞추기 게임을 하기도 한다. 프랑스인인 위고와 끌로에, 그리고 벌써 3년째 프랑스에 살고 있는 은설에게 매번 져서 벌칙을 받긴 하지만. 이곳은 무겁지만 평화롭다. 녹음이 무르익어가는 모습이 들어있는 호수를 바라보며 나무 그늘 아래를 거닐면 힘들었던 지난 1년을 잠시나마 망각할 수 있다.
아침운동을 끝내고 샤워 후에 출근을 한다. 매일 아홉 시 편안한 검정 티셔츠에 청바지 그리고 유하가 보내준 신발을 신곤 집을 나선다.
보통 주방이라고 한다면 텔레비전 속에서 보아왔듯이 새하얀 첫눈처럼 깨끗하고 반듯한 조리복을 입고 티 하나 없이 짧게 자른 머리를 하고 보송보송한 행주를 잡고 일하는 요리사의 모습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건 오산이다. 쾌적하고 시원한 홀과 달리 기름과 온갖 끓는 요리들로 후끈한 열기가 피어오른다. 윙윙-돌아가는 시끄러운 기계음에 조리복 안쪽 손과 팔은 칼에 베인 것인지 기름에 데인것인지 모르겠는 상처들로 가득하다. 보통 아침 9시 반부터 밤 11시까지 일을 하는데 여긴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정말 미칠 듯이 바쁘다는 말밖에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바쁘다는 건 정말 나쁜 일이다. 바쁜 게 얼마나 나쁜 일이냐면 소중한 것들이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소소한 하루를 담은 친구들의 안부도, 나를 걱정하는 부모님도, 그리고 내겐 없어선 안 될 것 같다고 여기던 신유하라는 여자까지도.
이곳 '꼼므뚜아'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프랑스 요리 레스토랑이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미슐랭 1 스타를 획득했다. 입사 초기에 미슐랭 1 스타를 받은 것이니, 이런 곳에서 일한다는 사실이 뿌듯했지만 내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더 잘해야겠단 마음과 실수를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들이 나를 힘들게 했다. 그래서 오롯이 나 자신만을 생각했다. 그러기에도 벅찬 하루였기에.
레스토랑 클로즈 시간은 21시 30분, 거의 22시라 보면 된다. 마감까지 다하고 아주 느긋한 파리지앵 사람들을 다 돌려보내고 나면 어느덧 밤 11시가 된다. 늘 녹초가 된 몸으로 집으로 향한다.
집으로 가는 길은 꽤나 외롭다. 캄캄한 밤이 되면 낮에 한적했던 길이 손강가로 조깅하러 나온 프랑스인들로 붐빈다. 여름밤을 즐기는 사람들과 조깅을 하는 사람들로 한 밤의 손강(Saône R.)은 나와 다르게 활기가 넘친다.
집으로 가려면 손강(Saône R.)과 론강(Rhône R.) 사이에 있는 자코뱅 광장을 지나야 한다. 자코뱅 광장의 분수는 나를 늘 차분하게 한다. 기본적 회색과 물에 바래 노랗게 변한 색의 조화, 눈물인지 분수인지 모르게 그 석상들이 젖어들어갈 때가 좋다. 나 대신 울고 있는 것 같아서. 그렇게 붐비는 광장을 지나 한적하고 으슥한 뒷골목 어귀로 들어오면 어떻게 보면 고풍스럽고 또 어떻게 보면 너무나 허름한 집이 나온다.
집은 다갈색 벽면으로 한 사람 겨우 들어가는 곳이다. 침대 하나 작은 간의 책상 하나 옷장 하나. 심지어 샤워실은 공용이다. 대충 몸을 씻곤 삐걱거리는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켠다. 어둠과 적막만이 가득한 원룸에 시린 빛이 어린다.
늘 피곤에 절어 힘들어하면서도 잠들기 전 SNS를 하고, 일할 때는 보내지 못했던 문자들을 답장하며 맥주 한 캔을 마신다. 하루의 마무리로 맥주는 참 좋은 친구다. 유하는 탄산이 있다고 맥주를 마시지 않았다. 소주는 또 너무 독하다고 마시지 않았고 우울할 땐 우울하다고 마시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기쁠 때, 행복에 겨울 때 와인 한두 잔을 마셨다. 오히려 나보다 그녀가 프랑스와 잘 어울렸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에는 몸이 고되 바로 잠들기 일수여서 SNS도, 지인들과의 연락도, 유하와의 전화도 못했었는데 이젠 이 생활에도 퍽 익숙해진 듯싶다.
매일 유하의 SNS도 살펴본다. 궁금하기도 하고 버릇이 되어버렸기도 하다. 일요일, 오늘의 유하는 친구들을 만났나 보다.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 올라와 있다. 그리고 꽃을 받았나 보다. 보라색 수국. 유하는 수국을 좋아했다. 언제고 나에게 물었다.
'나 꽃 사줘! 엄청 커다란 걸로! 보라색 수국!'
그러면 나는 그냥 그래-라고 하면 되는 것을 나중에-라고 뒤로 미뤘다.
'보라색 수국의 꽃말은 변덕과 진심이래. 딱 나다 그치?'
유하는 그렇게 말했다. 수국이, 보라색 수국이 자신 같아서 받고 싶다고. 진심만큼은 강력한, 너무 크나큰 진심과 솔직함이 파도처럼 밀려와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사랑하는, 하지만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변덕 그 자체. 동그란 눈에 사랑을 가득 담아 내게 보이는 진심과 신뢰의 눈빛이,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내 볼과 귀를 훑으며 사랑한다 말하는 작은 입술이, 비에 흠뻑 젖어 날지 못하는 작은 새처럼 부서질듯 연약한 그녀의 쇄골에 담긴 마음이 그 때의 내겐 영원할 것 같았다.
예전엔 별 의미 없던 글들이 지금은 가슴 한편을 저릿하게 했다. '내가 좋아하는 보랏빛 꽃'이라 적힌 글자가 센치해진 밤을 아리게 했다. 맥주 한잔의 힘을 빌려 연락을 해볼까 하다가 차마 안부를 묻지 않는다. 너무 이른 시간일 거란 생각에 취하지 않는 맥주를 계속 홀짝거렸다. 어차피 너무 늦었다. 그 약속은 이젠 영영 뒤로 밀려버렸다. SNS에 올라간 해맑게 웃는 유하의 사진을 보니 먹먹해진 기쁨과 슬픔이 맥주 한 모금과 섞여 안으로 들어온다.
월요일.
유일하게 일주일 중 쉬는 날이다. 밖에서 내 이름을 외치며 시끄럽게 쿵쿵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무겁게 내려앉은 눈을 감았다 떴다.
-문 열어 봐!!! 선우야!!!! 문 열어!!!! 일어나!!!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와 쿵쿵 두들기는 소리가 계속 들려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10시 반. 조금 늦잠을 자나 싶더니만 어김없이 매주 월요일마다 행패다.
-왜.
-오늘 놀기로 했잖아. 일광욕
우리는 테트도르파크에서 히히덕거리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일광욕이라 불렀다. 우물쭈물하는 척하는 그녀는 어김없이 내방으로 불쑥-들어왔다. 은설이 이렇게 불쑥불쑥 찾아올 때면 화가 나면서도 그리운 기분이 든다. 꼭 유하 같다. 불쑥 그리고 뜬금없이 나에게 쳐들어 오는 것이.
-여기선 쫌 조용히 해. 옆방까지 다 들리잖아.
-다들 한국인이잖아. 지금쯤 방에 없을 걸?
그렇지만 은설은 유하와 다르다. 속마음이 비치치 않는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들여다보지 않아서 일지도 모르겠다. 은설과 다르게 유하는 단순, 심플 그 자체였다. 싫으면 싫다고 좋으면 좋다고 가 분명했다. 그냥 얼굴에 답이 적혀있었다.
-나가자. 위고랑 끌로에 둘 다 공원에 있어.
은설은 나가자면서 내 침대에 걸터앉았다. 나는 내 영역에 누가 들어오는 것이 싫다. 아무렇지 않게 들어오는 게 꼭 유하 같아서 더 싫다. 나는 알았다는 신호로 벽에 걸려있던 남색 모자를 썼다.
은설은 리옹대학교에 다니는 유학생이다. 나보다 2년 먼저 프랑스에 왔고 타지에서 적응하기 힘들었던 내게 많은 도움을 줬다. 페라슈(Perrache)에 있는 메트로에 가서 교통 신청을 해야 했을 때도, 계좌 신청을 위해 BNP베엔빼에 가서 잘 하지도 못하는 불어를 해야 했을 때 도와준 것도, 핸드폰 개통이 아직 안되었을 때 와이파이가 유일하게 파흐티유(part-dieu)에 라파예트 백화점에서 터진다고 알려준 것도 은설이었다. 내겐 참 고마운 사람이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여긴 타지고 난 외국인이고 그냥도 외로운 곳이니까 옆에서 살짝만 토닥이고 알려줘도 고맙고 금세 사랑으로 변질되는 곳이었다. 그래서 외로운 은설이 외로운 나의 영역을 쉽게 침범하는 것이리라.
- 어, 왔어?
누가 봐도 너무나 튀는 오렌지 티셔츠에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위고가 하늘을 쳐다보며 불어로 말했다. 보지 않아도 누군지 안다는 듯 하늘을 보던 눈을 감는다. 나는 하늘과 파랑이 한 줄씩 그어져 있는 줄무늬 돗자리에 앉으며 눈을 감고 있는 위고 옆 끌로에에게 인사를 했다.
-거의 한 달 만인 것 같은데?
그 말에 끌로에가 아닌 은설이 네가 안 와서 그런 거잖아.라는 대답을 입을 삐쭉 내밀며 불어로 한다. 끌로에는 미소로 답한다. 끌로에와는 그다지 친한 사이가 아닌데, 같이 일하는 동료 위고의 연인으로 이렇게 가끔 공원에서 만나 이야기도 하고 게임도 하고 맛있는 것을 먹기도 한다. 그녀의 얼굴은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하는 그런 파란 눈의 금발미녀로 약간의 주끈깨가 그녀를 더 아름답게 했고 차분함과 조용하게 말하는 어투에서 신뢰감이 느껴졌다. 어쩌면 그녀는 나를 배려해 천천히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위고와 말할 때 때론 빠른 속도로 말하곤 했으니까. 나는 그녀의 그런 배려심이 좋았다. 장난기 넘치는 위고와도 잘 어울린다고도 생각했다.
-오늘 햇빛 진짜 좋은 듯
위고는 여전히 눈을 감고 말했다. 딱히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정말로 일광욕. 따스한 햇빛과 바람결에 흔들려 사그락 사그락 소리를 내는 나무들의 말을 듣는다. 거기에 위고와는 레스토랑에서 같이 일까지 하고 있으니 평일 내내 보고 쉬는 날 여기서 또 얼굴을 보는 거다. 어쩌면 그의 여자친구 끌로에보다 내가 더 많이 그를 보는 듯하다.
위고는 내가 질투 날 정도로 요리를 잘한다. 요리라는 것이 시간 분배를 확실하게 해야 하는 일인데 그는 참 칼 같다. 앞으로의 해야 할 일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일을 척척 진행한다. 나는 일에 대해서는 칼 같게 하려고 노력하지만 마음에 대해선 무 자르듯 감정 절제가 되지 않는다. 유하가 보내온 편지, 문자들을 볼 때면 내가 누워 있는 세상이 뭉그러지듯 아프다.
그때 우리들 앞으로 프랑스 커플이 지나갔다. 남자는 젠틀하고 깔끔한 차림에 수염이 나있는 30대 후반 정도의 신사였고, 여자는 갈색 곱슬머리에 시원한 블라우스와 청바지를 입은 30대 초반으로 보였다. 프랑스 커플이 지나가자마자 처음 프랑스에 도착했을 때가 생각이 났다. 설렘도 잠시 향수 냄새가 진동하는 리옹의 생텍쥐페리 공항에 내렸을 때, 그 오묘하고 무거운 유럽의 공기에 온몸이 젖어 두려워했던 기억들이.
-그러게. 이렇게 쉬는 날 쉬어야지.
나는 끌로에가 여분으로 가져온 다른 돗자리를 펴서 누웠다. 햇볕이 참 좋았고, 떠다니는 공기가 여전히 오묘하고 무거웠지만 달큼했다. 지나다니는 오리 소리와 산책을 나온 프랑스인들의 불어가 웅웅 거리며 섞였다. 내가 보고 있는 이 세상이 어두워지며 이내 조용해졌다.
-우리 다음 주에 니스(Nice)에 가자
갑자기 누워있던 위고가 일어나며 나와 은설을 번갈아보며 말했다.
-갑자기 니스는 왜?
쉬는 날 움직이기 싫어하는 걸 알고 있는데 위고가 니스에 가자는 말에 나는 의아함을 내비쳤다.
-다음 주가 바스티유데이잖아요. 여긴 행사도 별로 안 하고, 또 선우 씨도 니스에 안 가봤다고 했으니 같이 놀러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가만히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끌로에가 한껏 들뜬 표정을 지었다. 물론 무표정에서 약간의 입꼬리가 올라간 것뿐이었지만. 은설도 신이 난다는 듯 방방 뛰며 폭죽 폭죽-을 외쳤다. 매년 7월 14일 프랑스 전역에서 열리는 바스티유데이. 작년 이맘쯤 프랑스에 와서 일에 익숙해지는 것에 급급했기에 제대로 구경도 못했던 축제였다. 나는 긍정의 의미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높고 먼 하늘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