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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몽블 Aug 10. 2016

가스파초 gazpacho


*가스파초(gazpacho)? 토마토, 피망, 오이, 빵, 올리브 오일, 식초, 얼음물을 함께 갈아 차게 마시는 스페인의 야채수프

*크로메스키란? 원래 네덜란드 요리에서 날짐승, 생선, 새우, 게 등을 재료로 크로켓과 비슷한 조리법이지만 가루를 반죽하는데 차이점이 있다. 주로 육류, 생선, 새우, 게를 재료로 하는 크로켓을 러시아식으로 크로메스키라고 한다.

*그라나파노 치즈? 이탈리아 밀리아로마냐지방에서 우유로 만들어지는 치즈로 숙성기간이 매우 긴 하드 치즈

*로메스코 소스? 스페인의 전통음식으로 파프리카와 아몬드, 파마산 치즈 등을 섞어 부드럽게 만든 소스



화요일.

유난히 몹시 바빴다. 레스토랑에 있는 10개의 테이블이 모두 꽉 찼다. 새로 나온 신 메뉴 때문에 동선이 꼬여 정신이 하나도 없다. 14시간에 육박하는 긴 근무시간, 온종일 두 다리로 서서 일하는 강도 높은 육체노동 속에서 한 끼의 식사를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자기희생을 얼마나 많이 감내하고 있는지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부드러운 회색 은빛 머리의 60대 남자 신사 분이 처음으로 새로운 메뉴를 주문했다. 이번 신 메뉴는 두 가지였는데, 시원한 '멜론 가스파초'와 '부드러운 닭다리살 크로메스키'이다. 사전에 메뉴 테스팅을 할 때 너무나 만족스러운 메뉴였다.


민트향의 멜론 가스파초는 서로 반대되는 맛과 식감을 가진 민트와 멜론이 섞여 풍성하지만 무겁지 않게 융합한 요리로, 멜론을 곱게 갈아 만든 가스파초를 유리잔에 담고 민트 아이스크림을 그 위에 올린 메뉴다. 페이스트리 과자에 팬지 꽃과 차이브, 치즈 조각, 허브를 올려 화려하게 장식이 되어있다. 거품을 낸 가스파초는 혀 위에서 가볍고 달콤하게 톡톡- 터질 것이다.


일단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손이 바빠진다. 총주방장의 오더로 부주방장이 메인 요리를, 그리고 라인 쿡과 프렙 쿡으로 나뉘어 일을 한다. 모든 구성원에겐 체계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 라인 쿡에 있는 위고가 크로메스키를 만들면 나는 그것들은 그릇에 담아 매콤한 로메스코 소스로 장식을 한다. 마지막으로 손님에게 나가기 직전 유럽인이 사랑하는 그라나파노 치즈를 그 위에 하얀 눈처럼 소복이 올린다. 치즈는 따뜻한 크로메스키위에 올라가, 녹기 직전 손님들을 맞이한다. 붉은 로메스코 소스와 대비된 흰 치즈가 나풀거린다.


그렇게 모든 메뉴가 손을 떠나고 나면, 나는 내가 만든 음식을 먹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멜론 가스파초 아래 차갑게 식힌 버섯 수프와 멜론 조각들이 손님들의 입안으로 들어간다. 나는 그 음식들을 먹지 않았는데도 입안에서 멜론의 단맛과 버섯 수프의 짠맛 그리고 감칠맛이 더해진다.


위고는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했다. 오전에 작은 실수로 인해 순서가 꼬여 헤드 셰프에게 큰 꾸중을 들었기 때문이다. 칼같이 철저한 친구인데 뭔가 일이 있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내 앞가림 조차 벅차기에 브레이크 타임에도 위고에게 따로 무슨 일이 있냐고 묻지 않았다.


-가니쉬를 올리지 말고 한가운데에 놓고 적당량 잠기도록 가스파초를 부으면 어떨까요?


부주방장인 파트릭(Patrick)이 오늘 나온 신메뉴에 대해 총주방장에게 이야기를 했다. 어떻게 하면 빠른 동선과 더 신속 정확하게 일을 진행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손님에 관한 이야기, 음식에 관한 이야기 등을 하고 나면 금세 브레이크 시간은 끝이 난다.


주방에서 일하는 건 교향곡을 작곡하는 것과 흡사하다.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다양한 악기들이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각각의 재료들이 어우러져 하나의 음식이라는 화음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한 그릇 안에 모든 걸 표현하는 것이 어렵지만 참 매력적인 일이라 생각한다.


결국에 위고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지 못한 채 브레이크 타임을 끝내고,  디너 준비를 시작했다. 생선살을 발라내고, 토마토 껍질을 벗겨 잘게 다지고, 소스를 뭉근하게 끓였다. 음식을 먹는 데에 길어야 2시간 남짓이지만 음식이라는 작품을 만들기 까진 먹는 것에 두세 배의 시간의 소요된다.


보통 아침부터 내 일과는 이렇다. 아침 일찍 출근하면 15킬로에 달하는 양파와 9킬로에 달하는 가지를 손질한다. 양파수프와 미트소스를 곁들인 가지 요리가 있기 때문이다. 또 새로 나온 메뉴인 가스파초 때문에 멜론을 손질해두고 닭도 크로메스키를 바로 만들 수 있도록 준비한다.


이 일을 할 때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묻는다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아니, 그래야 한다. 오로지 빨리 끝내 겠다는 생각, 어떻게 해야 더 신속 정확하게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건 게임이야'를 되뇐다. 나는 내가 맡은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면서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노하우를 고안하기 위해 애를 쓴다. 나의 일을 제시간에 하지 못하면 다른 동료의 작업에도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아.. 오늘도 드디어 끝났네.


나는 조리복을 갈아입으며 위고에게 말을 했다. 시끄러운 위고가 오늘 한마디도 하지 않은 게 마음에 걸려 위로 같지 않은 질문을 한다.


-그러게 오늘 너무 힘들다.

-아까 혼난 것 때문에 그래?


위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것 때문이 아니라면 필시 끌로에 때문일 거다. 요리하는 남자와 사랑에 빠지기는 쉽다. 하지만 데이트는 어렵다. 근무시간이 길고 불규칙하기 때문이다. 보통 어, 하다 보면 자정을 넘기기 일수다. 퇴근하더라도 피로하고 지쳐있다. 피로는 보통 술로 해결한다.


-왜? 끌로에랑 싸웠어?


위고는 한숨을 푹-내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는 위고에게 오늘도 한잔 하러 가자고 말했다. 프랑스에 같이 있는 위고와 끌로에도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우리가 달라질 수 있었을까. 이런 삶이 너와 나를 점점 멀어지게 만든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요리라는 일은 끊임없이 스트레스를 견뎌야 하는 일이다. 창작과 아이디어, 육체노동과 자기희생. 하지만 난 이일을 사랑한다. 유하가 힘들어하는 걸 보면서도 난 끊임없이 견뎌야 했을까? 그게 옳았을까? 나는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자문했다.


오늘도 힘든 하루를 지워내기 위해 술을 마셨다. 빙글빙글 헤롱헤롱한 상태에서 난 한가운데 가니쉬가 된다. 그리곤 적당량이 아닌 아주 푹- 가스파초인 너에게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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