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무척이나 분주했다. 오늘이 회사에 가는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이다. 창문을 열어 아침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고는 회사 사람들에게 마무리 인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계속해서 고민했다. 솔직히 매달 꼬박꼬박 월급을 주는 회사를 계속 다니고 싶었다. 송곳 대리님이 싫긴 했지만 그런 사람은 어느 회사나 있기 마련이고, 저녁이 있는 삶을 제공하는 칼 출근, 칼 퇴근이 있던 회사라 좋았다.
따지고 보면 그리 나쁜 곳은 아니었는데.
회사 사정이 안 좋아졌고 그로 인해 내가 있던 부서가 와해되었다. 어쩔 수 없이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다니고 있던 회사는 커피 프랜차이즈였는데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개인 커피숍도 많아지고 커피시장이 과부하 되면서 프랜차이즈 커피 운영이 잘 되지 않았던 터였다.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고 로션을 바르고 뉴스를 틀고 화장을 하는 일이 내일이면 시간이 늦어질 것이다. 회사를 가지 않는다는 핑계로 이불속에서 한참을 뭉그적거리겠지.
로션을 얼굴에 바른 뒤 로션이 피부 속으로 흡수되기를 기다리며 텔레비전을 틀었다. 텔레비전이 켜지며 까만 상자의 불이 들어왔다. 시끄러운 뉴스 소리에 오후 1시에 출근을 하는 주은이 몸을 뒤척인다.
"대형 트럭 한 대가 축제를 즐기던 군중을 덮쳐 적어도 80여 명이 사망하고 100여 명이 다친 것으로 보입니다. 희생자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습니다. 프랑스혁명기념일인 바스티유의 날을 맞아 시민과 관광객이 많아 피해가 컸으며 목격자들은 흰색 대형 트럭이 갑자기 빠른 속도로 인파 속으로 돌진해 왔다고 전했습니다. 범인은 인파 속으로 돌진한 후 박으로 나와 시민들을 향해 약 50발의 총을 쐈다고 전해졌습니다. 범인은 경찰에 쏜 총에 맞아 현장에서 즉사했으며 범인의 신원과 범행 동기는 아직까지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 외교부는 한국인 피해 발생 여부를 확인 중에 있습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한국인은 26세 박모군으로 알려졌습니다. 프랑스 니스에서 이현지 기자였습니다."
뉴스 소리를 들으며 얼굴에 쉐딩을 하고 있던 내손이 덜덜 떨려왔다.
아닐 거야. 아닐 거야.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눈앞에 거울 속 비친 모습이 불안하고 또 불안했다. 옆에 놓여있던 가방을 뒤집어 안에 내용물을 탈탈 털어 분홍색 지갑을 꺼냈다. 지갑 안에는 프랑스 주소와 연락처가 적혀있었다. 1년째 연락 한번 하지 않았던 내가 자연스럽게 그의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계속해서 끊임없이 이어졌다. 불안감을 이기지 못한 입술이 짧디 짧은 손톱을 물어뜯고 짓이겼다.
신호음은 길고 질긴 오징어처럼 몇번이고 씹어도 끊어지지 않았다. 텅비어서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는 공황상태였다. 그 상태를 부여잡고, 어찌어찌 매번 걸었던 길을 걷고 매번 탔던 버스를 타서 늘 갔던 회사에 도착했다. 내일 부터는 회사에 안온다는 사실이 어쩌면 그가 영영 내게 안온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손이 떨리고 답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