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캐롤라이나 여행의 시작
LA에서 반쯤 밤을 새고 새벽 네시에 공항으로 출발했다. 국내선을 위한 다른 공항도 있었지만, LAX로 들어가고 나가는 방법 밖에 생각하지 못했기에 끊어둔 항공권. 다음 여정은 노스캐롤라이나였다. 노스캐롤라이나에 들어갈 수 있는 주요 공항은 크게 두 곳이 있는데, 하나는 샬럿 공항이고 다른 하나는 롤리-더럼 공항이다. 우리는 UNC에 다니고 있는 사촌처제를 만나러 가기 위해 그와 인접한 롤리-더럼 공항을 선택했고, 덕분에 휴스턴에서 환승하는 일정으로 두 번의 국내선을 타게 되었다.
"들리나 휴스턴?" 우주 영화를 보면 한 번은 듣게 되는 대사다. 그 휴스턴이 바로 휴스턴의 나사 기지다. 아니나 다를까 환승 터미널 안에서 기념품으로 팔고 있었고, 냉장고 자석보다야 모자가 훨씬 더 멋지다는 생각에 하나 구입했다. 목베개는 2개를 사면 할인을 해줘서 짝꿍이 사줬는데, 멍청하게도 뉴욕에서 내리다가 가방에서 빠지는 바람에 꼴랑 한 번 사용한게 끝이다. 하. 텍사스공화국 깃발 패턴 어딘지 모르게 쎄보여서 좋았는데 유감이다. 중간에 시간 기준선도 바뀌고, 여러모로 하루 정도를 쓴 끝에 해가 지고 나서야 RDU 공항에 도착했다. 노스 캐롤라이나는 렌터카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므로, Hertz 렌터카에서 골드 회원으로 가입해서 예약을 해 두었다. 5-Star 등급으로, 구역 내에 있는 어떤 차라도 상관 없이 선택해서 끌고 나갈 수 있었다.
당시 소나타 부터 SUV까지 다양한 차종이 있었고, 테메큘라에선 일본 차를 몰아봤으니 여기에서는 보다 익숙한 현대차를 타볼까 했다. 그러나 아내가 쉐보레를 타자고 해서 말리부를 골랐는데, 문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특유의 새 차 냄새에 한 번 놀랐다. 시동을 걸고 보니 마일리지가 17마일이 찍혀있는게 아닌가. 숙소에 도착하여 찍은 사진이 43마일이 되었으니 거진 차를 만들어서 렌터카 센터에 갖다놓고 내가 첫 손님인듯 하다. 허츠 렌터카는 차를 갖고 주차장에서 나가는건 자유지만, 주차장을 나갈 때 검문소를 한 번 더 지나는데, 거기에서 직원이 마일리지를 체크한다. 17마일이라고 하자 70마일? 이라고 하길래, 노. 원-세븐, 세븐틴 마일. 하니까 나와서 확인하더니 엄지를 들고 굿! 하면서 웃으며 보내줬다. 이것도 여행자의 행운인가 싶다. 아내에게 왜 쉐보레를 골랐냐고 물으니, 장모님이 쉐보레 마크가 십자가를 닮았다고 싫어하셔서 타 볼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이번 기회에 타 보고 싶었다고. 허허, 장모님 감사합니다.
이번 노스캐롤라이나 편은 시간의 흐름 보다는, 테마별 묶음으로 작성 될듯 하다. 이제 여행을 다녀온지 한 달이 막 넘어가는 시점이라 기억이 파편화 되어있기도 하고, 여행기에 진심이 아닌 캐릭터인지라 일부 사진이나 영상 자료가 글 한 편을 작성하기에는 부족한 장소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번 글은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앞으로 다뤄질 글들을 스스로 정리해 보고, 또한 독자님들께 예고해 드리고자 하는 목적이 크다. 그 만큼 노스캐롤라이나 여행, 특히 샬럿이 아닌 더럼과 채플힐 지역은 정보가 거의 없는 여행의 불모지이니까.
먼저 노스캐롤라이나 채플힐의 바 투어를 한 번 다뤄볼 예정이다. 개성있고 멋진 바들이 많이 모여있는 만큼, 8090년대 감성의 아케이드바 부터 정통 위스키 칵테일바까지. 만약 당신이 어쩌다 채플힐을 방문 한다면, 혹은 이렇게 컨텐츠로나마 UNC 앞의 바들을 정복하게 된다면 좋은 가이드북이 되리라 믿는다. 반 년 정도 대학원 생활을 마친 사촌처제의 바 추천은 무엇 하나 빠지거나 겹치는 구석 없이 모두 좋았으며, 역시 학업은 맨 정신으로 하기에는 쉽지 않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고 온 여행이었다.
다음으로 미처 다루지 못했던 테메큘라의 이야기와 섞어 한적한 미국 동네에서의 삶을 다뤄볼까 한다. 물론 직접 거주해본게 아니라, 두 지역 합쳐서 약 열흘 정도 있었던게 전부지만 그래도 여행하면서 크고 귀여운 개와 함께 산책하는 경험은 아무나 해보진 못했으리라. 활발하고 사람 좋아하는 반디도와 함께 노스 캐롤라이나 여행이 더욱 알차고 즐거웠다. 벌써부터 그리운.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해먹을만한 한식 역시 소개하고자 한다. 물론, 근처에 한인마트가 있다면 더욱 좋다. 다진마늘에 김치만 있으면 무슨 요리라도 한식화 시키는 것은 가능하지만, 비교적 간단하고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레시피로 한식이 그리운 장기여행자나 유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이와 더불어 노스캐롤라이나의 식당과 몇 개의 맛집 역시 꼭지로 다뤄보면 좋을듯 하다.
반나절 정도 돌아다녔지만, 그럼에도 전부를 보지 못한 UNC 캠퍼스 역시 써보고 싶은 주제다. 방학 시즌이라 모든 곳을 돌아다닐수는 없었지만, 어마어마한 캠퍼스의 규모와 오래된 역사 만큼이나 크고 작은 다양한 건축물들이 시대를 아우르며 함께 서있는 풍경을 보며 많은 것을 느꼈다. 거기다 사지 않고 배길 수 없는 몇몇 기념품들 까지. 아마 당신이 채플힐에 들른다면 십중팔구는 UNC 때문일테니, 학생회관의 기념품점에 가서 보고 놀라지만 않기를 바란다.
한 꼭지로 다룰만한 이야기가 있다면 노스캐롤라이나 원불교 교당이다. 원불교 신자인 방쿤은, 주말을 맞아 아내와 사촌처제와 함께 교당을 방문 했는데, 나름 원불교의 탄생지에서 산지직송으로 날아온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교도님들에게 큰 감명을 받았다는 이야기. 살짝 매너리즘에 젖는듯 했던 한국의 교당 생활에 반성을 더하며 앞으로 스스로의 내면 성장을 어떻게 갈구해 나가면 좋을지도 고민해봤다.
여행지에서 그날의 기록을 바로바로 글로 남겼다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도 있다. 다만 모든 기억이 추억으로 남아 있지는 않듯, 그 날의 흥분에 흠뻑 젖은 기억을 탈탈 털어 잘 말리면 그 중에 여남은 조각들만이 숙성되어 좋은 추억으로 남는듯 하다. 한 달을 남기고도 여전히 남아있는 기억들이라면, 그것들이야 말로 진정 사진과 글로 남겨 많은 이들과 공유할 만한 가치를 가지는것 같다. 월-금 매일의 연재를 이어 나가며 잠시 타임라인 속에서 쉬어가는 이정표로 남기고자 작성한 글이다. 노스캐롤라이나는 여행의 목적지가 되기에는 다소 심심할 수 있지만, 당신의 목적이 여행에만 있지 않다면 한 번은 살아봄직한 여유롭고 멋진 곳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