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나마 함께했던 반디도를 추억하며
사촌처제가 방학 중에 강아지 돌봄 알바를 하게 되었다. 신행 기간 내내 함께 했던 우리의 막내 동생, 반디도를 추억하며 남기는 글. 반디도(이하 반디)는 스페인어 Bandido인데, 남자 도적(Male Bandit) 정도의 뜻이다. 닉값하듯 여행 기간 내내 우리의 마음을 훔쳤으니 너는 참 성공한 도둑이구나 싶다.
사촌처제의 교수님이 기르던 강아지(라기엔 너무 크지만 너무 귀여우니 강아지라고 치자)인데, 방학 중에 모국으로 잠시 돌아가면서 돌봄을 부탁하셨다고 한다. 처음에는 너무 커서 부담도 되고 살짝 무서웠는데, 하는 짓을 보니 영락없는 애교쟁이 강아지라 쉽게 적응하고 친해졌다. 누가 미국에 신혼여행을 와서는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해봤을까. 함께 산책도 하고 동네를 돌면서 반디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견종을 모르지만, 반디는 반디다. 벌써 잘생김이 묻어나는 얼굴로 오만가지 표정을 다 짓는다. 대체로 웃는상이라 역시 미남은 미남이네 싶다. 얼굴만 봐도 궁금하고, 똥마렵고, 배고프고, 졸리고 다 티가 나는 순수한 얼굴에 우리 모두 즐겁고 행복한 기억이 가득했다. 미국에서 개를 키우는 것은, 물론 동네마다 다르겠지만 한국보다는 좀 더 쉬운듯 하다. 어딜 걷든 잔디밭도 있고, 도그 파크도 있고. 조금만 둘러다녀도 다양한 냄새를 맡으며 질릴 일 없도록 돌아다닐 수 있는 코스를 짤 수 있다. 아파트 단지 안에도 크고 작은 도그 파크가 있어서 그 안에서 목줄 없이 마음껏 뛰놀게 풀어놓을 수 있었다.
더 신나게 노는 영상도 있지만, 얼굴이 많이 나와서 그나마 덜 보이는쪽으로 올려봤다. 사실 나나 아내나 성인 이후로 제대로 강아지를 키워본 적이 없어서 막연했는데, 이렇게나마 간접적으로 함께 하는 시간을 가져봐서 정말 행복했다. 뭐랄까, 책임 없는 즐거움이랄까. 사촌처제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그래도 덕분에 강아지와 행복한 추억을 가득 쌓을 수 있었다.
확실히 호기심이 많고 모든 일에 흥미를 가지다 보니, 맨날 걷는 길에서도 늘상 신나하는게 보인다. 특히 반디는 나뭇가지를 보면 정신을 못차린다. 산책 할 때도 일부러 숲길은 피했는데, 거의 캣닙 만난 고양이마냥 날뛰고 들떠서 목줄에 사람이 끌려갈 수준으로 흥분하더라. 뭐 그래도, 물거나 짖지는 않는 얌전한 친구라 참 고마웠어 반디.
매번 산책때 마다 나뭇가지 하나쯤은 챙겨 들어오려는거를 간신히 말린다. 내심 아쉬워 하면서도, 어차피 집 안에 갖고 들어갈수 없다는걸 받아들이기는 하는듯. 그렇지만 오늘 안되는걸 내일도 안된다는건 모르고, 매번 시도하긴 하는 만큼. 어떻게든 나뭇가지를 훔쳐오고 싶었구나 반디도.
사촌처제네 집이 넓어서 매일같이 뒷풀이를 했다. 반디도 함께 했는데, 이 친구 우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앉아서 한 잔 하다보면 테이블 밑에 사람들한테 발도 포개고 머리도 갖다 대고 난리도 아니다. 심지어 겨드랑이 사이로 머리도 넣고 애교도 부린다. 얘 진짜 개가 맞긴 맞는건가 싶다. 어떻게든 같이 놀고 싶어하는걸, 다음날 부터는 산책 시간을 늘려서 어떻게든 피곤하게 만들어줬다.
피개행개. 피곤할 만큼 잘 놀고 온 개가 행복한 개인듯 하다. 하루에 산책을 두 번씩 길게 다녀오니, 두 번째 산책이 끝나면 바로 곯아떨어지더라. 덩치가 커서 산책량이 많이 필요하지만, 또 그 만큼 스스로 돌아다니면서 에너지를 많이 쓰는듯 하다. 어유 진짜 너무 잘 놀아서 곯아떨어져도, 형누나 발 밑에서 졸고 있는걸 보고 참 귀여워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매일 아침마다 산책을 기다리며 반갑게 인사해주던 반디. 헤어진지 한 달이 더 되었지만, 신혼여행 중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물해준 친구다. 신행을 가서 평생 길러본 적 없던 강아지와 산책도 다니고 친해지다니. 우리의 마음을 훔쳐가서 참, 고맙다 반디. 앞으로도 늘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는 멋진 의적으로 자라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