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캐롤라이나 교당을 방문하다
아내와의 연원 덕에 원불교에 입교한지 어언 1년이 넘었다. 이제는 장모님과 함께 일요일마다 교당에 가서 법회를 드리는게 일상이 되었다. 명환, 이라는 법명도 받았고 영광스럽게도 작년 말에 원불교 신문에서 간단한 인터뷰도 진행한 적이 있다. 아내와 사촌처제도 역시 원불교 교도였기에, 노스캐롤라이나 신혼여행 중 교당을 방문하기로 했다. 노스캐롤라이나 채플힐 원불교 교당.
원불교의 상징이자 신앙의 대상이며 수행의 표본이 되는 것이 바로 O, 일원상이다. 보통 원불교 교당 안팎으로 보이는 금빛 원형 마크가 바로 그것이다. 채플힐 교당에도 일원상이 곳곳에 보였는데, 숨겨진 일원상을 찾는 재미도 소소하게 있었다. 굳이 이 글에서 원불교가 어떤 종교인지, 어떠한 가르침을 담고 있는지 까지는 쓸 필요는 없으니 함께 일원상을 찾아보며 채플힐 교당을 돌아보자.
한국에서 창시되어 갓 100년이 지난 종교가 미국 한복판에서 교세를 펼치고 자리잡은 모양을 보니 괜히 가슴이 뿌듯해졌다. 일요일 아침 다들 차를 끌고 부지런히 와서 법회를 준비하는데, 정작 원불교의 종주국인 한국에서 온 우리는 이 곳에서는 이방인이자 처음 온 초보 교도인 셈이다. 사진을 찍다가 법회 전에는 스마트폰을 꺼달라고 요청을 받아서 품에 넣고 더는 찍지 않았다. 교당이라기 보다는 편안하고 넓은 별장같은 분위기였고, 넓은 홀에 다들 방석을 깔고 좌선과 명상을 하는 느낌으로 함께 준비를 했다.
매주 진행되는 법회는 노스캐롤라이나 교당 유튜브 채널에서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동시송출 되었다. 이 글을 보는 당신이 원불교 교도라면, 한 번 구독하고 다양한 영상들을 접해보면 좋을것 같다. 법회하는 장면은 촬영하진 않았지만 확실히 한국의 법회와는 사뭇 다른점이 있었다. 한국 법회에서는 입정 - 교무님 말씀 - 해산의 느낌이라면 이 곳에서는 입정 - 독경 - 좌선과 명상 - Q&A - 해산이랄까. 한 번의 법회만 참석했기에 항상 이런 방식으로 진행되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확실히 좀 더 각자의 내면에 집중하며 스스로의 마음을 돌아보고 평온한 자아를 만들어가는데에 도움이 되었다.
법회에 들어가기 전, 몸풀기로 체조와 스트레칭을 하고 각자 준비한 방석 위에서 사배를 올렸다. 나와 아내, 그리고 사촌처제는 첫 번째 절을 하고 일어나려는데 아뿔싸 우리 셋만 먼저 일어난 것이다. 역시 이 또한 K-Speed인가. 눈이 마주친 처제와 아내는 서로 풉- 웃음이 좀 터져나왔지만 애써 마음을 추스리고 나머지 사배를 마저 드렸다. 절을 네 번 하는 동안 각각의 절에 대한 의미까지 말씀해 주시는데 미국에 와서 어째 원불교에 대해 더욱 더 잘 알게 된것 같아 조금은 부끄러웠다.
독경을 외는 시간에는 내심 기대하는게 있었는데, 한국의 독경 발음 그대로 한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었기 때문이다. 오우, 원어민 발음으로 유창하게 해볼까 - 싶었던 마음도 잠시. 잘 번역되어 메세지를 그대로 녹여낸 영어 버전 일원상 서원문을 받았고 떠듬떠듬 영어로 따라갔다. 성가들도 Chant 방식으로 누구나 쉽게 따라부를 수 있어서 좋았다. 다시금 초심으로 돌아가서, 하나하나 조심스레 받아들이니 좀 더 집중도 잘 되고 더 깊숙히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후 법회에서는 명상, 단전호흡을 통해 각자의 기를 느끼는 시간을 가졌다. Inner Peace를 찾아가면서 절반이 넘게 지난 미국 여행을 돌아보았다. 지금까지 별 탈 없이 행복한 시간을 가졌던 모든 순간들이 기적과도 같았고, 남은 여행 역시 건강하게 한국으로 돌아가 앞으로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루고 싶다고 다짐하는 순간이었다. 단전호흡을 마치고 교무님의 설교 말씀이 있었는데, 역시나 좀 더 나은 명상과 호흡을 위한 노하우나 접근방법을 나눠주셨다.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는 유튜브 스트리밍에서 올라오는 질문도 함께 답변해 주셨고, 현장에서도 교도들의 말씀에 귀기울여 답변해 주셨다. 기억에 남는 질문 중 하나가 임신하신 분의 질문이었다. 단전호흡을 하는데, 임신을 한 상태라 뱃 속의 아이가 느껴지기도 하고 내 기를 어디로 흘려보내야 하는지 고민이다. 이게 과연 효과적인지,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물어보셨는데 교무님도 답변해 주셨지만 뒤에 있던 다른 교도분이 추가 답변을 해주셨다. 본인도 아이 둘을 가지면서 명상과 단전호흡을 했는데 큰 도움이 되었고 아이들도 잘 자라주어 고맙다고. 아이 둘과 함께 온 가족이 법회를 오셨던 분이 직접 말씀해 주시니 다들 공감도 되었고, 가족들이 일요일 아침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것 자체도 역시 화목해보여서 참 좋았다.
미국에서 몇 없는 규모의 원불교 교당이니 만큼 템플스테이도 운영할 수 있는 시설이 있었다. 위쪽에서는 지하로 내려가는데, 그 아랫쪽이 또 1층처럼 느껴져서 묘한 느낌의 공간이었다. 미국 집은 언덕쯤에 이런 방식으로 지어지는 집들이 은근히 많은것 같다. 시설이 참 깔끔해서, 나중에 코로나가 다 지나가고 숙박이 가능해지면 한 번 이 곳에서 템플스테이를 지내보고 싶었다. 놓여진 꺼꾸리를 보니 뭔가 한국 헬스장에서 거꾸로 매달려 계신 어르신들이 생각나서 정겨웠다.
노스캐롤라이나 자체가 파란 하늘과 깨끗한 자연이 장점이지만, 그 중에서도 원불교 교당은 정말 속세와 떨어져있는 느낌이 강했다. 도로에서 조금만 꺾어져서 들어오면 되는데, 진입로부터 사람보다 살짝 큰 나무로 둘러싸여 있기에, 막상 도로쪽에서는 교당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외롭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게 신기했다. 도시와 건물과는 떨어져 있어도, 자연과 나무와 가까워지면서 그간 잊고 살았던 자연과 삶에 대한 감각이 하나 둘 살아나는 느낌이랄까. 이럴때면 한국인들이야말로 정말 Inner Peace와 Meditation이 필요한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테라스에서 교무님과 티타임을 가지며 소담을 나눴다. 한국 교도들이 찾아온 것도 드문데, 거기다 신혼여행으로 왔다고 말씀드리니 정말 더없이 대견해 하셨다. 아유, 한국에서도 매주 못 다니는데 부끄럽고 그렇습니다. 한국 법회와는 다른 점에 대해서 질문 드리니, 아무래도 미국에서는 동양적 명상법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고 원불교 역시 마음공부를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법회에서의 접근 방식이 조금 다를수는 있다고 해주셨다. 그러나 모로가도 요란한 마음이 가라앉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면 그 방법이 다른다 한들 어떠랴. 익숙하지 않을 뿐이지,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듯 미국에서의 원불교 역시 현지인들에게 훌륭한 삶의 이정표가 되어주는듯 했다.
티타임을 마치고 정원을 한 바퀴 둘러봤다. 말이 정원이지 거의 작은 숲이나 다름없었다. 한국에선 보기 힘든 큰 나무들도 한 가득 있었는데, 이 정원을 만드는데에 트럭만 77대가 왔다갔다고. 그 만큼 잘 가꾸어진 정원 속에서 우리를 돌아보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었다. 구석구석 숨겨진 작고 귀여운 소품들을 찾는 재미도 있었는데, 생뚱맞게 놓여진 옹기가 왜 이렇게 귀엽던지.
정원 가운데 있는 커다란 일원상. 날이 좋으면 여기에서 야외 명상도 가능하고, 탑돌이 처럼 일원상 주변을 돌아도 좋을것 같았다. 한 번만 가봐서 너무나 아쉬웠던 노스캐롤라이나 교당. 다음에 다시 방문하면 좀 더 오래,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마음 공부를 더 해보고 싶었다. 정말 다른 이들의 신혼여행과는 사뭇 다른 코스였지만, 그 만큼 다른 이들은 경험해볼 수 없는 풍부한 경험 속에서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기고 돌아왔다.
그래도 일요일 아침인데 맛집을 빼놓으면 섭섭하다. Maple View Farm Ice Cream. 목장에서 직접 짠 우유로 만드는 아이스크림집인데, 이 집 아이스크림 정말 제대로다. 가게에서 수제로 만든다기에는 퀄리티가 너무나 뛰어나서, 뭘 먹어도 다른 맛을 다 먹어보고 싶은 아쉬움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두 스쿱을 떠주는 기본 버전을 먹어도 양이 많은데, 하나는 익숙한 맛으로 즐겨보고 다른 하나는 특이한 맛으로 즐겨보자. 나는 초콜릿 재료를 잔뜩 부어놓은 데빌스 무슨 맛이랑 캐롤라이나 크런치를 시켰다. 우리가 방문 했을 떄는 호박 맛도 있었고, 그때 그때 스페셜 맛들이 달라지는것 같다.
노스캐롤라이나의 대표 색이 바로 푸른 하늘색이라고 한다. 왠지 다른 지역과는 다른 하늘의 색이라 그렇다고 하는데, 정말 이 날 만큼은 푸른 하늘을 실컷 보고 즐길 수 있었다. 여유로운 생활을 즐긴 노스캐롤라이나 여행은, 복잡한 대도시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힐링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마치 한국으로 따지면 강원도 춘천 같은 느낌이랄까. 있을건 다 있지만 복잡하진 않고, 차가 있어야 편하지만 여유롭게 천천히 살아갈 수 있는 이 곳은 정말 여행보다는 살아보고 싶은 기억이 가득한 곳이었다. 다음에 오거든 더 오래, 더 길게 묵으면서 구석구석 살펴보리라. 그럼 다 같이 마음공부 합시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