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김치와 다진마늘이 중요하다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한 번쯤 한식이 그리워지는 시간이 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무리 밥 없이 사는 사람이라도 해외 체류 1주일 정도 지나가면 특유의 시원하거나 칼칼하거나 짭짤하거나 감칠맛도는 뭐 그런 찌개에 밥 한 공기 말아서 먹고 싶어지는 시기. 그 시기를 잘 넘기려면 제대로 만드는 한식집에 가서 식사를 해야 하지만 해외 여행 특성상 어디 그런 식당이 흔한 것도 아니고, 김치맛 컵라면이나마 먹으면 다행일까.
이번 신혼여행 두 번째 지역인 노스캐롤라이나에서는 아예 작정하고 한식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한국을 떠난지 반 년 정도 지난 사촌처제와, 밥 없이는 하루도 참기 어려운 와이프를 위해 팔 걷고 나서서 직접 요리를 해봤다. 현지 사정에 따라 조달하기 어려운 식재료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한국 맛을 내보려 노력한 메뉴들이니 만큼 요리의 어려움 보다는 식재료 조달의 어려움에 따라 쉽고 어려운 요리로 구분해서 적어보려 한다.
물론 근처에 한인마트가 있다면 갈비찜 양념을 사면 어느정도 둘 다 맛을 낼 수 있다. 그러나 갈비찜 양념 없이도 한국식 찜닭맛을 낼 수 있는 비결이 있는데 바로 데리야끼 소스다. 거기에 미국에서도 많이 파는 기꼬망 간장과 올리고당을 첨가하면 찜닭맛이 그럴싸하게 난다. BBQ 소스는 안 된다.TERIYAKI 소스가 중요하다. 데리야끼 소스로 메인 간을 맞추고, 염분이 필요하면 간장을 추가하고 당도가 필요하면 올리고당을 추가하면 된다. 어차피 찜닭이나 소갈비찜이나 메인이 되는 두 가지 맛이 짠맛과 단맛(재료의 감칠맛은 제외하면)이므로 단짠 데리야끼 소스를 주축으로 삼아서, 짠맛과 단맛의 밸런스를 각기 맞춰주면 된다.
사실 이는 대부분의 자취요리형태의 간단 요리에 적용되는 비법이다. 특정 요리의 주축이 되는 맛이 있다면, 그 맛이 나는 조미료를 주 조미료로 삼은 후 그 조미료의 맛의 특성을 보완/상쇄 해 주는 두 가지 정도의 조미료를 서브로 사용하면 좋다. 이도저도 아닌맛이 날 때는 미원을 더 넣으면 좋다. 농담 아니다.
소갈비찜도 굳이 뼈가 붙은 고기를 살 필요도 없다. 말이 소갈비찜이지, 제대로 소갈비찜 하려면 냄비부터 양념까지 쉬운 일이 아니다. 양념만 소갈비 양념을 하고, 고기는 스튜용 고기를 사서 끓이면 두 시간 안에 그럴싸한 갈비찜을 먹을 수 있다. 쉽게 말하면 비프스튜를 끓이는데 그 맛을 갈비찜 양념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좋다. 또한 당근도 큰 당근을 썰어서 할 필요 없이, 미국 마트라면 무조건 있는 베이비 캐럿을 넣어주면 정말 좋다. 식감도 살아있고, 당근에서 배어 나오는 단맛이 풍미를 끌어올려준다. 이 요리들에서 가장 구하기 어려운건 찜닭용 떡이다. 혹시 떡을 구하지 못한다면 빵을 찍어 먹어도 꽤 괜찮긴 하다. 브런치에서 글로 레시피를 적어두면 읽으면서 요리하기 어려울 수 있어서, 직접 작성한 이미지 파일을 첨부한다.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의 가로화면 모드로 보면서 참고하면 좋다.
부대찌개는 한식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다. 부대찌개는 한식이다. 한국만큼이나 스팸과 쌀밥에 진심인 민족도 없을 뿐더러, 한국 바깥을 벗어나기만 해도 감히 스팸으로 육수를 내어 국물 요리를 만들 생각조차 못한다. 부대찌개의 탄생은 미군부대에서 흘러 나온 미국식 식재료지만, 거기에 한국의 맛을 더해 누가봐도 쌀밥에 어울릴만한 칼칼하고 감칠맛 넘치는 찌개가 완성된 것이다. 그렇기에 미국에 와서 꼭 한번은 미국식 햄을 듬뿍 넣고 부대찌개를 끓여보고 싶었다. 마침 사촌처제 냉장고에 오래된 김치가 있었기에 부대찌개에 보탤 수 있었다. 육수용으로 사골육수 진공포장팩 등을 구하면 좋다. 정 없다면 사리곰탕면 스프라도.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면, 마트별로 정육코너에서 파는 햄 중에 마트나 공장에서 직접 만들어 케이싱만 한 종류의 소세지들이 있다. 얇은 막 안에 갈아넣은 고기가 그대로 만져지는 말랑말랑한 질감인데, 이런 소세지는 만약 찌개에 넣게되면 허브가 포함된 강렬한 향이 자기주장을 심하게 하므로 가급적 넣지 말자. 아무리 미국식 햄과 소세지라고 하더라도, 냉장고에서 누구나 손쉽게 고를 수 있는 누가봐도 삶거나 익힌 류의 햄! 소세지! 스팸! 까지만 넣도록 하자. 베이컨도 아, 미국 베이컨은 한국에서 만나는 베이컨보다 서너배는 짜므로, 염분에 신경 쓴다면 적당히만 넣도록 하자.
기본적으로 햄을 깔고 양파를 썰어 넣고 다진마늘 한 스푼 듬뿍 얹어주면 기본적인 부대찌개의 모양은 갖춰진다. 여기에 김칫국물과 김치를 썰어넣고, 고운 고춧가루로 걸쭉한 농도를 맞춰주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취향에 따라 체다치즈나 라면스프 등을 첨가하면 완벽하다. 부대찌개에 가장 잘 어울리는 라면은 삼양라면이므로, 혹시나 부대찌개에 넣어먹기 위해 라면을 산다면 참고하도록 하자. 스프조차 부대찌개에 넣으면 햄과 고기맛 국물에 감칠맛이 배가되어 정말 좋다.
기타 쑥갓이나 팽이버섯 두부 등은 뭐, 마트에 갔는데 있으면 넣어보고 아니면 패스해도 좋다. 부대찌개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 3대장은 푸짐한 가공육/김치/베이크드빈즈다. 이 세 가지만 넣고 보글보글 끓이면 얼추 간이 맞는다.
김치빠에야는 원래 김치볶음밥을 하려다가, 사촌처제네 묵은 자스민쌀이 있길래 시도해본 요리다. 부대찌개 국물과 남은 김치를 썰어서 육수를 만들고, 자스민 라이스와 잘 섞어서 약불에 서서히 그을리듯 익히며 3층밥을 완성했다. 남은 베이컨과 소세지가 있었기에 추가적으로 토핑을 넣었고, 김치볶음밥 맛이 나는 빠에야를 만들고 싶었으나 그냥 3층밥이 잘 표현된 김치맛 빠에야로 끝나버렸다. 살짝 아쉬운 요리 중 하나. 그냥 냄비밥이라도 가볍게 지은 다음에 볶음밥을 할걸 그랬지.
아무튼 이 메뉴들의 핵심재료는 김치다. 생김치를 좋아하진 않더라도, 참치김치찌개 한 국자면 한 공기는 뚝딱. 참치를 살때 취향에 따라 골라서 사면 좋다. 보통 Flake 스타일과 Chunk 스타일로 나뉘는데, Flake 스타일은 이미 다 바스라진 부스러기 참치같은 질감이고 Chunk스타일은 생선살의 모양이 그대로 남아있는 방식이다. 참치살이 국물에 잘 녹아들길 바란다면 Flake 로, 참치살의 모양이 살아있길 바란다면 Chunk로 구입하자. 당연한 얘기지만 동동 뜨는 참치기름을 원한다면 반드시 Oil에 절여진 캔을 사야한다. 정리하면, Oil Tuna를 구입하되, 취향에 따라 Chunk나 Flake를 고르면 된다.
식당 김치찌개맛을 내는 가장 중요한 조미료는 식초다. 보통 사람들이 묵은지가 없는 상태에서도 시큼칼칼한 김치찌개를 원하는데, 이럴때 도움을 주는 일등공신이 식초다. 그냥 적당한 맛김치 정도만 넣어서 김치국물 흉내를 내면, 식초를 넣고 날카롭게 찌르는 식초맛을 중화시키기 위해 설탕이나 올리고당을 살짝 첨가한다. 기본간은 당연히 김칫국물로 맞추지만, 다 알면서도 모른척 먹는 수준으로 식초를 넣고 그의 공격성을 일부 상쇄시키기 위해 올리고당을 넣는다. 이후 끓이면서 미량의 간장과 넣어주는 고기/생선 종류에 맞춰 감칠맛 양념을 첨가해주면 끝이다. 식초는 정말, 넣고 안넣고에 따라서 김치찌개 맛이 확 달라지니 무조건 추천한다. 미국에도 있잖아요, Vinegar. 역시 위의 레시피와 마찬가지로 간단하게 적어서 아래 이미지로 공유한다.
부대찌개를 두 번을 끓여도 베이컨이 남아서 처치하기 곤란했는데, 또 마침 사놓고 먹기가 애매해서 놔둔 돈마호크가 있었다. 게다가 사촌처제네 집에는 오븐이 있었고 결국 베이컨을 두 줄로 깔아둔 다음에 돈마호크를 구웠다. 돈마호크는 팬에 가볍게 겉면을 익혀준 후, 450℉(232℃)로 오븐을 예열해둔 다음에 적당히 잘 익히면 된다. 나는 베이컨이 바삭해지고 기름이 쫙 빠질때까지 익혀줬다. 돈마호크에는 아무 양념도 하지 않아 보쌈같은 질감으로 완성이 되었고, 취향에 맞춰 베이컨칩을 곁들여 먹었다. 마치 스테이크 모양의 보쌈마냥, 바삭한 과자같은 베이컨까지 곁들이니 결국 우리는 맥주를 먹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나는 냉장고를 보고 남아있는 재료를 보면 얼추 요리 각을 볼 수 있는 수준의 자취요리사다. 그렇기에 여기에 써 놓은 것들도 실상 진짜 요리를 해본 적 없거나, 처음 부엌에 서는 이에게는 쉽게 도움이 되지는 않을 수도 있다. 다만,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직접 해먹은 몇 가지 요리에 대한 레시피를 전달하면서 부디 향수병에 젖은 유학생이나 한국맛이 그리운 여행객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게으른 사진 작가라 더 많은 자료를 남기지 못해 죄송스러울 따름이지만, 정말 모든 요리를 동시에 두 개씩 만들며 모든 단계를 사진에 담기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잠시나마 자취요리 쉐프가 되었던 경험을 공유하며 이만 글을 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