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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보경 Aug 03. 2020

테크닉이란

악기와 언어의 공통점

테크닉이란 우리가 언어를 습득하는 것과 똑같이,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몸에 탑재되어야 하는 것이다. 벼락치기로 연습했을 때는 되고 일주일 쉬었다가 다시 치면 안 되는 것은 테크닉이라 할 수 없다. 그건 언어를 아는 것이 아니라 뜻도 모르고 책을 암기한 것과 같다. 새로운 책을 읽을 때는 또 아무것도 이해되는 게 없어서 통째로 외워야 한다.  


테크닉은 혈기왕성한 20대 때 가장 좋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빠른 패시지(passage)들은 주로 손가락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흐르게 하는 것이므로 굳이 힘이 센 사람이 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손가락 힘이 넘치는 젊은이들의 연주가 오히려 부자연스러워서(too noty) 듣기 피곤한 경우도 많다. 그리고 음악에서의 힘이란 volume이 아니라 energy의 문제이므로 악기의 구조를 알고 과학적 원리(velocity & friction)를 이용한다면 신체가 약해져도 충분히 임팩트 있는 소리를 낼 수 있다.  


좋은 테크닉은 몸에 무리가 가지 않아야 하고, 하고자 하는 음악에 방해가 되지 않아야 한다. 음정 못지않게 tone과 phrasing의 일관성도 중요하다. 프레이즈 안의 컬러가 제멋대로이거나 당황스러운 루바토(급 브레이크), 도약이 많은 곳에서의 쫄보스러운 diminuendo 등은 음 틀리는 것 못지않은 삑사리이다. 음정만 맞았다고 기뻐할 일이 아니다.


내가 실제로 뵈었던 Sylvia Rosenberg, Peter Frankl, Claude Frank 이런 분들은 80 넘으신 연세에도 대단한 연주를 하셨다. 글씨는 삐뚤빼뚤 손을 덜덜 떨며 쓰시는데 악기를 잡았을 때는 다른 사람이 된다. 그게 벼락치기 연습의 힘일 리 없다. They just know what they are doing.


호로비츠가 본인 연주를 모니터 하는 영상이다. 이때가 85세이고 돌아가시기 1년 전인데 연주는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나 중학생 때 이 앨범 엄청 들었었는데, 요즘 세상이 좋아져서 이런 녹화 영상을 볼 수 있게 되었다(사랑해요 Youtube!). 당신 연주에 대만족 하시는 모습이 재밌다. 연주가 정말로 좋긴 한데, 호로비츠도 매우 긍정적인 성격이신 듯. 1악장 틀린 건 that's nothing 이래 ㅋㅋㅋ

암튼 나도 저 나이 때도 피아노 치고 있길 바라고, 내 연주가 저렇게 흡족할 수 있음 참 좋겠다. 45년 남았으니 해볼 만 한가? ^^


이건 바이올리니스트 Oleg Kagan의 연주. 암 투병 중이었고 이 연주 후 1달 뒤에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연주만 들으면 어디가 아픈 사람인가? Kagan에게도 테크닉은 native language로 들어있는 것이고 그는 그저 이 순간 음악을 하는 것뿐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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