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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보경 Aug 12. 2020

번스타인 vs. 글렌 굴드

음악에도 갑을관계가 존재한다?

혼자 연주하지 않는 이상, 음악 해석에 관한 의견차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고, 타인의 시각에서 음악을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합주의 장점이다. 리허설을 통해 서로의 의견차를 좁히고, 함께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궁극적 목표다. 스스로의 틀을 깨고 계속해서 진화하고자 하는 음악인이라면 다른 연주자들과의 합주는 매우 소중한 배움의 기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끝까지 의견 합치를 못하고 불만스러운 채로,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스스로도 납득하지 못하는 연주를 남에게 선보여도 괜찮은가 하는 우려를 가지고 무대에 올라야 하는 때가 있다. 하지만 그걸 공식적으로 알리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그래서 뉴욕필의 레오나드 번스타인이 글렌 굴드와 브람스 피아노 콘체르토를 협연했을 때의 Speech는 음악공연사의 큰 이슈가 되었다. 두 사람이 음악적 합의점에 이르지 못했고 이 버전은 글렌 굴드의 독자적 해석이며 번스타인 자신은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하게 말하고 있다. 


번스타인은 글렌 굴드의 실험정신과 sportsmanship을 존중하며 관객들이 정통을 벗어난 이 독특한 해석을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궁금해서(글렌 굴드를 자르고 대타 피아니스트를 올리거나 부지휘자에게 맡기거나 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무대에 오른 것이라며 연주를 시작하기 전에 두 사람 사이에 분명한 선을 그었다. 



이 사건을 두고 글렌 굴드가 희생양이고 번스타인이 나빴다는 비판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번스타인이 자신의 음악적 자존심을 위해 안 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인간적으로는 나쁜 놈 소리를 듣더라도 말이다. 아무렇지 않은 척, 다 괜찮은 척하는 것은 관객을 기만하는 거다. 번스타인의 솔직한 양심고백이고, 본인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독특한 해석이지만 현장에서 관객과 함께 체험하겠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라고 생각한다. 


아주 드물게 한 번씩은 나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전혀 기대가 안되는 연주, 싫은데 상대방을 따라가줘야만 하는 상황. 관객 하나하나의 손을 잡고 나의 억울함과 속상함을 호소하고 싶지만 하지만 그럴 수 없다. 나는 번스타인이 아니니까;;; 

그래서 이 스피치가 너무너무 통쾌하다. 대리만족ㅋㅋ


이게 너무 큰 스캔들이 되자 번스타인이 글렌 굴드와의 개인적 관계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며 해명글을 냈는데 이것도 볼만하다. 고급스럽게 돌려 깐 느낌? 뭐 진짜로 인간적으로는 애착을 가졌을 수도 있고... 어쨌거나 브람스 사건 이후로 둘이 다시 음악작업은 같이하지 않았다. 


https://leonardbernstein.com/lectures/writings/the-truth-about-a-legend-glenn-gou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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