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보경 May 30. 2021

웃음근육

더늦기 전에근력을 키우자!


할머니 데이케어 월별 프로그램 계획표에 <웃음치료>라는 게 있었다. 이게 뭐지? 하고 찾아보니 요즘 요양원 등 복지시설이나 보건소, 산후조리원 등에서 레크리에이션 시간에 많이 사용하는 심리 치료요법이라 한다. 웃음을 통해 스트레스를 없애고 건강 증진을 도모한다는 건데 '웃음치료사'라는 자격증까지 있단다. 별 신기한 자격증도 다 있다. 나는 그거 옛날부터 하고 있었는데~? 그럼 나는 웃음치료 박사학위 줘요 ㅎㅎㅎ


남이 웃으랜다고 “와하하하 ^__^” 하고 웃어지나? 수업 시간이 엄청 썰렁할 것 같기도 하고, 앞에서 애쓰는 선생님 모습을 보면 웃어'드리기'라도 하게 될 듯도 하고~ 수업을 상상하면 손꾸락이 째끔 오그라들긴 하지만 웃음의 효과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어릴 때 (밖에서는 낯가려도 집에서는) 잘 웃고 웃음소리도 커서 주변을 흠칫 놀라게 했는데 여태도 그렇다. 실은 아빠랑 같이 지내던 마지막 몇 개월 동안에도 큰소리로 자주 웃어서 아빠가 엄마 보고 “쟤는 참 잘 웃어. 참 긍정적이야” 그러셨는데, 그게 좋으셨던 것 같다. 앞으로도 잘 지내겠구나 안심이 되셨던 것일까?


중학생 땐 '배 아프게 웃으면 다이어트가 된다'는 소리에 일부러 오버해서 크게 웃다가 그 모양새가 우스워 진짜로 빵 터지기도 하고, 서태지 비디오 돌려보면서 같은 NG 장면에 골백번을 웃고, 어른들께서 "니네 때는 개똥 굴러가는 것만 봐도 웃기지" 하시는 말씀에 개똥이 굴러가는 상상을 하면서 배를 잡고 데굴데굴 굴렀다. 지금 생각하니 너무 바보 같아서 또 웃음이 난다. 


진짜 뭐가 그렇게 웃긴 거니? ㅋㅋㅋㅋ


나이 먹으면 웃을 일이 없어진다 하고 사람들이 점점 근엄해지는데,  내 생각엔 웃음도 연습이고 습관인 것 같다. 웃어 버릇해야 계속 웃을 수 있다. 


힘들어도 의식적으로 웃자고 결심한 계기가 있다. 줄리어드 졸업 직후 뉴욕주립대에 나가던 처음 1년 반 동안 마음고생이 굉장히 심했었다. 가르치는 학생들의 수준이 어떻건 간에 나만큼은 잘하고 싶은데 그게 안되니까 속상하고 창피하고... 이런(?) 애들을 통해 내가 평가를 받아야 되나, 내 신세가 '시궁창'같다고 느껴졌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었다. 아직 어려서 선생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했음. 처음이라 의욕만 넘쳤던 것도 있고.) 아무튼 그땐 진짜진짜 힘들고 속으로는 굴욕적이고 그랬는데, 그래서 일부러 웃는 표정을 만들었다. 자존심 지키려고. 


근데 그러길 얼마나 잘했는지! 그때는 때려치우고 싶지만 '이렇게는 못 끝낸다'는 심정으로 버텼는데, 1년 지나고 2년 지나고 하니까 나도 '가르치는 법'을 조금씩 배우게 되고 스스로 납득이 될 만한 수준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큰 소득은 웃는 표정이 나의 얼굴 근육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처지고 어두워지려는 눈과 입을 일부러 끌어올린 것이 습관이 되어 지금은 표정이 밝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데, 얼굴이 마음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이제는 웬만한 일로는 괴로워지지 않는다 ^^ 


좋아서도 웃지만, 웃어야 좋아진다. 

웃는다고 좋아질 것까지는 없지 않냐고? 이러나저러나 똑같을 거면 재밌게라도 살아야지 안 그래? 




P.S. 남이 시무룩하게 있으면  동정하는 듯, 안타까워하는 듯하면서 안도감이나 우월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그런 사람들 약 올리기에 더할 나위 없는 것도 바로 웃음이다. 웃어서 나쁠 건 진짜 한 개도 없다. T.P.O.만 지킨다면! 


P.P.S. 나는 요즘 '뭉쳐야 쏜다'로 웃음 근력운동 중. 얼굴과 복근 운동 둘 다 됨 ㅋㅋ 




작가의 이전글 4월 21일 연주 복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