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직접 연주하는 것만큼이나 남들 연주 보는 것도 좋아한다. 음악이 직업이 되다 보니 일 안 할 때는 쉬고 싶은 마음도 있는 터라 공연을 일부러 찾아서 보러 다니지는 않으나 누가 '이거 같이 가볼래?'하고 알려주면 주저 없이 따라나서는 편이다. 유명한 연주자의 내한 공연은 소식을 몰라서 놓칠 때가 많지만 ㅠㅠ 아는 동료들의 공연이나 학생들 연주도 불러주면 흔쾌히 간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끼리는 귀찮지만 인사 차원에서 서로 가주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실제로 궁금하고 들어보고 싶어서 가는 거다.
내가 남의 연주 보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연주를 보면 그 사람에 대해 더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했던 그 사람의 이미지대로 쳐서 나의 안목(?)에 확신을 갖게 되거나, 가끔 의외로 '어? 생긴 것과 다르게 저런 면이 있어?'하는 사람도 있어서 연주자를 구경하는 것 자체가 무척 재미있다. 무대로 나오는 걸음걸이, 인사하는 자세와 표정에서부터도 그 사람에 대한 많은 것을 알 수 있어서 나는 곡의 처음과 끝에는 안경을 꼭 쓴다. 안경 쓰고 사람을 관찰한 다음 연주를 시작하면 안경은 벗고 소리만 듣는 편!
공연에 가서 레퍼토리만을 듣는다고 한다면 그 곡의 완성도, 해석 등등을 전문적으로 비평하는 것이니 차라리 집에서 음반을 듣는 것이 훨씬 만족도가 크다. 라이브 공연은 아무리 대가 연주자라 하더라도 실수가 있고 해석도 주관적이라 동의하기 힘들 때도 많다. 전공자의 입장에서 유명한 사람의 공연은 그 연주자의 악기 하는 테크닉, 무대 매너나 음악을 보는 관점 등을 봐보고 나에게 참고가 될 것이 있는지 공부하기 위해 가는 것이지 일반 팬들처럼 마냥 동경하여 '너무 좋았다~~'라고 하게 되는 경우는 잘 없다. 좋아도 뭐 때문에 좋았는지를 분석하게 되지.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내한공연하는 연주자가 아니어도 아름답고 감동적인 연주를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많다. 뉴욕에서 카네기홀 공연도 많이 봤고 학교에 와서 마스터 클래스 하는 세계적인 연주자들도 많이 접했지만 내가 정말 좋았다고 느끼고 집에 돌아와서도 흐뭇한 마음이 들었던 연주들은 대부분 유명하지 않은 사람(선생님이나 학생들)이 동네 교회나 학교에서 하는 연주였다. 연주자가 얼마나 연주에 성의를 보였느냐, 얼마나 준비를 했고 또 연주하는 그 순간에 얼마나 몰입을 하느냐에 따라서 연주의 감동이 달라지는데 나는 사람들의 그런 '음악을 대하는 태도'를 보러 공연장에 간다.
객관적인 실력은 뛰어나지만 연주 자체에 몰입을 안 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기술로만 연주를 하는 것은 솔직히 듣는 사람에게 실례라고 생각한다. 유명한 사람이지만 '내가 이만큼 잘났는데 니가 안 좋아하고 배겨?' 하는 투라 기분 나쁜 사람도 있고, 화려함만 뽐내고 관객과 연결되려는 시도조차 안 하는 사람은 '이럴 거면 내가 집에서 레코딩을 듣지 굳이 여기에 왜 왔겠니' 싶다. 라이브 연주에서의 감동은 연주자가 자신의 취약한 모습까지도 드러내며 최선을 다할 때 나온다. 실력 뛰어난 사람이 손쉽게 혼자 압승을 거두는 운동 경기보다 서로 실력이 비등비등한 사람들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기가 훨씬 재미있는 것처럼 음악도 연주에 임하는 사람의 마음이 중요하다.
연주를 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가 없어서 어딘가 숨으려 한다던가, 틀리지 않는 데만 집중하고 있으면 듣는 사람들은 재미가 하나도 없다. 곡의 내용을 이야기처럼 들려주지 못하고 자기 세계에 갇혀서 텍스트만 달달 읊는 것 같으면 다 맞게 쳐도 '방금 뭐가 지나간 거지?' 싶을 뿐.
예전에 어떤 유명한 연주자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연주를 워낙 많이 하니까 했던 곡을 다른 공연에서 반복적으로 연주하는 경우가 많은데도 '준비가 잘 되었다'고 생각되는 연주는 결코 없다고 했었다. 만반의 준비가 되었으니 자신 있어서 연주를 하는 것이 아니고 매번 절박한 심정이라는 것이다. 이 사람이 의미하는 준비는 겨우 손가락을 돌리고 악보 외우는 수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남들이 보기에는 이미 연주를 할 충분한 준비가 되었더라도 연습이란 건 사실 해도 해도 끝이 없고, 늘 나의 부족한 모습이 보이기 마련이다.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흠도 많이 보이는 거고. 나의 보잘것없음을 알면서도 무대에 올라가 사람들 앞에 나를 내놓는 것, 실수하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을 묻어두고 음악 자체의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진짜 용기가 아닐까? 라이브 공연에서 관객들은 연주자의 완벽성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감지하고 감흥을 얻는 것이다.
어제는 학교에서 중간 실기평가가 있었다. 스무 명 넘는 학생들의 연주를 주르륵 들으니 어찌나 신기하고 재미있던지. 연주에 자기네들 생긴 대로의 성격이 고스란히 보여지더라. 아직 테크닉이 완성된 아이들이 아니니 뭐가 그리 티가 날까 싶은데 오히려 더 확연했다. 말괄량이 A는 여기저기 틀리는데도 뭔가 개구져서 연주를 보는 내내 즐거웠고, 얌전하고 차분하여 수업 때는 크게 눈에 띄지 않았던 B가 이렇게 성숙하고 섬세한 아이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던가, 얼굴이 참 예쁜데 웃음기가 없는 C는 연주를 하는 것도 깔끔하고 흠 없지만 어쩐지 자기만의 세계에서 문을 열고 나오기 힘들어한다는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다들 자기 성격대로 연주를 하는 것을 보니 성격을 계속 갈고닦아야 하는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사람은 타고난 성격이 변하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사람은 변할 수 있다. 나는 그걸 김연아를 보면서도 생각했었다. 어린 시절, 아직 기술적으로나 표현력이 완성되지 않았던 김연아는 인터뷰에서도 무척 뚱하다. 그러나 점점 나이가 들면서의 인터뷰는 성숙하면서도 표현이 확실하고 매력 있다. 김연아를 보며 멘탈과 스케이팅은 함께 간다고 느꼈는데 음악도 똑같다. 원래 극내향형인 나도 학생 때는 남에게 피해 없게 내 할 도리만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음악에 personality가 없다는 것을 여러 번 지적받았고, 그게 노이로제가 되어서 해결하려고 애쓰다 보니 선택적 외향인이 되었다. 적어도 음악을 할 때는 나랑 같이 연주하는 사람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연주를 할 때도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나 말고 음악의 전달 자체에만 집중하려고 한다. 완벽한 사람보다 웃긴 사람이 훨씬 매력적이고 삑사리가 좀 나더라도 뭔가 얘기해 볼 시도를 하는 것이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을 즐겁게 만든다는 것을 이제는 믿으니까 용기를 낼 수 있다. (망가질 용기?! ㅋㅋ)
나이를 먹고 배우는 것이 많아져서 겸손해지는 것은 좋으나 자기 의견을 죽이고 남들과 비슷하게 눈에 안 띄게 살려고 하는 것은 좀 슬프다. 그게 연주에서 드러나는 건 더 슬프다. 정말 잘하는 거 맞는데 그 사람의 인간성은 느껴지지 않는 건조한 연주를 보면 '저 사람은 어떤 세월을 보내며 저렇게 깎여버린 걸까' 싶어 서글픈 마음이 들기도 한다. 반대로 겪은 일 없고 인생이 평탄하기만 했던 사람, 남의 경험으로라도 인생을 배워보려 노력해 본 적 없는 사람의 음악은 들으면 맹꽁해서 짜증이 난다. 너 예쁜척하며 소꿉놀이하는 거 들으러 내가 여기에 온 건 아니잖니.
어린 사람들의 연주에는 그들의 타고난 성격이 비춰지고, 어른의 연주에서는 그 사람의 됨됨이, 살아온 깊이가 감지된다. 연주를 통해서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나를 돌아보게 하고 앞으로 나를 어떻게 가꿔나갈 것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 성격/인성 관리가 정말 중요한 것 같다. 나이에 걸맞는 인생 경험을 하고 어려움을 포용하며 비뚤지 않게 살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하겠다. 나라는 사람이 연주에 그대로 전부 드러난다고 생각하면 보통 무서운 일이 아니다. 연습하는 것 못지않게 인간으로서의 성찰과 훈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