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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오름 Jan 23. 2023

새로운 씀의 세계

2021년 가을의 끝자락, 몇 달간 고민하다가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쓰기 운동을 하며 쓰는 근육을 조금씩 키워나갔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 없이 자유롭게 내 이야기만 하더라도 다정과 공감을 나누어주는 사람들 덕분에, 한결 따듯한 삶을 보낼 수 있었다. 그 응원 덕분에 용기를 내어 나를 꺼내 보였고, 제법 무색무취에 가깝다고 생각했던 내가 다채로운 색과 향을 지닌 사람임을 깨달았다. 글을 읽고 쓰며 사람들의 아픔을 들으며 아파하다가, 모양도 크기도 다르지만 닮은 서로의 아픔의 모습 자기 연민과 잠시 거리를 두기도 했다.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힘찬 응원과 가르침으로 나를 둘러싼 보호막은 조금씩 두터워졌다.   


그러다 토마토 님의 예전 글을 읽으며 함께 모여 서로의 글을 비평하는 모임을 접했다. 온기만이 가득한 온라인 글쓰기와는 다른, 비평이 난무하는 쓰기의 세계라니! 글쓰기란 현실에서 매서운 바람을 피해 따뜻한 물을 마시며 숨을 들이쉴 수 있는 쉼터. 당시의 내가 글쓰기에 원했던 건 행복함과 편안함이었으므로, 애써 화살을 맞기 위해 안온한 보호막을 나서는 부담을 자처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해서 글을 쓰다 보니, 내 글이 다른 사람들에겐 어떻게 읽힐지 궁금해졌다. 공부할 땐 시험만 보지 않으면 배우는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있었겠다고 아쉬워했으면서, 막상 쓰기를 반복하다 보니 과연 내 글이 어떻게 평가받을지 궁금해진 것이다. ‘몇 달 동안 꾸준히 썼으니, 제법 늘지 않았을까?’ 하고 기대하는 마음과 ‘아닐 거야. 아직 부족하기만 한데.’ 하며 걱정하는 마음이 각자 소리를 높였다. 아쉽게도 걱정하는 목소리가 좀 더 힘이 셌다. 한참 동안 낙방할 것이란 두려움 때문에 브런치 작가 신청은 미루고, 서랍에 아끼는 과자를 채워 넣듯 꾸역꾸역 글을 담아두기만 했다.     


회사일로 마음도 몸도 너덜너덜해졌던 2022년 11월 25일 금요일, 문득 떨어져도 괜찮다는 용기가 생겼다. ‘몰라, 안 되면 또 도전하지 뭐!’ 호기롭게 브런치 작가 신청 버튼을 눌렀다. 그날 일기엔 이렇게 적혀있다. ‘브런치 작가 신청한 날, 기대하지 말자.’ 하지만 결과가 기다려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감사하게도 사흘이 지나고서 “축하합니다. 브런치 작가가 되셨습니다.”라는 메일을 받았다. 담당자의 너그러움 덕분일지, 몇 달간 아끼는 간식 채워 넣던 마음으로 글을 저장하던 간절함 때문일지, ‘떨어져도 괜찮아!’라는 초심자의 용기가 큰 역할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새내기 작가로 향하는 걸음마를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무슨 주제로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다른 작가들 보면 어쩜 이렇게 말하고 싶은 주제가 분명할까? 뚜렷한 생각이 나지 않을 때면, 민지 님의 글감이라는 지지대를 잡고 풀어낸 글을 서랍에 담고, 그 글을 발행했다. 하지만, 여전히 ‘쓰고 싶은 주제’가 막연하게만 느껴졌다.      

이왕 세상에 글을 꺼낼 용기를 냈으니, 지적받을 용기도 생긴 것 같았다. 인스타그램에서 이슬아, 양다솔, 그녀의 스승인 어딘, 그리고 몇 번 다녀간 독립책방을 팔로우하며 쓰는 자들이 나누어줄 씀의 시공간을 찾았다. 그러다, 임지은 작가가 글쓰기 수업을 연다는 걸 알았다. 임지은은 <연중무휴의 사랑>을 쓴 작가로,  ‘이 정도로 솔직할 수도 있구나!’ 감탄하고 부러워했던 사람이었다. 이건 꼭 들어야겠다며 메시지를 보내려던 순간, 평일 밤에 시작해 10시 30분에야 끝난다던데, 회사엔 별일이 생기지 않을까, 귀갓길은 괜찮을까 온갖 걱정거리가 생겨났다. 


“자기, 수요일 저녁에 망원동에서 글쓰기 수업한다는데, 야근하느라 못 가면 어떡하지? 가더라도 한참 늦게 끝나면 귀갓길 괜찮을까?”

“에이, 정 늦게 끝나면 택시 타고 오자, 괜찮아. 자기 글쓰기 수업 듣고 싶어 했잖아. 일단 신청해!”


그렇게 용기를 냈다.     


설레는 마음으로 수업을 기다렸다. 새로운 상사가 오는 바람에 야근을 할 수 있겠다 싶어 수업을 취소할까도 고민했다. 하지만 ‘글쓰기 수업 꼭 듣게 해 주세요.’ 소원이 이루어진 덕분인지 다행히도 야근은 다른 날에 하고 수요일에는 6시가 되자마자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망원동 주택가에 자리한 조그만 책방이자 작업실. 어색하게 옹기종기 모여 작가님을 기다렸다. 김이 모락모락 품어 나는 붕어빵을 손에 들고 온 작가님, 과자를 주섬주섬 챙겨 온 동료가 꼭 마음의 난로까지 챙겨 온 것만 같았다. 


작가님은 여기는 서로의 글을 합평하는 자리라며, 내가 생각지 못한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납득이 안 되는 비평엔 속으로 ‘X 까!’라고 외치며 무시하면 된다는 걸 강조하면서도, 그 부딪히는 지점에서 내가 몰랐던 나의 색을 마주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없이 다정하기만 한 말은 허망하기만 하므로, 좋은 사람이려는 욕심은 내려놓고 솔직하게 내 생각을 드러내되 상대를 존중하기로. 그렇게 우리는 약속했다.     


글에 쏟아질 지적이 두려워 잘못 택했나 망설여졌다. 난 평가받는 두려움이 지독히도 큰 인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덧 서로의 글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에 심취해 버렸다. '지금 내가 이곳에 있는 게 맞나?’ 하며 이 공간에 있는 나와 그런 나를 바라보는 나 두 명이 있는 것 같았다. 회사에서 하루종일 일에 시달리며 떠오른 고민, 오랜 기간 출장을 떠난 남편을 향한 그리움도 익숙하지만 생경하게 느껴졌고, 오로지 글을 읽는 이 공간이 모든 걸 압도한 느낌. 이런 걸 몰입이라고 하는 걸까?  피곤함이 만들어낸 몽롱함도 이 묘한 느낌을 보탬이 된 것 같지만 일단 몰입이라고 아름답게 명명하고 싶다.


내가 생각지 못한 걸 일러주는 신선함도 느꼈고, 도무지 공감이 안 되는 지적에는 '어쩌라고'를 속으로 되뇌며 애써 미소를 짓기도 했지만, 행복했다. 내 글에 집중해 주는 사람들, 다른 사람의 글을 보며 배워가는 시간, 내 글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기회, 그 모든 게 좋아 장장 4시간이 흘러 11시 30분이 되도록 그 시공간에 흠뻑 빠져 있었다. 무엇이 좋은 글인지 각자의 생각이 다 다르겠지만, 그 기준조차 어렴풋했던 내게 렌즈 하나가 생겨 든든했다. 비대면으로도 충분한 소통이 가능하다고 여겼으나, 왜 함께 숨 쉬고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는 기운을 그리도 사람들이 그리워했는지 실감하면서 말이다.      

나의 부족함에도 지적보다는 격려를 나누어주는 글쓰기 모임원들이 선물해 준 용기로, 새로운 씀의 세계에 발을 디뎠다. 이젠 즐겨보고 싶다. 앞으로의 여정이 순탄할지는 모르겠으나, 되든 안 되든 일단 도전한 내게 잔잔한 박수를 보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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