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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오름 May 15. 2023

배후에 있는 내면아이


의미 있게 토요일을 보내고 싶어 프립을 검색하다 고궁 사진 촬영으로 오후를 채워보기로 했다. 여유롭게 광화문역에서 내려 한가로운 여유에 행복해하던 중, 차츰 경복궁 쪽으로 발길을 내딛을수록 한복을 차려입은 인파에 점점 가슴이 가빠졌다. 아스팔트의 열기운에 더위도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다.     

 

‘날을 잘못 잡았나.’     


맑은 날씨는 좋지만, 그 날씨릏 함께 즐기러 온 사람들과 한데 어울리기는 싫어서 조용한 곳을 찾아 계속해서 걸었다.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토속촌 삼계탕을 지나 한결 여유로운 수제비 집에 자리를 잡았다. 참기름에 버무려진 보리밥과 열무김치를 뚝딱 하고, 감자수제비를 수저에 소복이 담아 올리면 속은 든든, 마음은 편안해진다. 배를 한가득 채우고 나면 인파 속에서 버텨낼 체력은 준비 완료!     


졸음을 달래려 커피 한 잔씩 손에 쥐고 경복궁으로 여유롭게 걸어가고 있었다. 사람은 하나둘씩 더 모였고, ‘과연 인파 속에서 경복궁의 풍경을 아름답게 담아낼 수 있을까?’ 생각하던 중 프립 호스트님을 만났다.     


호스트님은 사진 촬영법을 먼저 설명하시는 대신 각자 사진을 찍고, 호스트님이 찍으신 사진과 비교한 후 호스트님이 찍으신 대로 다시 한번 더 찍는 것으로 수업이 진행된다고 했다. 대강 고개를 끄덕이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남자친구분 너무 잘 찍으시네요. 감이 뛰어나요!”     


남편은 사진을 찍을 때마다 칭찬을 받았다. 그래, 그림도 잘 그리고 패션에도 관심이 많으니까, 평소에도 남편의 예술적 감각을 인정하고,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함께 사진을 찍고 “서로 찍은 사진을 비교해 보세요.”라고 할 때마다, 사진을 찍기가 점점 더 싫어졌다. 가끔은 내가 좀 더 잘 찍었을 때, “이번엔 배우자 분 사진이 정답이네요.”라고 칭찬을 해주시는 것도 불편했다.


새로운 것을 배우며 주말의 여유를 즐기고 했던 자리가, 자꾸만 서로의 결과물을 비교하면서 경쟁하는 자리로 변모하고 있었다.      


물론, 내가 봐도 멋있는 순대로 우열을 매기자면, 호스트님의 사진, 남편의 사진, 그리고 내 사진 순이었다. 하지만, 매 순간 내가 찍은 사진의 문제점을 지적받고 나니, 남편의 들러리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남편을 질투하다니!’ 남편을 빛나게 해 주는 보조인물로 전락했다고 느꼈던 순간, 남편이 미웠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하는 나는 더 싫었다.     


남편은 남편대로 서운함을 토로했다. 사진에는 정답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정답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불편했다면서 말이다. 그림에 관심이 많다 보니 시각적으로 연결되는 사진을 좀 더 잘할 수 있는데, 자신을 미워하는 것 같아 속상했다고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미안해. 그런데 그 순간 꼭 자기를 빛나게 해 주려 자리하는 보조품 같다고 느꼈어.’ 솔직하게 말을 꺼냈다.


감사하게도 남편은 힘들었겠다며,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경험을 나누어 주었다. 와인이나 위스키의 맛과 향을 느끼고 말할 때, 혹은 스스로에 대한 말하거나 책에 관하여 글을 쓸 때면 내가 그보다 특별한 재능이 있다고 느꼈다고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고유함이 있다는 걸 깨닫고 서로를 비교하다 삶을 갉아먹지 말자며 화해의 술잔을 기울였다(그렇게 위스키 예닐곱 잔을 마시고 다음날 숙취에 시달려 헤롱 댔다는...).     


돌이켜보면 나는 비교당했을 때 쉽게 기분이 상한다.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기분이 좌우되지 않도록 중심을 지키고 싶은데, 비교의 중심에서 우위에 서지 못할 때 괴로워한다. 평가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기저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     


잘해야만 사랑받는다고 믿는 내면아이가 있어서 그런 걸까? 주인공이 되어야만 의미 있는 삶이라고 느끼는 걸까? 왜 그럴까? 아무리 내가 잘하는 게 많고 앞에서 주목받는 걸 좋아한다고 해도 늘 그럴 수는 없는데,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받고 싶은 인정욕구가 이상하게 발현되는 걸까? 왜 그런 걸까? 무대에 서 있을 때 극도의 행복을 느꼈던 걸까? 언제부터 그랬던 걸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


이제 민지 님이 추천해 주신 <내면아이의 상처 치유하기>를 읽을 때가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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