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토요일, 켄싱턴 팰리스를 둘러보고 하이드파크로 나오던 길에 단풍나무를 보았다. 가을의 출퇴근길을 떠올리면 노란 은행잎과 은행 냄새가 기억난다. 길거리엔 흔치 않아 단풍놀이라는 명목으로 특정 명소에 가야 볼 수 있는 단풍나무, 가을에 가장 바빴던 나는 십여 년 간 보지 못해 가물가물해졌다. 단풍나무에 감사해하던 것도 잠시, 새삼 슬퍼졌다. 런던의 가을이 이제 마지막이라는 게 실감 났기 때문이다.
‘오늘은 내가 런던에서 보내는 마지막 10월 13일이야.’ 이렇게 외치면 오늘의 시간이 무척 소중하게 느껴진다. 끝을 알아야 소중함을 느낀다는 진리를 깨닫는 요즘, 한국에서도 이 마음을 지키며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생각하면 갸우뚱해진다.
물론 런던은 지상낙원이 아니다. 환율과 물가 압박에 가끔 밖에 나가더라도 점심은 샌드위치나 소시지롤로 가볍게 마친다. 한국에서처럼 이것저것 주문했다간 생활비 잔고가 바닥이 날 테니까. 음식 배달이나 택시 타기는 너무도 비싸 꿈도 꾸지 않는다. 매일 집밥을 차리고, 지하철이 수시로 고장 나도 대체 편을 찾거나 그마저도 아니면 무작정 기다려 타는 불편함, 보통의 유럽과는 달리 런던은 글로벌 도시라 소매치기는 팽배할지언정 인종차별은 괜찮다고 여겼던 나를 조롱하듯, 지하철에서 눈 째진 포즈를 하더니 Fuck you를 날리는 20대 무리들을 만났다.
영국에선 한국에선 누렸던 서비스의 신속성을 기대하면 안 된다. 대부분의 유럽국가에서 마찬가지겠지만, TV가 고장 나도 수리 신청을 해도 한 세월 기다려야 하고, 병원 예약 후 방문도 한참을 견뎌야 한다. 가게가 저녁 8시에 종료 예정이라면, 8시에 손님맞이를 끝내고 뒷정리를 하는 게 아니라 8시에 퇴근할 수 있도록 미리 정리를 한다. 공항에서 근무하는 항공사 직원들은 10시에 퇴근하기로 했다면, 방금 도착한 비행기 탑승객이 짐을 분실했더라도 퇴근한다. 간혹 영국의 시골도시에 당일치기로 여행을 다녀오면, 작은 역엔 이미 역무원이 다 퇴근하고 역이 잠겨있어 화장실이 급하다면 기차가 올 때까지 견뎌야 한다.
이렇게 불편하지만, 어찌 보면 서로 적당히 일한다는 암묵적 합의가 사회를 지탱하게 하는 것 같다. 물론, 경쟁에서 앞서 나가려면 적당히 일하는 것으로는 쉽지 않다. 서유럽이 기술발전에서 점점 도태되고 있는 데 이러한 문화도 한몫하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옆을 돌아보며 내 위치를 점검하지 않는 안락함이, 저녁과 주말이 있는 삶이, 스스로의 행복에 집중하는 여유가 부럽다.
많은 한국인들이 그랬듯 나 또한 이제껏 극한으로 스스로를 밀어붙여 오랜 시간 힘들어하다 마지막 순간의 성취를 누리는 삶을 살아왔다. 비록 하루하루는 편안함을 추구하기도 하지만, 목표의식과 성취가 오랜 시간 자취를 감추면 동력을 잃는 게 불안했다. 앞서 달려가 높이 올라가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아 애써서 그 자리에 오르면 행복하면서도 허탈했다. 그러다 누군가가 대단하다고 추어주면 겉으론 아닌 척 웃으며 속으로는 안도했다. 한국에선 내 방식이 꽤 잘 맞다고 느꼈다. 그런데 영국에서 여유를 경험하고 나니, 다시 빡빡한 경쟁 속에서 스스로를 내던지기가 두렵다. 못해낼 것 같아서 무서운 게 아니라, 불행해질까 봐 겁이 난다.
왜 빠르게 달려가려고 했을까. 옆을 자꾸 흘깃 쳐다보았을까. 점점 나아지고는 있다지만 아직도 한국은 비교 기준이 단편적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다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비교기준이 단편적이다 보니 스스로에 집중하기보다는 남을 본다. 내가 남의 속을 모르니 좋은 모습만 보여 비교하다 보면 열등감과 우울감이 밀려온다. 비교기준이 몇 개 안 되니 그 사이에서 마치 우열관계가 존재하는 것만 같다. 명품백과 강남아파트에 대한 동경과 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무시로 대변되는 돈의 우상화, 어떠한 교육제도로도 잠재워지지 않는 사교육과 급기야 7세 고시라는 단어까지 등장하는 데 일조한 학벌주의, 그리고 곳곳에 만연한 각종 갑질.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쳐 짧은 시기에 성장해야 했기에 특정 목표를 향해 빨리 움직이는 게 최선이었을 것이다. 지금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 K Culture가 각광을 받는 지금을 이뤄내는 데엔 부지런하고 영특한 우리의 조상과 동료들이 있었다. 다만, 급속도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가치를 포용하며 돌볼 여유가 부족했다. 이젠 성장통을 직면해 치유해야 할 시기다. 그렇다면 속도보단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우선되어야 할 텐데, 과연 나는 빨리 뛰라는 사회적 압박에도 초연하게 내 길을 걸을 수 있을까?
누군가는 지금 정세를 보고 대응할 준비를 해야지, 한가한 소리 하지 말라고 할 것이다. 이 말에도 깊이 공감한다. 지금 여유가 생겨 찬찬히 세계 뉴스를 볼 시간이 있어서 그럴진 모르겠으나,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세상이 바뀌고 있다고 느낀다. 물론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기사화되지 않으니 모르겠지만, 네이버 뉴스 대표기사엔 여야 의원들이 상호 비방하는 이야기로 화면의 대부분이 차지하고 있으면 숨이 막힌다. 미래를 고민하는 정치인이 몇이나 되는 걸까? 돌연 내 생의 유한함을 자각한다. 가치관에 맞지 않는 일을 하며 내 자유를 희생할 시간들이 더욱 아깝게 느껴진다. 더 멋진 일을 하며 살고 싶은데. 자유롭게 말하고 나누고 싶은데. 하지만 아직 뾰족한 대안은 보이지 않는다. 대출금을 갚고 내 삶을 지탱할 기반이 뿌옇다.
내년의 가을이 두렵다. 하지만 몇 년 후의 가을은 아름다울 수 있게 웅크리고, 고민하고 준비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