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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Jan 19. 2019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자아상

"나는 누구인가?"

어쩌면 영원한 숙제일지 모른다.

답이 있는 질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혹시 수많은 답이 있어서 답을 정할 수 없는 것일까?

그런데 이 의문이 풀리지 않은 채 어떤 삶을 살더라도 의미가 있을까 싶다.

과연 나는 누구일까?



철학자들은 말한다.

"다른 사람의 삶을 흉내 내지 말고 너 자신의 삶을 살아라."

이게 무슨 말인가?

그냥 자기 마음대로 살라는 뜻인가?

그렇다면 자기 마음이란 걸 알아야 한다.


자기 마음이란 걸 알기 위해 마음속을 살펴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다.

심지어 동시에 여러 마음이 일어나서 결정을 못하기도 한다.


꼭 결정을 못하고 자꾸 망설이는 결정장애가 아니더라도 갈등은 쉽게 일어난다.

한 대상에 좋은 면과 좋지 않은 면이 함께 있어서 결정이 어렵다.

여러 개의 대상을 놓고 무엇을 고를까 고민이 되기도 한다.

마음속에서는 잠시도 쉬지 않고 온갖 생각이 일어나면서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망설이게 된다.


이렇게 고민하고 갈등하는 주체가 바로 자신일 텐데 자신의 정체가 분명하지 않다.

자아정체성이란 다른 존재들과 자신을 구분하는 특성을 말한다.

인터넷을 이용할 때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필요하다.

여기서 아이디란 것이 자아정체성 곧 아이덴티티(Identity)를 확인하는(Identification)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아이디를 만들기도 한다는 점이다.


수많은 생각과 관점을 갖고 있어도 보통은 '나는 이런 사람이다.' 하는 생각을 가지고 산다.

그래서 '그건 나한테 안 어울려.'라거나 '나답지 못한 행동이야.'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내가 도대체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 하는 고민도 하는데, 이는 부지불식 중에 자기가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행동하는지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된다.

이를 자아상(自我像)이라 한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에 각자가 가지고 있는 답이 '자아상'이라는 말이다.

이 자아상에 비추어 '나답다', 또는 '나답지 못하다' 하는 판단을 한다.

그런데 자아상이 과연 자신의 정체가 맞을까?

만약 자아상이 자신을 바로 인식한 것이라면 안팎으로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자신이 보는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보는 자신이 일치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자아상은 어릴 때부터 경험해 온 삶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어른들한테 자주 들었던 말,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받았던 대우, 경험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방식... 이런 것들이 뒤섞여서 자아상을 만든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아상이 기준이 되어서 나름의 시각을 가진다.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하더라도 자아상은 색안경처럼 작동한다.


진지하게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할 때 자아상이 드러나는데, 자아상 자체가 실제를 그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오류투성이임을 발견하면서 새삼 혼란에 빠지는 것이다.

자아상은 자신을 스스로 가두어버리는 관념의 감옥과 같다.

주의 깊게 살펴보지 못한 채 몇 가지 경험과 기억으로 굳어진 자아상에 갇혀서 '뻔하게' 반응하고 마는 것이다.

더 빠르고 좋은 길이 있어도 이미 익숙하게 난 길로만 다니는 것처럼 자아상에 갇혀서 선입견과 고정관념으로 상황에 대응하다 보니 문제를 적절하게 해결하지 못한다.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서 과연 진정한 나는 누구일까 고민되는가?

먼저 자신이 갖고 있는 자아상부터 검토해 볼 일이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흘러 보내면 된다.

강력하게 남아있는 경험이나 생각들도 한걸음 떼어놓고 바라보자.

유효기간이 지난 것을 붙들고 있어 봐야 현실을 살아가는데 방해만 된다.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마음에 깨어있어서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 기쁨도 누려보고 싶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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