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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Oct 13. 2021

과대표한테 교수님이 돈을 걷어 달래요

사학 비리

"과대표한테 교수님이 학생회비를 걷어서 달라고 하는 게 말이 되나요?"

동생이 다니는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이 어이가 없어 올린 사연이다.

사학 비리가 떠오르는 사례다.

그냥 개인적인 고민으로 그칠 일이 아니다.

(10월 13일 참나원 팟캐스트 방송)



동생은 과대표다.

그 학교에 작년에 부임한 교수가 있다.

프로젝트를 많이 해서 쉽게 검색해서 찾을 수 있을 정도다.

개인적으로 프로젝트를 따서 진행한다.


코로나로 인해서 학생회 활동이 거의 없어 회비를 걷을 일이 없었다.

그런데 학생들이 별로 참여하지 않는 프로젝트에 비용을 대라고 한다.

강사를 섭외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비용의 일부를 학생들한테 부담하라는 것이다.

동생에 학교는 편입을 많이 하는데 교수가 동생한테 편입은 꿈도 꾸지 말라고 했다.


편입 계획이 있던 동생은 교수의 협박에 펑펑 울었다.

도대체 교수가 학생들한테 회비를 걷어서 가져오라는 것이 말이 되는가.

사연자는 황당한 마음에 반말로 사연을 올렸다.

독자들한테 "당신이 과대라면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물었다.


이 사연을 개인적인 고민으로 보아야 할까.

그냥 한 교수의 개인적인 일탈로 보아 넘길 일은 아니다.

이 교수는 영업을 잘하는 셈이다.

사학 재단에서는 이런 교수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대학은 학문을 하는 곳이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대학은 어떤가.

취업을 위한 입시학원처럼 되어버리지 않았나 싶다.

학문을 연구하기보다 영업을 잘하는 교수가 능력을 인정받는 분위기다.


학문 연구가 아닌 지식 장사가 대학의 본질일 수 있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업이나 장사는 이윤을 목표로 한다.

사연자의 동생이 다니는 대학도 이 범주에 들어가는 것 같다.

대학 당국이 바로잡을 의지도 능력도 없을 것이란 뜻이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겠다는 당당함으로 맞서면 어떨까.

두려움으로 타협하며 사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다.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가 현실을 돌파하려는 기백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위협에 겁먹고 절망하면서 우는 나약함이 안타깝다.



따를 것인가 맞설 것인가.

정의라면 따르고 불의라면 맞선다.

꺾이기 시작하면 계속 꺾일 일이 생긴다.

떳떳함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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