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심
마음이 가라앉는 것을 혼침이라 한다.
무거워 숨이 막힌다.
마음이 들뜨는 것을 도거라 한다.
어디로 튈지 몰라 조마조마하다.
칭찬에 들뜨고 비난에 가라앉는 마음은 행복할 틈이 없다.
부동심(不動心)을 아는가?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부동심이라 한다.
인간의 마음을 흔드는 것이 무엇일까?
안으로는 온갖 생각과 욕망이 마음을 흔든다.
밖으로는 온갖 자극과 상황이 마음을 흔들어댄다.
부동심은 흔들리지 않고 안정된 마음이다.
안팎의 도전을 물리쳐야 부동심을 얻는다.
그렇지만 흔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단단한 벽 같은 것은 아니다.
중심을 잘 잡고 있어서 움직임 속에서도 질서가 깨지지 않는 것이 부동심이다.
자극에 따라서 알맞게 반응을 하면서도 혼란에 빠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부동심을 가지면 희로애락을 못 느낄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희로애락을 느끼지 못하면서 흔들리지 않는 마음은 그냥 단단한 벽일 뿐이다.
진정한 부동심은 오히려 희로애락을 있는 그대로 잘 느낀다.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서 마음이 들뜨기 쉽다.
너무 들뜨면 사고를 치고 만다.
오래도록 칭찬에 익숙해진 사람은 작은 비판도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다.
엘리트 코스만 밟았던 사람이 아주 작은 실수에도 완전히 망가져서 재기하지 못하는 현상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칭찬에 중독되면 자신의 본심을 잃고 남들의 눈치만 보게 된다는 역설이 생긴다.
완벽주의의 밑바탕에는 칭찬을 듣고자 하는 마음이 깔려 있다고 봐도 된다.
비난을 받거나 꾸중을 들을 때 마음은 어떤가.
기분이 나빠지고 화가 나거나 억울할 수 있다.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스스로 인정한다면 화가 나거나 억울하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비난에는 마음은 무거워지기 마련이다.
계속 비난을 들으며 자란 사람은 칭찬에 한이 맺혀서 심하게 눈치꾼이 되거나 왜곡된 방식으로 상대의 호감을 얻으려 하다가 본의 아니게 이상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비난에 길들여지면 자존감이 한없이 낮아져서 사람답게 살지 못한다.
오랫동안 갇혀서 노예로 살다가 풀려난 사람들을 가끔 볼 수 있는데, 이들은 사람다운 삶을 살기 위해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
칭찬이든 비난이든 마음을 흔드는 자극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모든 사람이 다 칭찬이나 비난에 같은 정도로 흔들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담배에 흔들리지만 피지 않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는다.
알코올 중독자에게 술은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지만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처럼 안팎이 서로 호응해야 마음이 움직인다.
외부 자극과 내면 욕구가 호응할 때 비로소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외부 자극을 아예 무시해서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할 수 있다.
방파제 안에서는 거센 파도의 위험이 없는 것처럼 아예 위험한 자극을 차단해버리면 안전할 수 있다.
자극과 욕구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도 만들지 않는다면 아무리 강한 자극이 와도 마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욕설을 한 마디도 듣지 않고 자란 사람은 마음이 거칠지 않고 순수할 수 있다.
하지만 위험 자극을 완전히 차단할 수 없어서 마주치게 될 경우에 당황하기 쉽다.
위험한 자극을 차단하기보다 대처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훨씬 더 현실에 맞다.
인간에게는 학습능력이 있다.
처음에는 당황해서 허둥지둥하더라도 시행착오를 통해서 요령을 익히게 되면 제대로 대처한다.
초보 운전자와 숙련된 운전자를 견주어 보면 알 수 있다.
운전을 하면서 초보 운전자는 마음이 좌불안석이다.
그러나 숙련된 운전자는 안정감 있게 운전을 할 수 있다.
칭찬이나 비난에 흔들리는 마음은 평가에 대처하는 요령을 익히지 못했기 때문이라 하겠다.
칭찬을 기분 좋게 받아들이되 들뜨지 않도록 스스로 제어하면 된다.
비난을 들을 때 해명을 해서 오해를 풀거나 잘못이나 실수를 인정하고 흔쾌히 사과를 하면서 분발하는 계기로 삼으면 크게 성장할 수도 있다.
아예 무시하는 것은 권장하고 싶지 않다.
칭찬이든 비난이든 받아들이면서 알맞은 방식으로 대처할 수 있게끔 마음의 준비를 잘해 두면 된다.
이것이 부동심을 얻고 유지하는 바른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