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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Feb 18. 2019

조급함을 멀리하고

호시우보

"일을 꾀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말라. 일이 쉽게 되면 뜻을 경솔한데 두게 되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여러 겁을 겪어서 일을 성취하라.' 하셨느니라."

보왕삼매론 다섯 번째 구절이다.

일을 시작하면 그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곧 뜻대로 이루기를 바란다.

그런데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말라는 것은 무슨 소리일까.

호시우보(虎視牛步)가 떠오른다.



마음이 바쁘면 허둥지둥 서두르게 된다.

서두르다 보면 챙겨야 할 것을 빠뜨려서 낭패를 보곤 한다.

그래서 "급할수록 돌아가라."라고 한다.

조급함은 일을 이루는데 경계해야 할 내면의 강적이다.


일이 쉽게 되면 뜻이 경솔해진다는 말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사업이 잘 풀려서 확장하다가 부도를 맞아 폭삭 망하는 사례를 흔히 볼 수 있다.

자신감이 지나쳐서 자만이 되는 순간 마음은 들뜬다.

들뜬 마음으로 망상 속에서 판단을 하니 과속을 한다.

과속은 대형사고로 이어진다.


여러 겁을 겪어서 일을 성취하라는 가르침은 들떠서 자만에 빠지는 사태를 막는 처방이다.

조급한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침착하게 상황을 보고 현실성 있는 계획을 세워 일을 추진할 수 있다.

멀리 보고 차근차근 일을 진행하는 진중한 태도를 가질 때 일을 이루기 쉬워진다.

이런 태도를 일러 '호시우보-호랑이처럼 보고 소처럼 걷는다'라고 한다.

호랑이의 날카로운 시각과 소의 우직한 끈기가 결합되면 어떤 난관에도 꺾이지 않는 끈질긴 실천력이 나온다.


이란 아주 긴 시간을 말한다.

겁을 묘사하는 세 가지 설명이 있다.

첫째 불석겁이라는 개념이다.

가로 세로 높이가 십 리쯤 되는 간간한 화강암 바위가 있는데, 100년에 한 번씩 천녀가 내려와 아주 가벼운 하늘 옷으로 그 바위를 한 번 쓸고 올라간다. 이렇게 해서 그 바위가 다 닳아 없어지는 시간을 한 겁이라고 한다.

둘째 겨자겁이란 설명도 엄청나다.

역시 가로 세로 높이가 십 리쯤 되는 빈 성이 있는데, 장수 천인이 100년에 하나씩 작은 겨자씨를 성에 던져 넣어 성이 겨자씨로 가득 차게 되는 시간이 한 겁이 된다는 설명이다.


이 두 가지 설명은 도저히 계산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세 번째 설명은 숫자로 계산할 수 있다.

수명겁이라는 개념인데, 인간의 수명이 늘었다 줄었다 한단다. 평균 수명이 10년밖에 되지 않는 시절부터 시작해서 바른생활을 하고 절제해서 수명이 늘어나는데, 백 년에 한 살씩 늘어난단다. 그렇게 해서 팔만 사천 세까지 늘어나는데, 이렇게 되면 사람들이 방심해서 방탕한 생활을 하고 그 결과 수명이 다시 같은 속도로 10년으로 준다고 한다. 이렇게 수명이 늘었다가 다시 줄어드는 시간을 한 겁이라 한다.



아무튼 겁이란 시간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긴 시간이라고 보면 되겠다.

여러 겁을 겪어서 일을 성취하겠다고 마음을 먹는데 초조하거나 조급 해지는 일이 있을까.

길게 보고 차분히 계획을 세우면 그만큼 일을 이룰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속도를 중시하면서 효율성을 부르짖는 세태에서 너무 한가한 소리를 한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조급한 마음이 효율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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