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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Aug 29. 2022

나의 철없는 행동이 친구를 잃었습니다

관용

"25살에 실연의 아픔으로 철없이 행동해서 소중한 친구들을 잃었습니다."

36세 여성의 후회다.

관용이 아쉬운 시절이다.

상대의 허물을 이해해줄 수는 없을까.

(8월 29일 참나원 팟캐스트 방송)



아주 친한 5명의 고교 친구들이 있었다.

우정이 대학 졸업 이후까지 이어졌었다.

그런데 25살에 실연의 아픔을 한 친구한테 털어놓은 적이 있다.

죽어버리겠다고 말하고 연락을 끊었다가 추스린 다음에 다시 연락을 했다.


배신감을 느낀 친구는 절교를 선언했다.

다른 친구들도 이 친구의 말을 들었는지 나와 연락을 끊었다.

이제 결혼도 하고 보니 이 친구들이 그립다.

한때 철없는 행동으로 친구들을 잃은 것이 후회된다.


알듯 모를 듯 애매한 부분이 있는 사연이다.

25세에 겪었던 일이 평생 보지 않고 등질만한 사건이었을까.

사연자가 모르는 무엇이 있지 않고서는 이해되지 않는다.

사연자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이미 친구들한테 괘씸했을지 모른다.


이전에 아무리 친했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관계는 변할 수 있다.

정말로 그 일로 해서 관계가 끊어진 것이라면 애초에 그렇게 단단한 관계가 아니었던 것이다.

문제는 현재에 있다.

왜 이미 과거가 된 인연들을 아쉬워하는가.


친구들과 단절된 지 10년도 더 지났다.

그동안 새로 맺은 인간관계도 있을 것이다.

혹시 사연자의 인간관계에 어떤 문제가 있지는 않을까.

절친들에게 절교를 당해야 했던 어떤 태도가 계속되고 있을지 모르겠다.


사연자한테 자신의 태도를 점검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상대방의 관용을 바라기 전에 자신이 너무 자기중심적이지 않은가 돌아볼 일이다.

입장을 바꾸어서 상대의 실수나 허물을 품어주는 아량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관용으로 서로 수용하는 관계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부딪히면 힘이 든다.

받아들이면 힝이 들지 않는다.

관용의 미덕은 조화와 평온으로 이어진다.

허공을 다 담고도 남을 마음을 가지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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