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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Oct 11. 2022

답답해서

시비 분별

"6살 딸을 훈육하는 남편과 부부싸움을 했는데 답답하네요."

딸을 키우는 워킹맘의 사연이다.

남편은 자신의 잘못이 전혀 없다고 한다.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어서 사연을 올렸다.

(10월 11일 참나원 팟캐스트 방송)



아빠가 들어오면 6살 된 딸이 반겨줘야 하는가.

딸이 반기지 않는다고 훈육을 하는 남편에게 한 마디 했다가 싸웠다.

딸이 무슨 죄가 있는가.

남편은 늘 자기는 전혀 잘못이 없다고 한다.


사연자는 답답하다.

어린 딸을 윽박지르는 남편이 답답하다.

자신이 옳다고 우기는 남편한테 화도 난다.

답답한 마음을 풀 수 없어 글을 올렸다.


왜 답답할까.

이해가 되지 않으니 답답하다.

의견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의견이 다르다고 답답한 것은 아니다.


나의 답과 상대의 답이 부딪힐 때 답답해진다.

서로 다른 답이 팽팽하게 부딪히니 '답'이 아니라 '답답'이 된다.

누구의 답이 옳을까.

서로 자기 답이 옳다고 믿고 있으니 충돌을 피할 수 없다.


어떤 주장도 부분적으로는 옳을 수 있다.

어떤 주장도 모두 옳을 수는 없다.

단면만 보고 시비를 가리는 것은 어리석다.

시비 분별에 빠지는 것은 과잉 일반화의 오류다.


사연자의 남편이 딸의 심정을 헤아려 본다면 어떨까.

'왜 아빠인 나를 반기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던져 보는 것이다.

딸도 나름의 판단을 하고 감정을 가질 권리가 있지 않은가.

'어떻게 해야 딸이 나를 반길까?'를 연구해야 마땅하다.


속상해서 딸을 윽박지르는 남편한테 어떻게 말하는 것이 좋을까.

먼저 속상한 마음을 알아주면서 같이 해법을 찾아보자고 제안할 수는 없을까.

다른 견해나 입장을 인정할 줄 알아야 이런 지혜가 나온다.

시비 분별에 빠지면 기껏해야 참는 것이 최선이다.



답을 알면 시원하다.

답이 부딪히면 답답하다.

하나의 답밖에 없을까.

하나의 답밖에 없다는 답이 답답함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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