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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Nov 01. 2022

트라우마? 오버?

두려움 자각

"아버지도 동생도 목을 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줄만 보면 무서워하는 것이 오버일까요?"

내면의 공포를 제대로 이해해서 대처하고 싶은 사연이다.

충격적인 일을 겪고 나서 심리적인 고통에 시달리곤 한다.

고통이 느껴질 때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

(11월 1일 참나원 팟캐스트 방송)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한집에 살 때 아버지가 목을 매서 자살하셨다.

몇 년이 지나고 집을 떠나 외지에 있을 때 동생도 같은 방식으로 생을 마쳤다.

경찰에서 연락이 와 사진으로 동생임을 확인해야 했다.

이후부터 지금까지 빨랫줄만 봐도 두려워졌다.


길을 가다가 버려진 줄을 보더라도 몸을 움츠리게 된다.

이런 두려움이 트라우마인지 오버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내가 관종인가 싶기도 하다.

극복하고 잘 살고 싶다.


사연자는 분명히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자신의 증상에 의심이 든다.

이성적인 판단과 감정적인 판단에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일이 온전하게 이해되지 않아 혼란스럽다.


아버지의 자살까지는 그나마 버텨낼 수 있었다.

그런데 동생마저 같은 방식으로 생을 마감하니 그 충격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직접 눈으로 본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두려움이 생길만하다.

줄만 보아도 몸이 반응하는 것은 트라우마 증상이다.


어쩌면 사연자는 자신도 아버지나 동생처럼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이성적으로는 스스로 자살하는 것이 싫고 두렵다.

그런데 가까운 사람이 둘이나 그렇게 죽었으니 자신도 그럴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든다.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는 두려움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응할 것인가.


먼저 두려움을 그대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애써 부정하려 하는 것은 오히려 두려움을 더 깊이 각인시킬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감정적인 두려움을 그대로 인정하되 이성적으로는 줄이 위험하지 않음도 되새긴다.

'두려워할 만한 사정이 있지만 사실은 안전하다'고 깨어있는 것이다.



의식과 무의식은 서로 소통하고 있다.

집중되는 의식이 무의식에 새겨진다.

의식으로 떠오르는 무의식이 수용되면 옅어진다.

결국 깨어있는 마음이 결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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