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기연 Feb 13. 2023

내가 살아있어서 미안했어 안녕

죽을 결심

"어릴 때 부모님한테 맞았던 것이 자꾸 꿈에 떠올라서 못 견디겠어."

죽으려고 마음을 단단히 먹은 사연이다.

죽을 결심을 하면 괴로움이 사라질까.

오히려 괴로움을 더할 뿐이다.

(2월 13일 참나원 팟캐스트 방송)



사는 곳이 아파트 12층이다.

창문 열고 방충망 열면 뛰어내릴 수 있다.

이번에는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실패하면 죽음보다 더한 괴로움이 있기에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어릴 때 아빠 엄마가 때리고 압박했던 기억이 자꾸 떠오른다.

용서하고 다시는 말하지 않기로 했지만 꿈에 계속 나타나서 괴롭다.

평소에 밝은 척하고 다녔지만 더는 견디기 힘들다.

부모님 모르게 뛰어내릴 거다.


일반인들이 마음의 작동원리에 얼마나 무지한지 알 수 있는 사연이다.

아마도 사연자는 자신의 괴로움을 부모한테 말했을 것이다.

부모도 사과하고 다짐을 받았던 것 같다.

"지난 일이니 털어버리고 다시는 말하지 말자"라는 식으로 처리했을 것이다.


잊어버리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바로 잊게 되는가.

어릴 때 일정 기간 겪었던 괴로움이 커서 결심한다고 없던 일처럼 사라질 수 있을까.

사연자도 나름 진심으로 약속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실제 마음과 다르게 밝은 척을 하면서 애쓰지 않았던가.


하지만 마음 깊이 박혀 있던 상처가 아무는 데는 그만한 조치와 시간이 필요하다.

한 번 사과로 깨끗이 씻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다.

상처를 입었던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고 다독거려야 한다.

좋지 않은 일이니까 잊어버리라는 식의 접근은 상처를 덧나게 하는 압박일 뿐이다.


마음이 마음먹는다고 쉽게 바뀌지 않는다.

사연자도 부모도 이 당연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

자꾸 기억이 나고 꿈에 계속 나타나면 평소에 오히려 적극 떠올리면서 품어주어야 한다.

죽을 결심을 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머리로 마음을 지배할 수 없다.

머리는 얕고 마음은 깊기 때문이다.

깊은 성찰과 보살핌으로 마음을 대해야 한다.

비판과 지시가 아닌 공감과 격려가 상처를 보듬는 약이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근무태만인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