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기연 Jul 06. 2019

양시론의 함정

거짓 긍정

"이것이기도 하고 저것이기도 하다."

양시론(兩是論)이다.

언뜻 보기에 넓게 다 수용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함정이 있다.



황희 정승이 두 하인이 싸우는 것을 보고 불러서 물었다.

한 하인이 말했다.

"저 자식이 소인을 때렸습니다."

황희가 말했다.

"화가 날만 했구나."

다른 하인이 말했다.

"저 녀석이 소인을 먼저 욕했습니다."

이번에도 황희가 말했다.

"너도 화가 날만 했구나."

이것을 지켜보던 황희의 부인이 말했다.

"아니, 대감님은 시비를 가려주어야지 둘 다 옳다 하면 어떡합니까?"

황희가 말했다.

"부인 말씀도 옳소."


황희가 보인 모습이 양시론이다.

서로 맞서는 주장을 모두 수용하는 입장이다.

포용이나 관용으로 볼 수도 있다.

넉넉한 여유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양시론은 늘 좋을까?

만약 둘 가운데 하나를 반드시 골라야 할 경우라면 어떨까.

가부를 결정해야 할 때 '둘 다 옳다' 하고 있으면 어떤가.

책임을 회피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언제나 긍정만 한다면 그 긍정이 진심일까?

판단을 하지 않고 건성으로 하거나 습관으로 하는 긍정은 진짜 의사표현으로 볼 수 없다.

갈등이나 부담을 피하기 위한 비겁한 행동일 수도 있다.

물론 황희가 그랬다는 것은 아니다.


두 가지 상반되는 입장에 양시론을 펼치는 것이 넓은 포용력인지 책임회피의 수단인지 어떻게 구분할까.

황희의 사례는 포용력으로 볼 수 있다.

충분한 권위를 가지고 있었기에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누가 뭐라 시비 걸 상황이 아니었다.

굳이 선택의 책임을 피하고자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다만 진심으로 다른 이들의 입장을 공감했는지는 오직 그 자신만 알 것이다.



양시론은 둘 다 받아들이는 입장이다.

일단 정신건강에 좋다.

하지만 모든 상황에 양시론을 가진다면 신뢰를 잃을 수도 있다.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아닌 진정한 포용력에서 나오는 양시론이어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둘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