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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기연 Dec 26. 2019

마음의 소리

관심

'마음의 소리'

깊은 속마음에 무엇이 있을까.

어떻게 그 마음을 알 수 있을까.

관심을 가져야 한다.

(12월 26일 참나원 방송)



"저 사람은 도무지 속을 모르겠어."

속내가 잘 드러나지 않는 사람은 대하기 어렵다.

그런데 자신의 속내를 모른다면?

자신이 어려워진다.


눈을 감고 걸어보라.

한 발짝 떼기도 어렵다.

몇 걸음 가지 않아 눈을 뜨지 않고는 배기지 못한다.

모르면 두렵다.


인간의 마음은 여러 층이 있다.

감각으로 구성되는 전 5식.

판단과 사고로 구성되는 의식.

자아를 중심으로 뭉쳐지는 개별 무의식.


개인의 무의식을 이루는 자아는 자신의 일부다.

그런데 많은 사람은 자아를 자신이라 믿고 산다.

하지만 실제 자신은 자아보다 훨씬 크고 깊다.

어떤 학자는 집단 무의식이라 이름을 붙였다.


속마음으로 깊이 들어가다 보면 개인의 차원이 무너진다.

그를 특정하는 개별 자아의 경계가 애매해진다.

잠재의식의 세계는 개인과 개인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다.

개별 무의식은 바다 표면에 이는 파도에 비유할 만큼 아주 작은 부분이다.


손가락 다섯이 각자 다른 모양이지만 한 손에 붙어 있다.

이처럼 개별 무의식은 집단 무의식이라는 손바닥에서 나온 손가락과 같다.

얕은 수준의 의식에서 보면 떨어져 있지만 깊이 들어가 보면 한 뿌리에서 나온 것이다.

그래서 마음의 소리를 깊이 들을수록 강한 연민을 갖게 된다.


자신의 상처를 홀로 치유하려 들면 쉽게 벽에 부딪힌다.

뿌리를 파헤쳐 보면 관계에서 생긴 문제이기 때문이다.

개별 무의식에 머물러서는 삶의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집단 무의식을 발견하고 양심의 힘을 얻어야 한다.


섣부른 판단이나 평가는 대부분 자아의 수준에서 나온다.

평가하고 비교하는 방법으로는 집단 무의식을 만나기 어렵다.

자신의 무지를 기꺼이 인정하고 순수한 관심을 낼 때 집단 무의식이 느껴질 수 있다.

집단 무의식에서 나오는 것이 자비와 사랑이다.


각자의 삶은 외롭거나 고달플 수 있다.

자아는 한정된 시야로 부분에 치우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 존재는 자아에 갇혀 있지 않다.

판단이나 분별을 내려놓고 순수한 관심을 가지는 순간 자아의 한계를 넘어서게 된다.



풀리지 않는 인생 문제가 있다면 자아에 갇힌 것이다.

자아 속에서 아무리 용을 써봐도 벗어나지 못한다.

꿈을 깨면 현실을 맞이하듯 자아를 벗어나야 자유로울 수 있다.

관심을 집중해서 마음의 소리를 쫓다 보면 자아의 경계를 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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